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실 때 나를 돌아본다 [박영순의 커피 언어]

이복진 2021. 5. 8.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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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맛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커피의 성분이라는 게 엇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맛을 고르게 될지는 커피가 아니라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커피를 마셔보면 쓴맛이 그다지 우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품질이 좋은 커피는 생각할수록 단맛과 신맛이 길게 이어지면서 그와 관련된 여러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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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의미는 그 자체보다 마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억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인지(cognition)에 있다.
흔히 맛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 그리고 지방맛(oleogustus). 지방맛은 2012년 수용체가 발견됐지만, 맛으로 인정할지를 두고 아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어쨌든 커피를 한 모금 목 뒤로 넘긴 뒤 커피를 대표하는 맛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커피에 어떤 맛을 내는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이 민감해하는 맛일수록 더 두드러지게 감지될 수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커피의 성분이라는 게 엇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맛을 고르게 될지는 커피가 아니라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맛은 온도나 접촉과 같은 물리적 자극이 아니라 특별한 구조를 가진 물질이 화학적으로 수용체에 결합해 전기신호를 발생함으로써 뇌가 감지하게 되는 속성이다. 이런 점에서 쓴맛이 가장 유리하다. 쓴맛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할 독일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수용체가 25개로 가장 많다. 다른 맛들은 수용체가 각각 1~2개에 불과하다. 쓴맛 이외의 맛들은 목숨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므로 굳이 극도로 민감하도록 진화할 요구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피를 마셔보면 쓴맛이 그다지 우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품질이 좋은 커피는 생각할수록 단맛과 신맛이 길게 이어지면서 그와 관련된 여러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에서 묘사한 마들렌 시간여행이 커피를 마실 때마다 되풀이되는 즐거움이란…. 한 잔의 커피를 마시고 미소짓고 때론 눈물이 괴는 것은 향미가 아니라 커피와 관련한 기억이 있는 까닭이다.

커피의 향미를 즐길 때 ‘감각(sensation)-지각(perception)-인지(cognition)’를 떠올리며 단계적으로 몸과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면 더 행복하다. 감각은 ‘아 커피구나!’ 하고 감지하는 순간이다. 혀에 닿는 촉감과 함께 향과 맛이 커피임을 알게 한다. 지각은 경험이 보다 의미 있게 작동하는 단계다. 향미를 통해 그 커피가 에티오피아 하루 농장의 내추럴 커피인지, 콜롬비아 라모렐리아 농장의 카투라인지를 가늠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인 인지야말로 지금 이 순간 커피를 마시는 중요한 이유이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정신이 있고 예술이 있듯이 커피에도 시대정신이 담긴다.

인지는 커피의 향미가 지나간 시간을 일깨우면서 감성과 감정을 만들어내는 단계다. 안개 자욱한 산책길에서 멀리 무엇인가 다가온다는 것을 감지(감각)하고, 그것이 사람임을 구별(지각)하게 된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지나친 뒤 ‘참 인상이 좋은 분이구나!’라는 감성 또는 ‘아! 섬뜩해’라는 감정이 생기는(인지) 과정과 같은 이치이다.

쓴맛은 감성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먹지 말라는 경고만으로 역할을 다한다. 그러므로 수용체가 적지만 다른 맛들이 더 부각돼 우리의 관능이 되고 감성이 된다. 커피를 마시고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잘 살피면 시인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박영순 커피인문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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