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의원님께

한겨레 2021. 5. 9.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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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칼럼]'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돈벌이를 잘하는 건 김씨의 천재성보다는 정권 차원의 밀어주기 덕분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청취율 1위'를 내세워 반론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연간 수익 70억원의 큰 몫이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의 광고와 협찬이라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강준만 ㅣ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정청래 민주당 의원님, 안녕하시지요? 지난 4월29일 국회 법사위원장에 박광온 의원이 내정되자 정 의원님은 “쿨하게 받아들인다”며 박 의원에게 축하를 보냈습니다. 그간의 관례에 따르자면 법사위원장 1순위였음에도 그런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인 것에 감명을 받은 사람이 많았을 겁니다. 저는 그간 정 의원님을 독설을 잘하는 ‘강경파’로만 알았는데, 정 의원님이 패널로 고정 출연한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자주 시청하면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유머 감각이 뛰어난데다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한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근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인 김어준씨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 대해 말씀을 좀 드리고 싶습니다.

소모적인 정치적 갈등이 발생했을 때 국회의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그 갈등의 원인까지 파고들어 비슷한 갈등이 생기지 않게끔 제도적 개혁까지 이뤄내는 것일까요, 아니면 갈등을 빚는 당사자들 중 옳다고 생각하는 어느 한 편을 들어 싸우는 것일까요? 저는 전자를 택하고 싶습니다. 물론 후자의 일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적어도 ‘김어준 논란’은 그런 경우는 아니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이 택한 건 후자였습니다. 야당의 공격이 부당하니 맞서 싸워 김씨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의원들 가운데 정 의원님의 활약이 가장 돋보였지요. 정 의원님은 “김어준의 천재성 때문에 마이너 방송에 불과한 <티비에스>(TBS) ‘뉴스공장’에 청취자들이 열광하는 것이 아닌가”라면서 “청취율 1위가 증명하지 않는가. 라디오 방송 역사의 신기원”이라고 극찬했습니다. 또 “김어준에 대한 공격이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니까 결국 추접스럽게 출연료를 갖고 물고 늘어진다. 처연하다”며 “야구로 치면 김어준은 라디오 업계의 국내 엠브이피(MVP) 투수다. 김어준의 출연료가 안 높으면 그것이 이상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김어준씨보다는 교통방송과 정권이 더 문제”라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출연료 문제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야당의 공격 방식에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정 의원님의 말씀엔 동의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이미 손석춘 건국대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노골적인 진영 방송”입니다. 내심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공영방송이 정파성이 강한 정치팬덤을 주요 수용자로 삼는 걸 목표로 기획된 방송 프로그램을 내보내는 것부터가 잘못됐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정치팬덤의 욕구를 잘 충족시켜준다는 점에서 김씨가 천재성을 갖고 있는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돈벌이를 잘하는 건 그런 천재성보다는 정권 차원의 밀어주기 덕분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청취율 1위’를 내세워 반론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연간 수익 70억원의 큰 몫이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의 광고와 협찬이라는 걸 잘 아시잖습니까.

교통방송이 균형을 취하기 위해 친여가 아닌 친야 정치팬덤을 주요 수용자로 삼는 유사 프로그램을 내보낸다고 가정해보시지요. 친야 지지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만들어주면, 청취율 1위를 다투는 기록을 세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돈벌이는 어려울 것입니다. 정부·지자체·공공기관이 균형을 취하기 위해 광고·협찬비를 친야 프로그램에도 쓸 거라고 믿으시는가요? 기업들이 정권 눈치 전혀 보지 않고 광고·협찬비를 댈 수 있을 거라고 믿으시는가요?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게 ‘라디오 방송역사의 신기원’인 건 맞지만, 그건 라디오를 정치적 도구로 쓰던 과거 역사로의 퇴행이라는 점에서의 신기원일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뤄지는 공영방송의 전반적인 퇴행을 바로잡자고 외친 건 야당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었습니다. 문 대통령이 여러 차례에 걸쳐 “정권의 입맛에 맞는 사장을 앉히기 쉬운 현 공영방송사의 사장 선임권을 개혁해서 그 권한을 국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던 걸 잘 기억하실 겁니다. 이는 현재 공영방송 3사 노동조합도 요구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정권 잡은 후에 달라지는 내로남불, 지긋지긋하지도 않나요?

교통방송은 이미 재단법인으로 독립했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 사장 선임은 독립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른바 ‘알박기’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통방송 경영진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 중립’을 지키겠다는 청사진을 밝히는 게 옳습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관련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전문가인 정 의원님께서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애써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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