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단톡방에 몰려와 성적 발언·사진.. '옵챗 테러'도 범죄다

박고은 2021. 5. 11.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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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학급 옵챗 테러, 남초 커뮤니티서 일종의 놀이로
"명백한 범죄 행위"..성폭력처벌법으로 기소된 사례도
클립아트코리아

지난 3일 새벽 1시30분. 서울의 한 여자고등학교 선택과목 오픈채팅방이 갑자기 알림음으로 부산스러워졌다. 익명 계정 10여개가 들어와 성적 모욕감을 주는 발언을 하는 등 난동을 부린 것이다. 심야 기습을 당한 학생들은 불쾌감을 드러내며 나가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그러나 심야에 채팅방을 기습한 이들은 보란 듯이 성희롱 수위를 높여갔다. 학생들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갈무리해 자신의 프로필 사진이라고 사칭하는가 하면, 교사 이름을 부르며 무례한 발언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왔다고 당당히 밝혔다. 심야 난동은 해당 채팅방에서 학생들이 다 나갈 때까지 계속됐다. 채팅방에 있던 박아무개(17)양은 “여고생들이 모여있는 방이라 테러를 당한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온라인상에서 여성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 느꼈다. 우리를 마치 놀잇감처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아 불쾌했다”고 말했다.

최근 여고 학급 단톡방에 익명 계정으로 들어와 언어적 성폭력을 저지르는 ‘옵챗 테러’(오픈채팅방 테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온라인 수업과 선택과목제 확대로 교사와 학생이 수업 관련 소통을 위해 오픈채팅방을 개설하는 사례가 늘면서다. 전문가들은 엄연한 디지털 성범죄가 일종의 놀이로 자리 잡기 전에 적극적 예방책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3일 한 여고 오픈채팅방에 몰려와 성희롱 및 언어적 성폭력을 저지르는 한 남초 커뮤니티의 회원들. 박아무개 제공

가해자들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익명으로 접속할 수 있는 오픈채팅방 특성을 악용한다. 자신들이 활동하는 남초 온라인 커뮤니티에 암호가 걸려있지 않은 오픈채팅방 접속 링크를 공유한 뒤 약속한 시간에 단체로 입장한다. 이어 성기 등 신체 노출 사진을 올리거나 성적 발언을 쏟아낸다.

한 남초 커뮤니티에서 ‘옵챗 테러’를 검색하면 “○○여고에 옵챗 테러를 하러 가자”는 글이 수십개씩 뜬다. 심지어 옵챗 테러를 도모하기 위한 갤러리방(홈페이지 내 카테고리)까지 생성해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이 갤러리에는 ‘오픈챗 공격할 때 염두해야 할 것’이라는 제목의 글이 공지글로 지정돼 있다.

“오픈채팅방의 통제권은 방장과 부방장이 쥐고 있다. 방장과 부방장이 욕을 하면 (메신저 운영업체에 해당 계정을) 신고를 할 수 있다. 방장과 부방장이 (신고로) 모두 정지를 먹으면 그 방은 통제력을 잃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껏 놀 수 있다. 꼭 이 방법뿐 아니라 재미만 있다면 뭐든 해도 좋다.”

문제는 자신들의 행위가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다는 점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가해자들이 자신의 행위를 범죄가 아닌 놀이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온라인상에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게 일상이 돼, 범죄란 인식도 없이 디지털 성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옵챗 테러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승재현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정보통신망법과 성폭력처벌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특히 피해자가 불특정 다수, 게다가 고등학생이라는 점에서 죄질이 굉장히 나쁘다”고 했다.

실제 처벌 사례도 있다. 경찰은 지난해 4월 한 중학교 오픈채팅방에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사진을 올려 고소된 남성에게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결국 이 남성은 지난해 10월 기소됐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이런 범죄가 발생했을 때 가해자의 개인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법안은 이미 마련돼 있다. 익명을 기반으로 한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이라도 수사기관이 가해자를 찾아 처벌할 수 있도록 기술적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조진경 대표는 “범죄는 진화한다. 범죄라는 자각이 없으면 이런 행위가 일상적 문화로 자리 잡게 되고, 결국 더 큰 범죄로 번질 수 있다. 범죄를 범죄로 인식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의 철저한 조사와 그에 따른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디지털 성범죄 예방에 나서야 한다. 승재현 연구위원은 “기술은 범죄를 촉진하기도 하지만 예방하는 데 쓰일 수도 있다. 가령 카카오는 오픈단톡방에 성적 발언이나 사진이 올라가면 AI가 자동으로 차단할 수 있도록 딥러닝시킬 수 있다. 반복되는 디지털 성범죄를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플랫폼 기업들도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박고은 기자 eu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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