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학시간 3시간은 너무하잖아요".. 저렴해도 외면받는 공공기숙사

연지연 기자 2021. 5. 1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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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을 서서 가느니 월세를 좀 더 내는 게 낫죠.”

지방 출신으로 올해 가천대 글로벌캠퍼스에 입학한 김성준(19)씨는 이번 학기 서울 내발산동 공공기숙사에서 통학하는 중이다. 학교 기숙사는 들어가지 못했고, 학교 근처 원룸은 월세 부담이 커 포기했다. 내발산동 공공기숙사는 경쟁률이 비교적 낮았고 월세도 12만원으로 매우 저렴했다.

문제는 거리다. 가천대 글로벌캠퍼스는 경기 성남시에, 공공기숙사는 서울 강서구에 있다. 기숙사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두 번 환승해야 한다. 버스에서 지하철 9호선으로 갈아탄 뒤 선정릉역에서 수인분당선으로 한 번 더 환승한다. 1시간 30분간 총 22개역을 이동한다.

공공기숙사 앞에서 만난 김씨는 “월세가 저렴해 좋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통학 시간이 너무 길어 체력이 금세 바닥났다”며 “이동 시간과 체력 소모, 교통비까지 두루 고려하면 학교 인근에서 자취를 하는 편이 나은 것 같다”고 했다. 김씨는 “다음 학기부터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할 예정이다. 룸메이트도 이미 구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공공기숙사. /권현지 인턴기자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을 낮출 목적으로 지어진 공공기숙사가 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 땅값이 싼 서울 외곽에 짓다보니 학교와 거리가 멀고 주변 상권이 발달해 있지 않아 불편함이 커서다. 김씨 사례처럼 입주 한 학기 만에 퇴소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공공기숙사는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이 건립·운영하는 기숙사다. 2014년부터 수도권 곳곳에 생겨났다. 월세 일부를 지원해 서울 외 지역 출신 대학생들이 저렴한 가격에 거주할 수 있게 했다.

수도권에 운영 중인 공공기숙사는 모두 6곳이다. 한국사학진흥재단이 운영하는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행복(연합)기숙사’, 14개 지방 지자체와 서울주택도시공사가 함께 운영하는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공공기숙사, 한국장학재단이 운영하는 고양 덕양구 ‘대학생 연합생활관(한국장학재단)’ 등이 대표적이다. 그 밖에 경희대, 세종대에 위치한 행복(공공)기숙사(사학진흥재단 운영), 희망하우징(SH공사 운영), 룸셰어링(서울시 운영)도 있다. 공공기숙사의 월 임대료는 12만~28만원 선으로, 대학가 원룸 평균 월세(53만원) 대비 절반 정도로 저렴하다.

그런데도 이들 기숙사는 여전히 빈 곳이 많다. 가장 충원율이 낮은 곳은 SH공사가 운영하는 내발산동 공공기숙사다. 충원율은 2015년 60%로 시작해 2018년까지 60%대 초중반을 유지하다 2019년 들어 47%까지 떨어졌다. 절반 이상이 빈 방이었던 셈이다. 서울 시내 대학과 최소 1시간 이상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두번째로 충원율 낮은 곳은 대학생 연합생활관이었다. 충원율이 처음 집계된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평균 84%의 충원율을 보였다. 올해 충원율은 82.7%였다. 방 열 개 중 두 개 꼴로 공실이었다는 뜻이다. 홍제동 행복기숙사는 그나마 연세대, 이화여대, 명지대, 경기대 등이 가까이 있어 90% 이상 충원율을 보였다.

학생들은 학교와 먼 거리, 빈약한 주변 상권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2015년과 2017년 두 차례 내발산동 공공기숙사에 거주했던 안모(26)씨는 “기숙사에 살 때 이름표가 붙지 않은 빈방이 많았다”면서 “학교 뿐만 아니라 서울 어디를 가더라도 한 시간 이상 잡아야 했다. 비용이 더 들어도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는 게 낫겠다 싶어 퇴소했다”고 말했다.

올해 3월 대학생 연합생활관에 입소했으나 두 달 만에 퇴소한 건국대 재학생 A씨 역시 “관리비가 월 15만원으로 저렴하고 신축이라는 점은 좋았다”면서도 “주변에 식당이 없어 끼니 해결이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었다”고 했다. 대학생 연합생활관은 고양 덕양구 원흥동에 있다. 3기 신도시 중 한 곳인 창릉 신도시 예정지로 아직 인프라는 부족한 편이다. A씨는 “기숙사 식당도 운영하질 않고 근처 식당도 부족해 공사장 인근 함바 식당을 많이 이용했다”며 “신도시인 만큼 주변에 공사장이 많아 먼지날림도 심한 편이었다”고 했다.

지난 3일 밤 10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공공기숙사 군데군데 불이 꺼져 있다. /권현지 인턴기자

행복기숙사 사업을 담당하는 한국사학진흥재단 관계자는 “국유지를 조달받아 기숙사를 짓다 보니 불가피하게 접근성이 떨어지는 면이 있다”면서 “기숙사 추가 건립 시에는 시내 대학들과의 거리를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연합생활관 운영하는 한국장학재단 관계자 역시 “서울 시내에 기숙사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면서도 “현재 용산구에 중부권 기숙사 신규 건립을 추진 중이며 차츰 여러 권역으로 넓혀갈 계획”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의 주거 안정과 주거비 부담 경감을 위해 대학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수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들에게 기숙사, 행복주택 등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할 필요가 있다. 정부, 지자체, 대학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들이 기숙사 수용 인원을 늘리면 (공공기숙사) 접근성 문제는 해소된다. 18.9%(2020년 기준)에 불과한 서울 주요 대학 기숙사 수용률을 대폭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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