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전 국무총리 별세..향년 87세

송기영 기자 2021. 5. 8. 15:35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이 전 총리는 이날 정오 숙환으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경기도 포천 출신인 이 전 총리는 1958년 사법시험(10회) 합격 후 서울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변호사, 검사 등을 지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한 차례씩 여당 원내총무를 맡았고, 김대중 정부 시절 2년 2개월간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한동 전 국무총리./조선DB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7세.

이 전 총리는 이날 정오 숙환으로 자택에서 별세했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에 9일 마련된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조문은 정오 이후 가능하다. 발인은 11일이다.

경기도 포천 출신인 이 전 총리는 1958년 사법시험(10회) 합격 후 서울지법 판사를 시작으로 변호사, 검사 등을 지냈다. 판사 출신으로 검사로 전관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전두환 정부 시절인 1981년 정계에 입문해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당선됐다. 이후 2000년 제16대까지 6선 의원을 지냈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정부에서 한 차례씩 여당 원내총무를 맡았고, 김대중 정부 시절 2년 2개월간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된 최초의 국무총리였다.

판검사 출신답게 논리적이면서도 호탕한 성격으로, 친화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협상을 앞세우면서도 결정력 있는 모습을 보여 ‘단칼’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좌우명 역시 통합의 정신을 강조하는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다. 2018년 발간한 회고록 ‘정치는 중업(重業)이다’에서도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재차 강조했다.

대권에도 도전했지만 연이 닿지 않았다.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 출마했지만, 당시 ‘이회창 대세론’을 넘지 못했다. 2002년 ‘하나로국민연합’을 창당, 다시 대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