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지지 않아 부모님은 행복하셨을까' KBO 리그 역사 쓴 형제 선발 맞대결하던 날

문학|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2021. 5. 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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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키움 투수 동생 김정인(왼쪽)과 SSG 투수 형 김정빈이 9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양 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SSG 랜더스 제공


광주 화정초등학교에 다니던 초등학생 김정빈은 아버지의 권유로 글러브를 꼈다. 그러자 형을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던 두 살 터울 동생 김정인도 야구에 흥미를 느꼈다. 급기야 형이 하는 야구를 같이 하겠다고 나섰다. 그리고 무등중학교, 화순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함께 했다. 야구가 많이 좋아지기 시작하던 시절 막연히 서로 프로에서 맞대결하는 상상도 했다. 그 상상은 거짓말처럼 이뤄졌다. 10여 년 후 두 소년은 KBO 리그 40년 역사에 둘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2021년 5월9일은 김정빈(27), 김정인(25) 형제에게는 특별한 날로 기억될 것 같다. 둘은 이날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키움의 더블헤더 두 번째 선발로 만났다. 형이 2013년 SK에 입단한지 8년, 동생이 2015년 넥센에 입단과 동시에 1군에 데뷔한지 6년 만의 일이었다. 1985년 4월9일 양승관, 양후승 형제가 삼미의 유니폼을 입고 야수로 처음 함께 선발 출전한 이후 수많은 형제 선수들이 KBO 리그 1군에서 한 팀에서 함께 출전하고 상대로 투타 대결을 벌이기도 했지만 선발로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키움 홍원기 감독은 둘의 대결을 ‘우산장수와 소금장수를 자식으로 둔 부모님의 심정’으로 비유하며 가족들의 마음을 예상했다. 한 배에서 나온 형제, 누군가는 이기고 누군가는 져야 한다. 하지만 둘은 처음부터 선발로 낙점된 투수들이 아니었다. 어려웠던 팀의 상황과 미세먼지로 몇 경기가 미뤄진 리그의 일정이 기막힌 우연으로 새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이미 등판과 동시에 승리자에 다름없었다.

형 김정빈은 2013년 SSG의 전신인 SK의 신인 2차 3라운드 38순위로 입단했다. 동생 김정인에 2년 앞서 화순고의 에이스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다. 동생 김정인은 2015년 키움의 전신인 넥센의 신인 2차 7라운드 69순위로 입단했다. 동생이 입단은 2년 늦었지만 1군 무대에는 그해 바로 데뷔했다. 형은 동생이 데뷔하고 2년 후인 2017년 비로소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었다.

좌완에 시속 140㎞대 후반의 직구를 던지는 형과 우완에 경기운영능력이 돋보이던 동생은 2015년 퓨처스리그 올스타전에 나눔 올스타의 선수로 함께 출전했다. 둘은 이미 2007년 시작된 퓨처스리그에서 올스타전에 한 팀 유니폼을 입은 최초의 형제 선수였다. 그 당시 선배인 조동화, 조동찬 형제의 아성에 도전하고 싶다던 둘은 이번 선발등판을 통해 그 꿈에 한 발 더 다가갔다.

9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키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선발로 등판한 SSG 김정빈(왼쪽), 키움 김정인 형제의 어린시절 모습. SSG 랜더스 제공


올시즌은 둘 다 한 발짝 나아간 한 해였다. 김정빈은 외국인 선수들의 부상 이탈로 비상이 걸린 마운드에서 김원형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난 2일 두산전에 처음 등판해 3.1이닝 5실점으로 패전을 안았지만 재신임을 받았다. 김정인 역시 조쉬 스미스의 퇴출로 구멍이 난 키움의 선발진을 메웠다. 전날까지 이미 5경기에서 선발로 나와 1승2패 평균자책 5.48을 기록 중이다.

마침 9일은 어버이날의 다음 날임과 동시에 둘의 아버지 환갑 생신이기도 했다. 그래서 의미는 더욱 깊었다. 경기 전 김정빈은 “정말 이 대결을 상상하지 못했다. 어릴 때야 상상을 하지만, 막상 프로에 와서는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정인 역시 “어릴 때부터 농담삼아 하던 이야기다. 실제로 이뤄질 줄은 몰랐다. 신기하다”고 말했다.

둘은 신기했지만 정작 난처한 것은 둘의 부모님이었다. 김정빈은 “경기 전날 연락을 드렸는데 기대보다 걱정을 하셨다. 둘이 대결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신 것 같았다. 그래서 걱정마시고, 재미있게 보시라고 말했다”고 형답게 사려깊게 말했다. 김정인은 “야구장엔 잘 오시지 않는다”면서 “어제가 어버이날이었으니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 누가 웃지도, 그 누가 울지도 않았으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바람이 이뤄진 것일까. 아니면 부모님의 심정을 두 감독이 이해했던 것일까. 둘은 나란히 3이닝을 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누구도 지지 않았지만 이닝 수가 아쉬웠다. 결과는 형 김정빈의 판정승이었다. 위기는 김정빈이 더욱 많이 겪었지만 정작 실점은 김정인이 많았다.

SSG의 투수 형 김정빈(왼쪽)과 키움의 투수 동생 김정인이 9일 인천 SSG 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양 팀의 더블헤더 2차전에 앞서 만나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SSG 랜더스 제공


김정빈은 2회초 2사 만루, 3회초 무사 만루의 실점위기를 맞았지만 후속타자를 침착하게 막아 3이닝 2안타 무실점을 기록했다. 김정인은 3이닝 3안타로 막았지만 1회말 최정에게 솔로홈런을 맞은 후 3회말 위기에서 정의윤의 적시타와 오태곤의 땅볼로 거푸 3실점하고 말았다.

팀의 성적으로도 형은 판정승을 했다. 1차전을 4-1로 이긴 SSG는 2차전에서 동생 김정인을 상대로 뽑은 3점의 리드를 6회초 이용규의 2타점 적시타와 김혜성의 땅볼로 잃었다. 하지만 3-3 동점에서 6회말 1사 2·3루에서 터진 이재원의 좌전 적시타로 결승점을 뽑아 4-3으로 이겼다. 형의 팀이 이날 2경기를 모두 가져갔다.

우산장수와 소금장수는 누구 한 명만 웃을 수 있었지만 야구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형제는 모두 승리요건을 채우지 못했고 패전을 안지도 않았다. 김정빈과 김정인의 부모님은 그래서 기쁘셨을까. 그래도 형제의 야구역사는 오늘 큰 호흡을 내며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문학|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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