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판매 막히고, ELF 신청은 20일 소요".. 고난도 상품 규제 첫날 혼란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판매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이 시행된 첫날, 상품을 판매하는 은행 창구에서 적지 않은 혼란이 이어졌다. 이번에 ‘고난도 금융상품’으로 새로 규정되는 인버스·레버리지 등 일부 상품의 판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면서, 창구에서 관련 상품을 문의하는 고객들을 돌려보내는 일이 발생했다. 금융당국이 관련 가이드라인을 시행일이 임박해서야 마련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숙려·청약철회 기간이 새로 부여되면서, 주가연계펀드(ELF) 등 상품의 경우 상품 상담 후 최종 설정까지 20일 정도가 소요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종전 일주일이면 가능했던 기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은행들은 고객들에게 이런 안내를 강화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부터 개정된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금융투자업규정이 시행됐다. 고난도 금융투자상품에 대한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고난도 상품에는 원금 20% 초과 손실이 날 수 있는 파생결합증권(DLS), 파생결합펀드(DLF), 주가연계증권(ELS), ELF 등이 포함된다. 이를 판매하는 은행이나 증권사 등은 판매·계약 체결 과정에서 전 상담 과정을 녹취해야 한다. 판매·계약 후에도 투자자가 확정까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숙려 기간을 2일 보장해야 한다.
◇ 인버스·레버리지 등 판매 일시 중단
고난도 상품 판매 규제가 시행되는 이날 은행에서는 일부 상품들의 판매가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일이 발생했다. 대부분 이번 법 개정으로 고난도 상품에 새로 포함되게 된 인버스·레버리지 등 시장성 상품들로, 이날 판매가 불가한 상품은 은행별로 10~30개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고난도 상품에 대한 정의를 명확히 하면서, 해당 상품에 대해서는 상품을 만드는 자산운용사들에게 정정신고를 하도록 했다. 그런데 신고절차에 대한 안내가 늦어졌다. 금융투자협회는 시행 6영업일 전에 초과 손실 20%를 산정하는 방식에 대해 안내했고, 운용사들은 이에 따라 고난도 상품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고난도 상품으로 분류되면 집합투자규약·투자제안서·가입 설명서 등을 이에 맞게 구비해 금융당국에 정정신고를 해야 한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신고 양식을 3영업일 전인 지난 4일 저녁에야 배포했다. 신고 서류 접수를 완료해도 당일이 아니라 다음 영업일에나 효력이 발생할 수 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시행일 이전에 신고할 수 있는 영업일은 5월 6~7일 이틀뿐이었다”면서 “이런 절차를 운용사가 완료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판매사인 은행이 이사회를 개최해서 판매 여부를 승인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면서 불가피하게 중단 사태가 벌어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날 인버스·레버리지 등 판매가 중단된 상품을 문의한 고객에게 은행 창구 직원이 “오늘은 판매가 어려우니 다음에 방문해 달라”며 돌려보내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다행히 이런 상품들이 많이 판매되는 주력 상품군이 아니어서 판매 중단에 따른 큰 타격은 없었다”고 전했다.
◇ ELF 상품 체결까지는 20일도 걸릴 듯
고난도 투자상품 중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ELF 상품의 경우, 상품 신청부터 설정까지 소요되는 기간이 3배가량 길어지면서 은행들이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고난도 상품과 고난도 투자일임·금전신탁계약을 청약하는 경우 이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숙려 기간이 2영업일 이상 보장된다. 또 지난 3월 말 시행된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의 연장 선상으로 청약철회 기간도 7영업일 주어진다. 상품 청약 후 실행까지 종전보다 최대 9일간 고민할 시간이 더 생기는 셈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ELF 상품 하나를 신규로 신청하려면 종전까지는 일주일 정도 걸렸다면, 이제는 20일 정도가 걸리게 된다”며 “아직 첫날이라 그런 사례는 없었지만,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느냐’라는 항의나 민원이 들어올 수도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ELF 상품의 경우 200억원 단위처럼 일정 금액이 모이면 설정이 이뤄지는 ‘모집형’ 상품이어서, 숙려 기간 중 취소 분이 나오면 어떤 혼란이 또 벌어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며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고객들에게 안내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이날부터 달라진 점은 고난도 상품에 대한 설명 과정 녹취가 의무화됐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은행권에서는 과거에도 65세 이상 고령층을 상대로 녹취 의무가 적용됐던 터라 큰 혼란은 없었다는 분위기다. 다만 은행별로 녹취 방식과 기술이 다른 탓에 편의성 측면에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KB국민·우리은행 등은 텍스트 데이터를 음성 파일로 변환하는 기술 등이 접목된 AI(인공지능) 금융상담시스템이나 직원 직접 상담 중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신한은행도 AI를 활용해 상담 시 불완전판매 요인을 분석하도록 했다. 하지만 일부 시중은행이나 지방은행에선 창구에 비치된 녹음 장치만을 활용하는 실정이다. 일부 지방은행은 아직까지 모든 영업점에 녹음 장치조차 다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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