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이대로 통과' 막아야

한겨레 2021. 5. 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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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기고]

전성인 ㅣ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금융위원회가 윤관석 국회 정무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이름으로 편법 발의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하에서는 이 법안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바람직한 개정 방향을 살펴보기로 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실질에 부합하는 규제를 포기한 데 있다. 네이버페이나 카카오페이 같은 전자지급수단은 실질적인 화폐다. 교환을 매개하고 지급수단으로 기능하고 가치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규모도 상당하다. 카카오페이가 올해 1분기 동안 매개한 거래규모가 약 23조원에 이른다. 따라서 이들 수단은 통화정책과 지급결제제도를 관장하는 한국은행의 적절한 통제 아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실질과 규제가 부합하지 않는 점은 또 있다. 이들이 수행하는 지급결제 업무나 자금이체 업무는 금융 행위다. 법률상 명칭도 “전자금융업자”다. 카카오페이의 선전 문구는 “마음 놓고 금융하다”이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이들이 금융회사가 아니라고 강변하면서 금융회사에 걸맞은 규제를 적용하는 것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 이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선불충전 서비스”일 뿐이고, 국민은 금융소비자가 아니라 그냥 “이용자”일 뿐이라는 것이다. ‘웃픈’ 점은 이들은 “금융회사”는 아니지만 이들에 대한 규제는 금융감독당국인 “금융위원회”가 해야 한다고 우기는 점이다.

내부거래를 외부화하라는 발상도 문제다. 당장 지급결제제도를 관장하는 한국은행이 그 현실적 타당성을 문제 삼고 있다. 공적 기관인 금융결제원이 개인의 결제기록을 보관하겠다는 발상도 사생활 보호와는 거리가 멀다. 이용자의 예탁금을 외부 예치하도록 하겠다고 하지만 외부 예치 대신 보증보험을 시행령을 통해 예외적으로 허용해 주겠다는 말이 버젓이 금융위원회 설명자료에 나와 있다. 외부 예치 의무를 위반해도 벌칙은 없다. 이용자예탁금을 타인에게 담보 제공해도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다. 설사 외부 예치를 한 경우에도 이용자는 “파산”에 대해서만 보호될 뿐 전자금융업자가 회생절차에 편입되는 경우 임의로 변제받을 수는 없다.

그럼 이처럼 수많은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 자금이체업자나 대금결제업자 등 예탁금을 수취하는 전자금융업자(이하 예탁금 수취업자)에 대한 한국은행의 통제를 명문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디지털금융협의회를 디지털통화금융협의회로 바꾸고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교대로 회의를 주재하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이 경우 한국은행은 통화와 지급결제제도 측면을, 금융위원회는 전자금융업자의 건전성과 금융소비자 보호 측면을 관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최소한 예탁금 수취업자는 금융회사로 간주하고 이들에 대해서는 금융회사지배구조법, 금융산업구조개선법(금산법), 금융소비자보호법, 금융실명법 등 모든 금융회사가 공통적으로 준수해야 하는 금융 관련 법령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동태적 대주주 적격성 심사, 적기 시정조치, 전자금융업자를 활용한 계열사 지배, 금융소비자 보호, 자금세탁 방지 등의 내용을 적용할 수 있다.

셋째, 이용자예탁금을 통해 전자자금이체가 이루어지는 현실을 반영하여 이용자예탁금의 외부 예치 대상기관을 차액결제망의 직접 참가 기관인 은행으로 한정하고, 보증보험 가입 등 편법을 금지해야 한다. 또한 외부 예치 의무를 위반하는 경우에 대한 형벌 조항을 명기해야 한다. 이용자예탁금을 결제기관인 은행에 예치하는 경우 내부거래는 은행 내 당행 이체, 외부거래는 은행 간 타행 이체로 처리되고 모든 기록은 은행이 보관하게 되므로 금융결제원이 개인의 결제정보를 보관할 이유는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지역의 서민 금융기관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 지방은행은 물론이고 저축은행이나 새마을금고 등은 명실상부한 재벌인 네이버나 카카오가 규제 완화에 기대어 “돈 먹는 하마”가 될 가능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규제의 일관성과 취약 기관에 대한 정책적 배려 없이 성급하게 청부입법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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