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경제] 반도체에 56兆 쏘는 미국, 한국은 이제야 세금 감면 검토
화끈한 지원책으로 앞서가는데
한국은 대기업 특혜 눈치보기
정부가 지난 6일 반도체 산업에 대해 세금감면(세액공제)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코로나 충격 속에서도 우리 경제를 지탱해 주는 게 반도체 산업이니까 분명 반가운 소식은 맞습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만한 처지도 아닙니다. 미국·중국·대만 등 우리 경쟁국들은 이미 저 앞에서 달려 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경쟁국들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미국은 ‘반도체산업지원법’ 등을 통해 각종 연구개발(R&D)과 인프라에 최대 500억 달러(약 56조 3,000억 원)를 쏟아붓기로 했고, 중국은 오는 2030년까지 반도체 장비·원자재 등에 관세를 물리지 않는 파격적인 혜택을 이미 주고 있습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세계 최강자인 TSMC를 앞세운 대만도 연구개발(R&D) 투자비의 최대 15%에 대한 세액 공제와 패키지 공정 테스트 비용의 40%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놓치면 산업 생태계의 주도권까지 놓치게 된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이 지원 대책에 담겨 있는 셈입니다.
그럼 대한민국은 어떨까요. 정부도 그동안 ‘혁신성장 빅3 추진회의’ 등 각종 회의체를 만들어 나름대로 지원책을 내놨습니다. 수천억 원대 기금도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막상 반도체 산업을 이끄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게는 유독 혜택이 야박했다는 것입니다. 정부가 이제야 세금 혜택을 주기로 한 것도 이러다 다른 나라와 경쟁에서 밀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부랴부랴 특별 지원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입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은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세계 1위지만 시스템 반도체에서는 다른 나라에 뒤처지고 있어 지금이라도 미국 등 경쟁 국가 수준의 파격적인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세액 공제율 확대에 따라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이 받을 수 있는 세금 감면(세액공제) 혜택은 연간 수천억 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일단’ 전망되고 있습니다.
예들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R&D 및 시설 투자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율이 확대됩니다. 현재 전통 제조업 분야 대기업들의 기술 투자는 대부분 ‘일반 업종’으로 분류돼 1%(시설 투자)~2%(R&D) 수준의 세금 감면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철강 제조사인 포스코가 올해 1,000억 원 규모의 일반 시설 투자를 단행했다고 가정할 경우 이 투자 금액의 1%인 10억 원만 산출 세액에서 공제해주는 식입니다. 대기업이더라도 ‘신성장·원천기술’ 분야에 투자한 것으로 인정 받으면 R&D 공제율이 20~30%까지 늘어나고 시설 투자 공제율도 3%까지 확대되지만 이 같은 ‘인증’을 받는 것 자체가 까다롭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기존 일반, 신성장·원천기술 외에 ‘반도체’ 트랙이 별도로 추가됩니다. 반도체 투자에 대해서는 별도의 세액공제율이 적용되는 셈입니다. 정부는 별도 공제율을 아직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여당인 민주당이 반도체 R&D에 대한 공제율을 40%로 상향하는 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해둔 상태다. 시설 투자 세액공제도 3% 이상 수준으로까지 상향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이런 세율을 기업들에 반영해보면 대략적인 세금 감면 액수를 추산해볼 수 있습니다. 가령 삼성전자의 지난해 반도체 시설 투자액은 약 32조 9,000억 원인데, 이 금액 전부를 개정 세법상 공제 대상으로 인정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삼성전자는 약 9,870억 원(32조 9,000억 원×3%) 이상의 법인세 감면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R&D에도 약 21조 1,114억 원을 쏟아부었지만 이 금액 전부가 세법상 R&D 비용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합니다.
또 일명 ‘반도체 트랙’에 우리가 이미 세계 1위인 메모리반도체 관련 투자는 인정하지 않고 시스템 반도체(파운드리·AP·이미지센서)만 인정할 가능성도 남아 있습니다. 이 경우 실제 세금 감면 혜택은 앞서 제시한 것보다는 상당히 낮아질 수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일단 조세특례법을 개정해 세금 감면 제도를 설계해놓으면 일몰 기간이 다가오더라도 혜택을 종료하기 어려워 장기적으로 재정 건전성에 짐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입니다. 재계에서는 “정부가 기왕에 지원을 맘먹었다면 수천억 원대 혜택을 줘 공격적인 투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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