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조심' 말고 '안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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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고 광고해요? 저놈 잔돈 있었어."
5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또 오해영'의 한 장면.
옆집에 사는 도경은 해영의 집에 온 배달원이 "혼자 사냐. 잔돈이 없어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는 밖에 나가 사장에게 "여기서 바로 퇴근하겠다"고 전화를 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5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엇비슷한 리스트가 공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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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산다고 광고해요? 저놈 잔돈 있었어.”
“스토킹처벌법이 없어서 어쩔 수 없대요.”
2년 전 수습기자 시절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만난 20대 여성 A씨는 자신을 4년 동안 스토킹해온 40대 남성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전화번호를 바꾸고, 최선을 다해 조심하고, 심지어 고소를 한 후에도 스토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했다. 구속영장이 신청됐다는 말에 잠시나마 품었던 희망도 사라졌다.
남성이 얼마나 치밀하게 스토킹해왔는지를 비교적 차분히 털어놨던 그는 전화번호를 묻자 고개를 저었다. 오랜 스토킹으로 생긴 불안이 너무 심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20대 국회에서 스토킹 범죄 처벌 관련 법이 5개가 발의된 상태였지만, 한 건도 처리되지 않았다. 그날 취재수첩에는 “A씨가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스토킹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고 썼다.
“택배상자에서 개인정보 지우기, 수신인은 남자 이름으로 바꾸기, 집에 들어가면 바로 불 켜지 않기….”
스토킹 끝에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이 알려지자 온라인에서는 또다시 여성들의 생존팁이 돌았다. 다 적기 어려울 정도로 수많은 ‘꿀팁’은 새롭지 않다. 5년 전에도, 2년 전에도 엇비슷한 리스트가 공유됐다. 더 이상 여성이 범죄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이 드라마 속에서 로맨틱하게 표현되지 않아도, 스토킹처벌법이 국회를 통과했어도 어떤 것들은 여전히 그대로다.
언제쯤 여성들이 ‘조심’이 아닌 ‘안심’할 수 있을까. 생존팁이나 ‘안전이별법’ 따위가 쓸모없어졌으면 한다. 혼자 사는 여성이라도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서 마음 놓고 푹 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송장이 붙은 채로 아무렇게나 버려진 택배상자를 보며 묘한 부러움에 씁쓸해하지 않을 날이 왔으면 좋겠다.
지난 3월24일, 김태현의 범행 다음 날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처벌법이 처음 발의된 건 1999년이다. 그전까지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로 취급돼 대부분 1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무는 데 그쳤다. 최대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되도록 하기까지 22년이 걸렸다는 얘기다. 여성이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까지는 앞으로 몇 년의 시간이 더 필요한가.
유지혜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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