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억 빚에 갑자기 한부모됐지만..12살 '음악천재'의 탄생

이수민 기자 2021. 5. 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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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있는 것 알면서도 학원 보내주지 못해 미안해"
월드비전 광주전남지역본부로 도움의 손길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광주 서구 화정동에서 만난 김현희(45)·정지민(12)·정하윤(10) 가족이 해맑게 웃고있다. 2021.5.8/뉴스1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엄마가 혼자서 우리를 키우느라고 힘들 것 같아요. 학원 가고 싶은데… 죄송한 마음이 커요."

작은 쪽방에서 음악가의 꿈을 키우는 한 소녀와 어머니의 가슴 뭉클한 사연이 전해져 울림을 주고있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7일. 광주 서구 화정동 한 주택 2층 셋방에서 악기 연주 소리가 들려온다.

가파른 계단으로 2층에 올라 문을 열자 나타난 작은 쪽방. 방 한가운데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오늘의 주인공 정지민양(12)이 있다.

관객은 겨우 두명, 어머니인 김현희씨(45)와 동생 정하윤양(10)뿐이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마냥 즐겁다.

지민양의 연주에 맞춰 동생 하윤이가 춤을 추기도 잠시. '어머님 은혜'를 연주하자 엄마인 현희씨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이들 가족에게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2018년의 어느 날 갑작스레 빚더미에 앉게 된 현희씨는 두 딸과 함께 길가에 나왔다.

조금 사치스럽긴 했어도 좋은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몰래 자신의 이름으로 약 10억원의 빚을 남기고 이혼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백혈병으로 투병하던 친언니를 간호하느라 신경을 쓰지 못해서였을까. 출처도 모르게 생겨난 빚에도 현희씨는 자신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부터 현희씨는 '슈퍼맨 엄마'가 됐다. 아름다운 재단에서 선정하는 한부모 창업지원반에 들어가 기술을 배웠고 직장을 구해 밤낮으로 일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지 말라며 우는 자매를 두고 억지로 발걸음을 떼 일터로 나갔다. 그사이에 아이들은 철이 들어 스스로 밥을 지어 먹게 됐다.

때때로 셋방에는 빚쟁이들이 찾아 왔고 그때마다 주인 집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보호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가슴이 '철렁'하다가도 고마운 사람들의 배려에 이겨낼 의지가 생겼다.

너무도 힘든 나날 속, 현희씨는 지민이의 방과후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놀랍고도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다.

"지민이가 아마도 천재인 것 같아요, '음악천재'!"

빠듯한 생활비로 사교육은 엄두도 못 냈던 현희씨는 저렴한 가격으로 악기를 배울 수 있는 농성초등학교 방과후 바이올린·기타 연주반에 지민이를 등록시켰다.

겨우 몇달이나 배웠을까? 지민이는 연습하지도 않은 곡을 듣기만 하고 한 번에 거뜬히 연주하게 됐다. 선생님도, 다른 친구들도 입이 떡 벌어져 놀랐다.

지민이의 천재적 소질은 바이올린과 기타뿐이 아니었다.

이혼 전 여유로웠던 시절, 겨우 6개월 피아노 학원을 보냈던 게 전부인데 지민이가 음악을 듣더니 책상에 피아노를 치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장난이겠거니, 치는 척이겠거니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실제로 피아노 앞에 선 지민이는 '절대음감'을 이용해 음악을 듣자마자 즉시 연주를 해냈다.

모두가 지민이에게 음악 교육을 권유했고, 지민이도 '음악가'가 되고 싶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학교의 사정으로 교내 방과후 음악반은 폐강됐다.

중고 물품을 판매하는 사이트에서 무료로 헌 바이올린을 기부받아 혼자서 연습을 하게 했지만 무리였다. 또 광주 서구청의 소원성취 프로그램에 등록해 클라리넷을 선물 받기도 했지만 정해진 몇회의 레슨이 끝나자 지민이가 배울 곳은 없었다.

매일 벽에, 책상에… 있지도 않은 피아노를 가상으로 만들고 유튜브 영상으로 연주를 배우는 지민이의 모습에 엄마 현희씨의 속이 타들어 갔다.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 7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한 주택에서 '음악천재' 정지민양(12)이 '어버이 은혜'를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고 있다. 2021.5.8/뉴스1

김현희씨는 "당장 먹고사는 것도 빠듯한 형편인데 학원이나 레슨비는 상상도 할 수 없다"며 "음악적 소질이 있는 걸 알면서도 엄마로서 해줄 수 없는 게 답답하고 미안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미안하다는 말에 옆에 있던 지민이와 하윤이가 엄마를 쓱 올려다 본다. 현희씨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자 아이들도 따라서 코 끝이 빨개진다.

현희씨는 "하고 싶어 하는 걸 알면서도 못하게 하는 엄마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모른 체하고, 못 본 척하고, 외면할 수가 없어서 이 사연을 알리게 됐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12살의 지민이는 또래보다 너무도 성숙했다. 눈물이 고인 엄마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죄송하다"고 말한다.

재능이 있을 뿐인데 무엇이 죄송한 걸까. 현희씨가 다시 한번 눈물을 삼킨다.

지민양은 "피아노 연주도 다시 배우고 싶고, 바이올린과 기타도 치고 싶다"며 "(근데) 배우고 싶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왠지 죄송하다. 학원 가고 싶은데 이상하게 죄송한 마음이 크다"고 털어놨다.

이어 "엄마가 혼자서 돈도 벌고 저희를 키우는데 학원까지 말씀드릴 수가 없다. 지금도 충분히 사랑하고 감사하다"며 "나중에 어른이 되면 꼭 엄마를 항상 웃게 해주는 음악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 눈치 대신 어리광과 욕심을 부려야 할 12살 어린이의 입에서 "엄마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듣고나니 그 안타까움에 속이 시큰해졌다.

이들의 애틋하고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지자 월드비전 광주전남지역본부도 마음을 모으기로 했다.

월드비전은 겨우 몇달이라도 지민이가 학원을 다닐 수 있도록, 현희씨가 조금 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보탤 후원자들의 지원을 기다리고 있다.

월드비전 관계자는 "경제적으로 힘든 와중에도 꿈을 잃지 않는 지민이와 혼자서도 꿋꿋하게 아이들을 기르는 현희씨의 사연이 많이 알려져 음악천재 지민이가 꿈의 결실을 맺을 수 있길 바란다"고 사연 공개의 이유를 밝혔다.

이어 "작은 마음이 차곡차곡 쌓여 한 아이의 미래를 만들어 줄 수 있다"며 "이들 가족이 이번 어버이날을 계기로 서로에게 미안함 대신 감사함과 사랑만을 나눌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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