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보기를 코로나같이

한겨레 2021. 5. 9. 16:3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기후활동가에게 코로나 대응은 꿈과 같다.

여전히 국내 언론은 기후 이슈가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후순위로 밀려난다고 합리화하지만, 꼭 사안의 경중이 언론 노출 정도를 결정하는 게 아님을 코로나가 보여줬다.

기후 역시 에너지·식량·운송 체제의 대전환에 따른 삶의 뼈아픈 제약을 피할 수 없고, 그 희생은 코로나처럼 약한 자에게 더 무자비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코로나 때 놓쳤으나 기후에서 풀어야 할 난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한민의 탈인간]김한민의 탈인간

김한민 | 작가·시셰퍼드 활동가

기후활동가에게 코로나 대응은 꿈과 같다. 정부와 의회가 합심해 최고 수준의 대응책을 밀어붙인다. 전 언론이 뉴스를 쏟아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전문가 집단은 필요할 때마다 엄중한 경고를 날린다. 의료진은 헌신한다. 일상이 송두리째 바뀌어도, 해고자와 폐업이 쏟아지고 가정폭력이 늘고 교육이 파행이 되고 행사와 모임과 여행이 무한 연기돼도, 시위가 금지되고 마스크를 강제해도… 대다수는 동참하고 협조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희생당해도 “이득이 손실보다 크다”는 모호한 명제가 공감을 얻고, 반대 여론은 묵살된다. 어지간한 무기는 다 쥐어진 셈이지만, 그러고 실패해도 누굴 탓할 수도 없다. 다시 인내하고 힘내야 할 뿐. 어떻게 이 모든 게 가능한가? 코로나에서 가능했던 걸 기후에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환경 문제로 인식되면 끝장이다. 대중에게 환경 문제는 제아무리 중요해도 자연을 아끼자는 윤리적 담론으로 들린다. 환경으로 접근한 사례들을 보라. 지극히 ‘순한’ 정책조차 거센 반대에 직면한다. 바나나 비닐 포장 규제 하나에도, 매달 딱 두 끼 저탄소 채식 급식을 하려 해도 반발한다. “개인 선택인데 강요한다” “에코 파시즘이다” “업계 죽일 작정이냐”고 엄살을 떤다. 코로나를 단순 보건 문제, 기저질환자와 노령층의 문제로 국한했다고 상상해보라. 그렇게 보려면 볼 근거도 있었지만, 리스크의 잠재력과 예방 차원에서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문제로 보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 같은 통제가 가능했다. 공동체적 가치를 명분으로 특정 관점을 택한 것이다. 기후 위기야말로 경제, 안보, 노동, 식량, 보건 등 전 분야를 강타할 초유의 재난이다. 초국가적 비상사태라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그에 상응하는 법적 조처들이 가능해진다.

둘째, 코로나 수준의 ‘융단폭격’ 커뮤니케이션 캠페인이 필요하다. 위기는 일어나기도 하지만 만들어지기도 한다. 여전히 국내 언론은 기후 이슈가 ‘피부로 와닿지 않아서’ 후순위로 밀려난다고 합리화하지만, 꼭 사안의 경중이 언론 노출 정도를 결정하는 게 아님을 코로나가 보여줬다. 코로나19가 정말 그만큼 치명적이고 엄청난 병일까? 그 위험을 실제 피부로 체감한 사람은 몇이나 되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였나? 전국의 병상이 미어터졌나? 그럴 뻔했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방치했을 때의 위험과 공포를 정부·언론·전문가들이 귀 따갑도록 떠들어 전격적인 협조를 끌어낸 것이다. 반대로 ‘침묵의 팬더믹’이라는 대기오염은 매년 880만명을 죽여도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자 수를 실시간 중계한다면 달라지리라. 한마디로 정부와 언론 하기 나름인 의지의 문제이지, 사안은 기후가 더 크면 컸다.

셋째, 정책과 개인의 변화가 동시에 같이 가야 한다. 코로나에서 이 둘은 양자택일이 아닌 상호보완의 관계다. 정부와 국가 간 방역정책의 강력한 작동과 개인의 거리 두기, 손 씻기 등은 늘 병행됐다. 기후 위기의 해법은 체제 전환뿐이라며 작은 실천을 폄하하거나 개인의 실천만 강조하면 망한다. 희생을 감수하며 동참한 개인이 체제에 더 많이 요구하는 경향도 있음을 기억하자.

넷째, 기술만능주의로는 안 된다. “기후 위기는 기술이 해결해준다”는 망상에 해당하는 게 백신만능주의인데, 백신은 방탄조끼가 아니다. 계속 업데이트하고 변이 바이러스는 별도 대응이 필요하며 방역도 지속돼야 한다. 기후 역시 에너지·식량·운송 체제의 대전환에 따른 삶의 뼈아픈 제약을 피할 수 없고, 그 희생은 코로나처럼 약한 자에게 더 무자비할 것이다. 바로 그것이, 코로나 때 놓쳤으나 기후에서 풀어야 할 난제다. 우리가 치를 희생들에 관해 솔직하게 소통하는 것. 이것이 빠진 기후에 관한 모든 얘기는 거짓말이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