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칼럼] 백신의 '황금배분 법칙'

안경애 2021. 5. 9.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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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미국·러시아·WTO(세계무역기구)·WHO(세계보건기구) vs 독일·영국·스위스·제약업계. 코로나19 백신 지식재산권 보호 면제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겁다. 러시아가 미국 주도의 지재권 면제 논의에 "최대 이익보다 사회의 안전이 중요하다"며 찬성의사를 표시한 반면, 독일은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감수하고 반대 목소리를 내놨다.

제약업계는 수천억원에서 수조원, 10년 가까이 투자하고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신약 개발성과가 인정받지 못하면 투자와 혁신의 동력이 사라진다고 반발한다. 화이자와 손잡고 mRNA 방식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독일 바이오엔테크는 백신의 품질과 안전성은 5만 개에 달하는 제조공정을 통해 구현되는데 지재권 면제는 정답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전문가들도 지재권 면제 합의와 실행에 오랜 기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국제사회가 합의한다 하더라도 원자재와 생산능력 확보에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란 우려를 내놓는다. EU(유럽연합) 주요국들은 미국이 지재권 면제 본의에 앞서 자국 백신과 원료 수출금지 조치부터 풀어서 '백신 싹쓸이'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찬반 의견이 분분하지만 일부 국가에 백신이 집중되는 '힘의 논리' 대신 글로벌 차원의 균형적 공급체계 확보 논의의 첫발을 뗐다는 점은 분명 의미가 있다. 특히 기술과 기업을 모두 갖고 있으면서 국제정치를 주도하는 미국이 깃발을 들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크다. 일부 국가가 백신을 독점해 집단면역 달성에 성공하더라도 나머지 국가들이 팬데믹 상황을 피하지 못하면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 불과 1년만에 백신 개발에 상공한 화이자와 모더나 역시 미국 정부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만큼 이런 요청을 무시하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재권 면제가 실질적 공급 확대로 이어지려면 거쳐야 할 단계와 준비작업이 험난해 보인다. 유명 요리사의 레시피와 재료를 똑같이 줘도 음식 맛이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바이오의약품은 반도체에 버금가는 정밀한 조건과 공정을 거쳐야 만들어진다.

결국 기업과 기업간 자발적 협력이나 기술·노하우 이전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오랜 기간 기술 개발에 투자한 백신기업에는 일정 수준의 대가와 혜택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WTO 논의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방식의 기술이전과 협력방식을 일일이 구체화해 열거하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기대되는 것은 이 논의가 백신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들이 기술장벽을 높이거나 과도한 기술이전 수수료를 요구하는 행태를 막는 효과는 분명 발휘할 것이란 점이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백신을 투여받을 수 있도록 원자재 조달과 기술협력, 제조, 공급에 이르는 글로벌 협업 공급망을 확보하는 게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보유한 바이오의약품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조명받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재료와 레시피를 줘도 요리를 못하는 대부분의 국가들과는 상황이 다르다. 이번 논의는 우리 정부와 기업이 공조해 글로벌 백신 생산거점으로 올라설 기회다. 생산량을 늘리고 싶어도 시설 부족으로 하지 못했던 백신 기업들도 글로벌 생산기지에 대한 수요가 클 것이다.

지재권 면제 논의를 지켜보되 거기에만 의존해선 안 될 것이다. 우리의 강점을 활용해 잠재 파트너와 구체적인 협력논의를 시작하고, 생산한 백신을 국내에 일정량 우선 공급하고 국제사회에도 기여하는 시너지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국제 논의에서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산업계와 공조해 구체적인 협력모델을 만들어내야 한다.

반도체에 이어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공급망의 핵심고리로 자리잡을 절호의 기회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 논의가 이뤄지고, 기업간 물밑협상이 속도 있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실험실에 있던 mRNA 기술을 불과 1년만에 상용화한 '코로나19 백신 기적'이 역사에 남을 '황금 배분룰'로 완성되길 바란다.

안경애 ICT과학부 부장 natu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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