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택시' 자가당착 빠지기 쉬운 히어로물의 함정, 잊지 마!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또 한편의 틈새 히트상품이다. SBS 금토드라마 <모범택시>는 첫 회 10%로 시작해 RPM을 높이더니 최고 시청률 16%까지 찍으며 10회까지,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내달리는 중이다. 지난 7일에는 전국 시청률 14.7%를 기록하며 당일 방송된 전체 프로그램 중 1위를 차지했다.
드라마는 뉴스를 보면서 느끼는 우리의 분노와 무력감을 공감대로 삼는다. 택시회사와 모범택시 기사로 위장한 한 단체가 사법체계와 공권력에 대한 불신, 법 감정과 크게 어긋나는 형량, 피해자를 보듬는 사회 시스템의 부족에 대해 법과 사회가 지켜주지 못하니 법보다 빠른 주먹으로 직접 즉결 처단해 정의를 자의적으로 구현하는 사적 복수물이다.
초반 <모범택시>는 전작의 그림자가 워낙 강한데다 <괴물>, <빈센조> 등 경쟁작들의 인지도가 워낙 높다보니 주목도는 낮았다. 19금딱지도 명백히 불리한 조건이다. 게다가 최초 캐스팅된 주연배우 학폭 논란에 재촬영을 감행해야 했고, 제작진의 명성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 기대할 만한 요소가 크지 않았다. 박준우 PD는 <그것이 알고 싶다> 등을 거쳐 온 교양 출신 연출자로 이번이 두 번째 작품이며, 오상호 작가는 <모범택시>가 첫 번째 드라마다.
하지만 동명 원작 웹툰을 바탕으로 이런저런 감정이나 인물 설명을 거두고, 조두순 출소를 시작으로 연쇄살인마 정남규, 염전 노예 사건, 웹하드업체 양진호 회장 사건을 비롯해 학교 폭력과 보이스피싱 등 현실 세계에 명백한 레퍼런스가 있는 실제 사건과 범죄자의 이름을 모티브로 가져와 복수의 카타르시스에 집중했다.
실제 사건뿐 아니라 연상되는 국내외 레퍼런스도 많다. 10회처럼 일부러 패러디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하 비밀 기지와 여러 기술적인 비밀을 숨긴 모범택시는 <007> 시리즈를, 가상의 도시에서 사적복수를 하는 집단은 <왓치맨>, <배트맨> 등 히어로물의 세계관을, 운전수라는 주인공의 직업과 성격, 자동차 액션물은 제이슨 스타뎀의 <트렌스포터>나 <분노의 질주> 등이 연상된다. 이런 장르적 성격을 현실의 사건과 운수회사라는 한국적 설정으로 현지화해 <경이로운 소문>과 함께 또 한편의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 K-히어로물이 탄생했다. 무엇보다 <퍼니셔>, <아저씨> 등의 사적복수물의 단순 무식하지만 확실한 마무리가 주는 대리만족의 판타지는 답답함이 가득한 우리 사회에서 <모범택시>가 질주할 수 있는 가장 큰 동력이다.
시청률도 높고, 사적복수라는 트렌디하며 문제적 주제를 다루긴 하지만 최근 여러 드라마들이 보여준 웰메이드한 연출과 극 구성, 규모와는 거리가 있다. 대역 연출 논란도 그렇고, 비밀 기지의 프로덕션 디자인, 단역들의 연기지도가 무척 부자연스럽다. 이런 일을 하게 된 주요 배역들의 인물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도 의도된 연출이라고 하지만 평면적이다.
특히 원작에 없는 검찰은 <모범택시>의 가장 무거운 짐이다. 설정 자체가 판타지에 가까운 <빈센조>보다도 현실과 동떨어진 검사 조직을 그리는 방식과 어느 평검사의 고군분투는 이야기의 한 축을 확장해 짊어지는 게 아니라 가라앉게 만드는 추다. 검찰 조직 전체가 마치 중소기업의 한 팀처럼 축소되어 있고, 검경의 수사지휘 등의 현실 체계는 깡그리 무시하고 검사가 직접 출동하거나 현장 잠복하고, 미행은 바로 한 걸음 뒤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뿜어내며 쫓는 막장드라마 스타일로 연출한다.
드마마 <모범택시>에서 검사 강하나(이솜)를 창조한 이유는 지상파의 품격과도 연결된다. 사적복수가 통쾌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 인류사에서도 큰 문제를 야기한 접근이며,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너뜨리는 사회적 합의를 어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사적 복수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을 등장시켜 중화시키고, 사적 복수와 공권력의 갈등 속에서 질문을 던지며 선악과 정의 구현에 대한 고민도 담아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박준우 PD는 한 인터뷰에서 "수위가 높은 폭력 장면이 있는 만큼, 드라마가 단순히 자극적으로만 소비되지는 않길 바란다"고 했다. 실제 매회 엔딩 장면을 주연배우 얼굴로 끝내지 않고, 범죄 예방에 도움을 주거나 사회적 정의를 고민하는 마음을 담았다.
, 생각이 깊어지면 자가당착에 빠지기 쉬운 게 히어로의 세계다. 이야기의 매듭이 두어가지 꼬여가기 시작하면서 액션의 강도와 함께 사이다의 탄산이 조금 약해진 듯하다. 웹툰을 원작으로 삼고 현실을 무대로 판타지를 제공하는 콘텐츠에서 꼭 고민을 품어야 할 필요는 없다. 메시지를 꼭 담아야 웰메이드해지는 것은 아니다. 분노 하나만 보는 우직함과 통쾌함으로 <경이로운 소문>과 달리 후반부가 무너지지 않는 'K-히어로물'이 온전히 탄생하길 기대해 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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