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테러 표적 하자라족.."끝없는 박해에 체념 어린 표정"
100여년간 탈레반·IS 포함
끊임없는 테러 위험에 노출
"현장에 경찰 보이지도 않아"
[경향신문]
소녀들의 시신을 담은 관의 행렬이 9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순교자의 언덕’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넓지 않은 언덕의 정상은 무덤들로 꽉 들어차 더 이상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로이터통신 등은 전날 카불의 한 학교 근처에서 발생한 차량 폭발 테러로 인한 희생자가 68명으로 늘어났다고 보도했다. 희생자 대다수는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여학생들이었다. 탈레반에 맞서 여성 교육 운동을 펼쳐온 노벨상 수상자이자 인권 활동가인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트위터에 “끔찍한 공격”이었다며 “희생자들과 가족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썼다.
테러가 일어난 곳은 아프간 소수민족인 하자라족 100만명이 거주하는 구역이다. 시아파 무슬림인 하자라족은 아프간 땅에 정착한 몽골인들의 후손으로 수니파가 주류인 아프간 정부로부터 오랫동안 박해를 받아왔다. 19세기 후반 무렵 하자라족이 대량학살을 당하거나 노예로 끌려갔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학살을 피해 상당수가 파키스탄이나 이란 등으로 도망갔지만, 지금도 아프간 전체 인구의 10~20%가량인 3500만명이 아프간 산간지역에 살고 있다.
하자라족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는 지난 100여년 동안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계속돼 왔다. 1990년대 집권한 탈레반 역시 하자라족 수천명을 살해하는 등 인종청소에 나섰고,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도 하자라족을 타깃으로 한 폭탄 테러를 수차례 일으켰다. 2001년 미국이 아프간 전쟁을 일으키면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에도 하자라족이 거주하는 지역의 체육관, 문화센터, 병원 등은 끊임없는 테러 위험에 노출돼 왔다. 불과 1년 전에는 한 산후조리원이 공격을 받아 신생아와 산모를 포함해 24명이 숨졌다. 2018년에는 IS의 테러로 한 교육시설에서 70여명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번 테러의 배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은 탈레반을 지목했지만, 탈레반은 혐의를 부인했다. 뉴욕타임스는 “하자라족에게 범인의 정확한 신원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면서 “그들의 얼굴에는 끝없는 박해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소수민족의 체념 어린 표정이 역력했다”고 전했다.
하자라족의 이슬람 종교 지도자인 카짐 에사니는 9일 희생자들의 장례식장에서 “우리는 거리에서, 모스크에서, 병원에서 폭탄에 맞아 죽어가고 있지만 어제 테러 현장에서도 경찰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면서 “수많은 군중이 모인 오늘 장례식장에서도 단 한 명의 보안경찰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장례식은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자주 테러의 목표로 삼는 곳이다.
오는 9월11일로 예정된 미군 철수가 완료되면 하자라족은 탈레반의 더 큰 위협 속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 하자라족은 “정부가 우릴 지켜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직접 총을 들고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정유진 기자 sogun7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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