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위 '공중수도원'.. 신앙은, 이렇듯 숭고하다 [박윤정의 칼리메라 그리스!]

최현태 2021. 5. 8.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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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메테오라
9~11세기 수도사들
오스만 제국의 핍박 피해 은둔 시작
뾰쪽한 절벽 봉우리마다 수도원 지어
일부 수도원 도르래 이용해 왕래 '아찔'
146개 계단 올라가 본
메갈로 수도원 '경이' 그 자체
메테오라. 아테네에서 350km 북쪽에 위치한 수도원 지구이다. ‘공중에 매달린’, ‘하늘 바로 아래’라는 뜻으로 바위 기둥 위에 세워진 6개의 동방정교회 수도원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리스 역사를 신화에서 출발한다면, 이 땅은 신들의 세상이었을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을 믿고 신께 많은 것을 의지했다. 다신교 문화가 익숙한 이들에게 사도 바울과 함께 전해진 기독교도 거부감이 없었다고 한다. 기독교 신도 여러 신 중 하나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오늘날은 그 수많은 신을 뒤로하고 그리스정교회 신자가 인구의 95%를 차지한다. 거의 모든 그리스인이 교회에서 태어나고, 결혼하고, 죽는다고 한다. 실제로 교회에서 출생을 하는 건 아니지만 교회로부터 세례를 받으면서 탄생의 의미를 부여받고, 가족을 구성하는 결혼식은 교회에서 치르며 주위로부터 축하를 받고, 생의 마지막 장례식 또한 교회에서 치러진다. 일생의 모든 의식을 교회와 함께한다고 볼 수 있다. 정교회는 곧 그리스인들의 삶이 되었다. 아테네 시내에도 많은 교회가 있고 산토리니섬을 비롯한 섬 하나하나에도 하얀 작고 예쁜 교회들이 바다를 벗 삼아 자리한다. 이렇듯 도심과 자연을 배경으로 한 수많은 교회 중 특별한 기독교 성지를 하나 선택하라면, 이견 없이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5시간 정도 이동하면 다다르는 곳, 메테오라이다.
테르모필레. 고대 카리모도로스산의 험준한 절벽과 마리아코스만에 끼여 좁은 폭의 도로로 기원전 480년에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로 유명하다. 현재는 국도 옆에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들을 이끌고 전사한 레오니다스왕의 동상으로 그 날을 기억한다.
메테오라는 그리스 북쪽 끝은 아니지만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본토 중간에 자리하지만 아테네와 350km 정도 떨어져 있는 꽤 먼 거리이다. 아테네에서 당일로 다녀오기 어려운 거리이니 하루 정도 머물며 여유롭게 방문한다면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철도가 발달되어 있지 않고 공항도 100km 이상 떨어져 있어 육로 이동을 추천한다. 버스는 아테네를 출발해 북쪽을 향해 달린다. 2시간을 달리니 온몸이 저리고 피곤함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바다 풍경도 지루해질 무렵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메테오라를 160km 정도 남겨두고 아테네에서 약 200km를 달려왔다. ‘뜨거운 통로, 문’을 의미하는 테르모필레이다. 열천이 솟아나는 것으로부터 이름이 유래된 고대 카리모도로스산의 험준한 절벽과 마리아코스만에 끼여 좁은 폭의 도로로 방어에 유리한 지형이었다고 한다. 이 땅에서 가장 유명한 전투는 기원전 480년에 벌어진 테르모필레 전투로 우리에게는 영화 ‘300’으로 알려져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서에 따르면 이 지형 덕분에 210만명의 병력을 상대로 3일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국도 옆에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300명의 스파르타 병사들을 이끌고 전사한 레오니다스왕의 동상으로 그 날을 기억한다. 기념 동상만 초라하게 서 있는 곳에서 기지개를 켜며 옛 시절보다 멀어진 산과 해안선 사이 협곡을 내려다본다. 그리스 중동부 지역을 떠나 목적지인 메테오라를 향해 다시 버스에 오른다.
창밖 풍경은 점점 더 험준한 산세를 스친다. 드디어 메테오라가 있는 도시, 칼람바카로 들어섰다. 약 20km 직선 도로를 달리니 정면에 작은 언덕 같은 돌산이 보인다. 점점 거대한 바위 절벽이 펼쳐진다. 또다시 직선 도로를 10여분 달리니 점점 무엇인가 큰 형체가 다가온다. 마치 카메라 줌 인을 하듯 대상과 가까워지고 이상한 나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메테오라는 ‘공중에 매달린’, ‘하늘 바로 아래’라는 뜻이란다. 절벽 위로 차가 오르면 비로소 수도원들이 나타난다. 바위 기둥 위에 세워진 6개의 동방정교회 수도원은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신기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위 절벽 위에 수도원 건물 하나가 오롯이 서 있고 진입로를 찾을 수 없는 협곡 사이에 수도원 건물들이 보인다. 360도 시야를 메우는 것은 파란 하늘과 산, 그리고 바위 절벽 위 수도원 건물들이다. 자연 속에 자리한 수도원은 더욱 신성스럽다. 고전영화 ‘7인의 독수리’에서도, 007시리즈 ‘유어 아이즈 온리’에서도 이런 풍경을 다 담지 못했다. 예전 방영된 ‘꽃보다 할배’ 그리스편에서 출연자들이 이곳 언덕에 올라 감동에 젖는 장면이 과장이 아니었구나! 그들처럼 흐르는 눈물을 훔쳐본다.
메테오라의 바위 봉우리는 6000만년 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후 풍화작용과 지진으로 뾰족한 봉우리는 세월의 무게를 이고 지금의 모양을 이루었다. 수도원이 들어선 것은 9세기라고도 하고 11세기부터라고도 하는데, 14세기 동로마제국이 멸망하고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점령하면서 이곳에 더 많은 수도사가 모여들었을 것이다. 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험한 지형을 선택한 터키 카파도키아나 스페인 몬세라트와는 또 다른 분위기이다.
메갈로. 메테오로 수도원. 15세기 메테오라에 세워진 가장 높고 규모가 큰 수도원으로 현재 146개 계단을 오르면 접근이 가능하다.
과거에는 접근 자체가 아예 불가능했다고 하니 불편함을 지고라고 지켜내고자 했던 신앙의 숭고함을 생각해 본다. 어떤 수도원은 도르래를 이용하여 수직으로 몇백 미터가 넘는 곳을 오르고 내렸다고 하니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24개 수도원 중 관광객이 방문할 수 있는 수도원은 길이 좋지는 않지만 그나마 접근이 가능한 여섯 곳이다. 그중 한 곳, 메갈로 메테오로 수도원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장 높이 있고 규모가 크지만 146개 계단을 오르면 들어갈 수 있는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수도원이다. 146개 계단에 지친 무거운 다리는 본당에 이르면 피곤함을 잊는다.

그리스에서도 가장 우수한 교회 건축물 중 하나로 크레타 출신 성화가 세오파니스의 작품과 함께 다양한 유물이 피곤함을 잊게 하고 심신을 평화롭게 한다. 오르느라 힘겨웠던 계단은 오늘날 이렇게 동굴을 뚫어 계단으로 연결시켰다고 하니 과거에는 다른 수도원들처럼 어떻게 아랫마을과 왕래를 했을까. 신화의 나라 그리스에서 신전이나 신전 터 없이 시간 여행을 즐긴다. 지중해 바다의 푸른 빛깔도 사라진 높은 절벽과 수도원에서 역사의 흐름을 타고 고대 그리스를 지나 중세에서 노닌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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