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남은 임기 부동산 시장을 잘 이끌려면
얼마 전 만난 한 시중은행 부동산 전문가에게 물었다. 요즘 자산가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무엇이냐고. 그는 ‘자녀에게 어떻게 집을 사줘야 하는가였다’고 답했다. 옆에서 듣던 후배 기자도 맞장구를 쳤다. 중산층 유주택자가 모인 부동산 오픈채팅방들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보인다는 것이다.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주택을 찾아 자녀의 결혼에 미리 대비하려는 사람이 꽤 된다고 한다. 이런 주택은 보유세 부담이 크지 않은데다 취득세 중과 대상에서도 빠진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는 생각과 함께 수요가 쉽게 줄지 않겠다는 걱정이 커졌다.
조금 잠잠해졌나 싶던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썩일 조짐이 보이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의 아파트 값 상승 폭이 커졌고, 인천의 경우 주간 기준 역대 최대치로 올랐다. 이유로는 이번에도 수요에 비해 크게 부족한 공급이 첫손에 꼽힌다. 실제로 한국부동산원의 매매수급 지수를 보면 4주 연속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강화된 대출 규제와 늘어난 보유세 때문에 서울 아파트를 투자 목적으로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분석한다. 지금 넘치는 수요의 대부분은 실수요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청년층의 주택 구매 행렬은 무시 못할 수요 증가 요인이다. 이전 세대보다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자산 증식을 위한 학습에도 적극적인 이들은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총동원해 과감하게 집을 사기 시작했다. 지난해 20대의 아파트 매매거래량은 전년 대비 두 배에 가까운 4만5000건에 달했다. 전체 아파트 매매거래량이 30%쯤 증가한 것을 감안하면 열기를 실감할 수 있다. 2~3년 월급을 모으고 신용대출에 주택담보대출을 합해 2억~3억원쯤 하는 집을 사는 것이 그런 사례다. 30대를 포함한 젊은 층의 구매 행렬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수요가 줄어들 이유를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집값이 오르지 않을 테니 기다리라던 정부의 말은 4년째 지켜지지 않았고, 믿었던 사람만 손해를 본 꼴이 됐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당장 집을 사야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집부터 사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오늘 7월부터 규제지역에서 6억원 초과의 집을 살 때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이내로만 대출을 해주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규제를 예고하면 하루라도 빨리 대출을 받아 집을 사둬야 한다는 조급함이 생길 텐데 어쩌자는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필요한 규제여도 때가 있는 법이다.
정부가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책을 내놓는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민간의 임대주택을 공공임대주택처럼 저렴하게 오래 살 수 있는 집으로 바꾸겠다며 만든 등록임대사업자 세제혜택은 정부 의도와 달리 투자수요에 불을 질렀다. 다주택자에게 보유세와 양도세를 중과하면 보유한 집을 처분해 공급이 늘 거라는 예상도 전혀 들어맞질 않고 있다. 보유세 부담보다 양도세 부담이 크니 매물이 잠겼다. 임대차 3법 등 전·월세 규제는 임대 공급을 줄이고 남아있는 전세 물건도 월세로 돌리게 만들고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시장 참여자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할 방안을 궁리해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인간의 욕망을 인정하는 일이다. 그러려면 시장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는 것부터 바꿔야 한다. 다주택자 전체를 투기꾼으로 취급하고 규제를 퍼부은 결과 이들이 ‘증여’라는 우회로를 찾아 대응한 것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벌써 물려줄 생각은 없었지만 세금으로 내는 것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이 행동은 악한 행동일까.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볼 때 시장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신도시 땅 투기와 정상적인 주택 거래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증여가 느니 증여에 벌을 주자고 할 게 아니라 매도에 상을 주자고 해야 숙제의 실마리가 풀린다. 재건축도 비슷한 관점에서 다시 생각하자. 점점 존재 이유를 모르겠는 용적률과 고층 규제를 풀어 더 짓게 하고 대신 싸게 많이 분양하도록 유도하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낳지 않을까.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다. 선과 악의 구분이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여당의 부동산특위 위원장이 경제통 관료 출신 정치인으로 바뀌었다니 한 번 더 기대를 해보려고 한다. 시장에 윽박지르는 것은 실패한 정책이다. 다독이는 정책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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