[피플in포커스] 자유를 노래한 '레게 창시자' 밥 말리, 4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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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말리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어쩌면 자유를 노래하던 그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듯 싶다.
카리브해 북부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섬나라 자메이카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메이카 민중의, 자유를 갈망하는 흑인들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과 저항정신의 집합체였던 레게 음악의 창시자로 전세계에 영향을 줬던 밥 말리가 살았던 36년이라는 삶은 덧없이 짧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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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원태성 기자 = "돈으로는 인생을 살 수 없다"
밥 말리가 남긴 마지막 한마디는 어쩌면 자유를 노래하던 그의 삶을 더욱 가치있게 만드는 듯 싶다. 카리브해 북부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섬나라 자메이카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자메이카 민중의, 자유를 갈망하는 흑인들의,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과 저항정신의 집합체였던 레게 음악의 창시자로 전세계에 영향을 줬던 밥 말리가 살았던 36년이라는 삶은 덧없이 짧아 보인다.
그럼에도 40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가 노래를 통해 들려줬던 자유를 향한 열망과 저항정신이 살아있음을 느낄 때마다 그의 삶은 수억만금의 돈으로도 살 수 없을 듯 하다.
AFP통신은 밥 말리가 세상을 떠난지 40년이 지난 11일(현지시간) 그의 삶을 조명했다.
밥 말리는 1945년 2월6일 태어나 부재와 결핍의 연속인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10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난 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해 14살 때 학교를 관두고 돈을 벌기 위해 용접공의 길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는 온갖 역경 속에서도 자신처럼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뮤지션이 되겠다는 꿈을 잃지 않았다.
밥 말리는 결국 1962년 2월 17살의 나이로 자메이카의 열악한 스튜디오에서 4개의 곡을 녹음하며 가수의 꿈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그해 8월 자메이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밥 말리도 본격적으로 음악의 삶을 꽃피우기 시작했다. 그는 1963년 피터 토시, 버니 웨일러와 함께 3인조 그룹인 더 웨일러스를 결성해 '시머 다운'이라는 노래를 발매했다. 이 노래는 자메이카 음악 순위 1위를 차지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더 웨일러스는 데뷔 앨범 '더 월링 웨일러스'부터 '소울 레블스', '소울 레볼루션'까지 레게-소울 장르 3부작을 완성했다. 밥 말리의 음악이 큰 인기를 끌면서 그는 1973년 세계적인 음반회사 아일랜드 레코드와 계약했고 이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세계무대로 진출한 밥말리는 1년만에 '아이 샷 더 셰리프'라는 곡으로 '빌보드 핫 100' 1위에 올랐다.
이때부터 빈민가의 부랑자이자 용접공 출신의 밥말리는 레게음악을 통해 삶의 결핍과 부재 그리고,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면서 사회, 문화, 종교적 의미를 넘어 그 이상을 표출하였고 이는 전 세계 팝 음악계를 감동시켰다.
하지만 천재는 박명이라 했던가. 밥 말리는 1977년 축구를 하다가 발가락을 다쳤고 악성 흑생종이라는 일종의 피부암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와 토속신앙이 결합된 라스타파리아니즘의 영향으로 발가락을 절단하라는 의사의 권고를 듣지 않았다.
밥 말리는 1980년 9월23일 피츠버그에서 마지막 콘서트를 한 뒤 독일에서 몇 달 동안 암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1981년 5월11일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밥 말리는 1981년 5월 21일 자메이카에 있는 생가 근처의 예배당에 그의 기타와 함께 묻혔다.
자메이카 레게 뮤지션이자 그룹 '아이 쓰리(I Three)'의 멤버인 주디 모와트는 AFP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밝은 별들은 때때로 오래 타지 않는다고들 하는데, 많은 면에서, 밥 말리는 우리의 가장 빛나는 별이었다"며 "지금 돌이켜보면 여러 가지 면에서 볼 때 그는 시대에 앞서 있었고 영원히 우리 마음속에 살아 숨쉴 것"이라고 전했다.
아직도 가끔씩 '하나의 사랑(One Love)'를 들을 때마다 밥 말리가 살던 시기에 살지 않았던 사람일지라도 그가 꿈꿔왔던 그리고 열망하던 자유를 느끼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그가 영원히 살아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에브리씽 고나 비 올라잇(Everything's gonna be all right)." 온갖 역경에도 그는 자유인이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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