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화폐 권력에 대한 가상통화의 도전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1. 5. 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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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거의 모든 자산이 올랐지만, 가장 많이 오른 자산은 단연 가상통화다. 가상통화의 맏형 비트코인은 2020년 저점 이후 12배 올랐고, 시가총액이 비트코인 다음으로 큰 이더리움은 31배나 올랐다. 지난달에는 가상통화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시장에 상장되기도 했다. 지난 6일 기준 코인베이스의 시가총액은 511억달러로 자신이 상장돼 있는 ‘나스닥(Nasdaq Inc)’ 시가총액의 2배 가까이 된다. 외국에서는 증권거래소에도 상장돼 하나의 주식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많다.

주류 금융권의 시각에서는 가상통화 시세를 버블로 보는 견해가 우세한 것 같다. 투자할 수 있는 자산이라는 범주에서 보면 가상통화는 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가상통화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배당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상통화 시세가 성장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가상통화를 ‘화폐’로 보면 내재가치가 없다는 사실이 흠이 되는 건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주화나 지폐에도 고유의 내재가치는 없다. 현대 국가의 화폐는 공권력을 가진 국가가 법으로 정해서 쓰라고 강제했기에 통용되는 법정화폐(legal currency)이기 때문이다.

가상통화 투자에 내재돼 있는 리스크는 내재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가상통화는 블록체인이라는 탈중앙화된 네트워크에서 거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이는 가상통화만이 가질 수 있는 배타적 역할이다. 전통적 화폐인 주화나 지폐, 금은 이런 고유의 특장점이 전혀 없다. 관습이나 공권력이 이들에게 화폐의 역할을 부여했을 따름이다. 또한 비트코인을 비롯한 주류 가상통화는 공급이 제한돼 있기 때문에 가치의 보전이라는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이런 점은 금과 비슷한 속성이다. 가장 열등한 건 현대의 법정화폐이다. 이들은 단지 금속과 종이 조각일 뿐이고,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탄력적으로 발행량을 늘릴 수 있어 가치 보전이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에서 기축통화로 불리는 달러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다. 법정화폐 이전 통화의 역할을 했던 금과 비교하면 그렇다. 금과 달러의 연계가 완전히 끊어졌던 1971년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금 가격은 달러 대비 51배나 높아졌다.

이런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가장 권위를 가진 화폐는 정부의 공권력이 보증하는 기성 화폐일 것이다. 화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권력이다. 봉건제하에서도 주화에 들어가는 금과 은의 비율을 조작해 권력자들은 화폐주조이익(시뇨리지·seigniorage)을 누릴 수 있었다.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섭정기에 발행했던 당백전도 화폐주조이익의 예로 볼 수 있다. 물론 권력자들의 지나친 행동은 돈의 가치를 떨어뜨려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귀결되곤 했지만 말이다.

화폐에 대한 통제권은 엄청난 권력이기 때문에 기술진보를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상통화 투자에 내재돼 있는 가장 큰 리스크는 정부의 규제다. 미국과 한국의 중앙은행가들과 경제 관료들은 잇따라 가상통화에 대한 노골적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인도는 한술 더 떠 가상통화의 발행이나 거래는 물론 보유자체도 금지하는 법언을 추진 중이고, 터키는 가상통화를 통한 거래를 금지할 방침이다.

역사적으로도 법정화폐에 대한 도전은 늘 된서리를 맞았다. 법정화폐 이전의 주류 화폐였던 금이 대표적인데, 미국에서는 금 본위제가 폐지된 1933년부터 수십년 동안 미국인들의 금 보유를 금지했다. 중앙은행이 임의로 찍어낸 달러라는 지폐에 대한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은 1933년부터 1971년까지 내국인의 금 보유를 금지했고, 미국 이외 국가가 달러를 금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하면 금을 내주는 통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당시 금과 달러의 교환비율은 금 1온스당 35달러로 고정돼 있었다. 1960년대 미국의 국제수지가 적자로 반전되면서 미국은 달러를 받고 금을 내주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금 대비 달러 가치가 절하 압박을 받게 되는데, 196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단기채권을 팔고, 장기채권을 매입하는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단행했다. 단기금리를 상승(단기채권가격 하락)시켜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1년 금 가격이 급등세를 나타냈을 때는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금 거래 증거금을 여러 차례 높여 금 가격의 추가 상승을 막았다. 모두 달러화에 대한 도전을 기존 권력이 막아낸 사례들이다.

가상통화 투자자는 블록체인 기술의 진전이라는 긍정적 측면과 함께 정부의 규제라는 위험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블록체인 기술과의 연계성을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은 데다 코인의 발행량도 제한해 놓지 않은 일부 잡코인의 급등세는 합리성이란 잣대론 도저히 설명하기 힘든 투기적 현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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