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봄 꽃게철 연평어장에 다시 까맣게 몰려든 중국어선들
새끼 꽃게까지 싹쓸이에 쓰레기 투척까지
"중국인지 한국인지 헷갈려" 어민들 분통
해경 "나포 등 강력 대응으로 어장 지킬 것"
서해 봄철 꽃게잡이가 한창으로 치닫던 3일 오후. 인천 옹진군 연평도 망향전망대에 오르자 시커먼 20여 척의 어선이 육안에 들어왔다. 북한의 석도 남쪽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북방한계선(NLL)을 따라 늘어선 배들이다. 해당 해역은 국내에서 꽃게가 가장 많이 잡히는 장소인 연평어장. 한 어민은 “배타적경제수역(EEZ) 경비를 선 해군을 피해 (해군이 없는) 내륙 쪽으로 밀고 들어온 것"이라며 “날이 풀리면서 중국 어선들이 넘어와 닥치는 대로 꽃게를 잡아 올리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망향전망대 앞바다는 2016년 6월 5일 영해를 침범해 싹쓸이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에 참다 못한 어민들이 들고 일어나 2척의 어선을 나포했던 곳이다.
이날 이른 시간에 조업에 나섰다가 연평도 당섬 선착장으로 귀항한 한 선원은 “중국 배들이 시커멓게 떠 있는 모습을 오늘도 봤다”며 “어떤 땐 우리가 중국에서 조업하고 있는 건 아닌지 헷갈릴 정도”라고 말했다.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들은 일상 풍경이 됐단 말이었다.
실제 이날 오후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중국 어선들은 인천 쪽을 향해 동쪽으로 움직이면서 그물을 내린 뒤 올리고 있었다. 연평도 앞바다까지 밀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인천 쪽으로, 그것도 연평어장 깊숙이 밀고 들어오는 장면이었다. 한 어민은 “높은 파도가 예보되면 우린 무서워서 귀항하지만, 중국 사람들은 10톤짜리 목선으로 목숨을 걸고 꽃게를 잡아간다”며 “그러곤 그 자리에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고 말했다. 지난 4일 풍랑주의보로 인천에서 서해 각 도서를 연결하는 여객선들은 단축 운항했으나 불법 조업은 멈추지 않았다.
이처럼 한동안 잠잠하던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이 올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9일 중부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서해 NLL 일대에 출현하는 중국어선은 일평균 183척에 달한다. 지난해 4월(63척)의 세 배에 달하는 수치다. 3월에도 작년 동기(일평균 15척)보다 8배가량 많은 116척이 출몰했다. 이 같은 수치는 중국 어선이 우리 경비함정의 단속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3월 해경은 서해 NLL 일대에 중형특수기동정 등 경비함정 6척을 상시 배치하고 해군 지원을 받아 하루 최대 20척의 함정을 투입했다. 한 어민은 “NLL에서 춤을 추니 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중국 어선들이 연평어장을 기웃거리면서 끼치는 해는 적지 않다. 새끼 꽃게까지 싹쓸이하는 것에 더해 엔진오일통과 일회용 폐어구 등 각종 쓰레기를 잔뜩 버리고 간다. 한 어민은 “우리가 섬으로 수거해가는 쓰레기들을 중국 배들은 모두 버리고 가는 바람에 우리 그물에 걸려든다”고 말했다. 인천이 서해 꽃게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고, 인천 꽃게 어획량의 25%가 연평어장에서 나오지만, 앞으로도 꽃게가 풍성하게 잡힐지는 장담할 수 없다.
최근 몇 년 사이 비교적 잠잠하던 중국 어선 출현이 올해 들어 급증한 배경은 복합적이다. 중국 어선은 NLL 부근이나 이북 수역에서 조업하다가 무리 지어 우리 해역을 침범하는 형태로 불법 조업을 일삼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해경의 단속 완화가 중국 어선 급증의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중국 정부의 무등록 어선 단속 강화도 배경으로 꼽힌다. 해경 관계자는 “무등록 어선들이 중국해역에서 조업할 수 없게 되면서 우리 해역으로 넘어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은 무등록 어선 단속과 관련해 지난 2월부터 한국의 해경에 해당하는 해경국의 역할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해 크게 줄었던 꽃게 어획량이 올해 회복한 것도 요인으로 꼽힌다. 옹진수산업협동조합 연평출장소에 따르면 수협 위탁 판매량 기준으로 올해 4월 어획량은 1만2,234㎏(어획고 4억2,919만 원)으로, 지난해 4월 6,107㎏(2억7,634만 원)을 크게 웃돌고 있다.
중부해경청 서해5도특별경비단 관계자는 "지난해 4월 불법 중국어선 775척을 퇴거시키면서도 한 척도 나포하지 않은 것과 달리, 지난달에는 159척을 퇴거하고 5척을 나포했다"며 "강력한 단속으로 우리 어장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연평도=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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