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고] 망고 익어가는 계절

한겨레 2021. 5. 9.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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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말고][서울 말고]

박주희 | ‘반갑다 친구야!’ 사무국장

짧은 봄이 아쉽다. 갈수록 봄이 더 짧아지는 듯하다. 고향에선 복사꽃이 만발할 때 복사꽃 잔치가 열렸는데 4월 중순 무렵이었다. 올해는 3월 말부터 복사꽃이 만개했다. 10년 전에 견줘 개나리며 매화 등 봄꽃 개화 시기가 열흘 이상 빨라졌다고 한다. 여름이 평균 118일로 길어지면서 온대기후의 특징인 사계절도 흐려지고 있다. 긴 여름은 연평균 기온을 1.6도씩 가파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최근 30년간 벌어진 일이다.

기후변화는 농업지도도 바꿔놓고 있다. 지역 특산품의 위상도 흔들어놨다. 귤은 제주, 사과는 대구, 녹차는 보성이라는 등식이 깨졌다. 감귤과 한라봉이 전남 나주를 거쳐 경북 북부 영주에서도 자란다. 녹차가 강원도 고성에서도 재배된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작물 재배지는 차츰 북상 중이다.

밥상에 오를 먹을거리는 깐깐하게 고르면서도 정작 농업에는 무관심한 탓에 최근 아열대 작물에 관한 보도를 보고 적잖게 놀랐다. 망고, 구아바, 파파야, 패션프루트, 올리브, 오크라, 아티초크 같은 과일과 채소들이 시험재배를 넘어 상업재배에 성공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

어디서 바나나 재배에 성공했다는 소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우리 땅에서 이렇게 다양한 아열대 작물들을 키우는 줄은 미처 몰랐다. 관련 보도들은 어려운 농업 현실에서 아열대 작물을 키워내 소득을 올리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농부들을 응원한다. 지구온난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잘 활용하면 농업의 새로운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전한다.

아열대 작물 육성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경북도는 앞으로 5년 동안 예산 1353억원을 들여 아열대 작물 전문단지를 만들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선다. 전남 장성에는 내년에 국립 아열대 작물 실증센터가 들어선다. 농민들에게 아열대 채소와 과일을 기르고 판매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르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아열대 작물은 우리 미래의 먹을거리로 새 소득 작물로 기대된다’며 대체 작물로 재배를 권장한다. 덕분에 재배 면적과 재배 농가도 해마다 꾸준히 늘고 있다.

아열대 과일과 채소 가운데 몇몇은 이미 우리 입맛에도 익숙해져 수요가 크게 늘었다. 최근 10년 사이 과일 수입액이 7.5배나 늘었다는 통계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부 지역에서 상업재배에 성공한 애플망고는 국내 수요에 힘입어 고소득 작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다소 불편하고 낯설게 다가온다. 친숙한 먹을거리는 더 이상 자랄 수 없는 땅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과정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열대 과일을 즐기는 것과 우리 땅에 온통 아열대 과일이 자라는 모습은 분명 다르다. 익숙한 푸성귀 대신 이국적인 채소가 자라는 밭의 풍경은 참 낯설 것 같다. ‘농업 경쟁력 향상을 꾀할 수 있는 기회’라는 장밋빛 전망에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우리 사과는 당도가 높고 식감까지 아삭해서 세계 어느 곳의 사과와 견줘도 뒤지지 않는 맛을 자랑한다.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 과일이다. 그런데 사과도 귀한 과일이 될 것 같다. 2060년쯤에는 대구·경북에서 사과 재배가 어려워진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주산지가 대구에서 안동, 청송 등 경북 북부지역으로 옮겨갔다. 이번 세기가 끝나기 전에 강원도 북부 지역에서만 사과 재배가 가능할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해수온 상승으로 명태 대신 러시아산 동태를 먹고 있듯 사과도 이국적인 품종만 먹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우리네 마당에 감나무 대신 망고나무가 서 있는 풍경 또한 상상만으로도 낯설다. 곶감 대신 말린 망고를 먹는 노년의 모습 또한 그렇다. 기후변화를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망고 익어가는 계절은 되도록 더디게 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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