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 지점장이 두명 된 사연은? "꽉 막힌 정부 정책에 청년 채용 막혀"

정석우 기자 2021. 5. 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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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 관계없이 누구나 원하는 대로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청년이 우선 아닌가요? 50대와 20대가 취직을 놓고 자기 밥그릇 싸움을 하는 상황이면 모르겠지만, 50대들이 퇴직하겠다는데도 이 길을 막아놓은 게 정부입니다.”

책임자급이 과도하게 많은 이른바 ‘항아리형 인력구조’에 신음하는 한 금융공기업 전직 임원이 최근 한 말이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기관, 특히 청년들이 선호하는 금융공기업 채용이 줄고 있다. “본인이 희망한다면 50대 직원들의 명예 퇴직 길을 열어달라”는 금융 공기업들의 요청을 정부가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게 금융 공기업 담당자들이 지목하는 원인이다.

◇지점별로 ‘지점장님’ 두 명 된 기업은행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는 631개(작년말 기준)의 지점이 있다. 지점 책임자인 지점장도 631명이 있었는데 올해 들어 지점장이 1262명이 됐다.

만 57세 이상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노사가 합의한 기준 연령이 지나 적은 급여를 받는 직원)이 전국 지점수를 넘어설 정도로 늘어나자 기업은행 지점장이 지점 별로 두 명이 된 것이다. 임금피크제 대상인 50대 후반 직원들이 대부분 임금피크제 적용 직전에 지점장을 맡은 간부급이라 호칭을 “지점장”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청년 채용 줄어든 금융공기업

작년 기준 340개인 공공기관 가운데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은 9곳이다.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예금보험공사, 신용보증기금, 한국예탁결제원, 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서민금융진흥원 등 8곳이다.

8곳 금융공기업의 작년 신규 채용은 408명이다. 2019년(495명)에 비해 17.6% 줄었다.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부를 표방하며 2017년 출범했지만, 청년들이 선호하는 금융공기업의 고용 성적표는 부진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성적표는 인구 구조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정부의 경직적인 인력 운용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금융 공기업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꽉 막힌 정부 정책이 청년 채용 막았다”

작년말 기준 기업은행의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수는 666명이다. 2019년말(530명)에 비해 136명 늘어나, 지점수를 넘어섰다. 올해 말에는 1000명 넘게 늘어날 것으로 기업은행은 보고 있다. 서울 소재 기업은행 한 지점 직원은 “시중 은행 같으면 좀더 많은 퇴직금을 주고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의 퇴직 길을 열어주고 젊은 사람들의 채용을 늘리는 방법이 가능한데, 정부의 경직된 공공기관 정책으로 금융 공기업은 조직 신진 대사가 꽉 막혀 있다”고 했다.

8일 금융 공기업들과 금융위원회,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들은 작년부터 만 56세 이상(산업은행 기준) 또는 만 57세 이상(기업은행 기준)인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에 대한 명예퇴직금(희망퇴직금)을 시중은행 수준(2~3년치 연봉+대학 학자금)으로 높이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금융공기업이 아닌 다른 공공기관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어렵다”는 이유로 이같은 요청을 묵살해왔다.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규직 직원은 만 60세인 정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 다만 노사 합의에 따른 임금피크제에 따라 일정 나이에 도달하면 급여가 줄어든다. 급여가 줄어드는 데 그치지 않고, 은행 지점장 등 간부 조직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정한 명예 퇴직금을 주고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의 퇴직을 유도하는 게 시중은행 등 민간 기업에서는 도입된 지 오래다. 50대 직원들에게는 생계에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퇴로를 열어주고, 기업 입장에서는 청년 신입 직원을 채용하기 위한 여력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다. 국민은행은 지난 1월 25개월치 급여와 최대 8학기 자녀 학자금, 최대 3400만원 재취업지원금 등을 조건으로 800명의 희망퇴직을 받았다.

하지만 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 인사 시스템에서는 낯선 이야기다. 국책은행 등 공기업들은 기획재정부의 총인건비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2016년 1월, 산업은행은 2014년 12월을 마지막으로 희망퇴직을 단행하지 않고 있다.

시중은행 수준의 희망퇴직금을 줄 수 없고, 따라서 희망퇴직을 받아도 신청자가 없기 때문이다.

◇”항아리형 구조 더 심각해질 것”

이 때문에 금융 공기업의 항이리형 인력 구조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산업은행의 경우 작년말 기준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은 295명이다. 2023년이 되면 418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게 산은 추산이다. 전체 직원의 7.5명 가운데 1명 꼴인 13.2% 쯤 된다. 산업은행은 베이비부머 세대(55년생~63년생)가 임금 피크제에 들어가면서 이들에게 대출 서류 점검, 담보 확인 등 업무를 맡겨왔다. 산업은행 한 직원은 “오랜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노하우를 전수하는 강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최근 들어 온라인, 비대면 업무 처리가 일반화되면서 이런 업무가 더 이상 불필요해졌다”고 했다. 기업은행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업은행 한 간부는 “이들에게 맡길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는 게 일이 됐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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