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선박 대란]③ 꺾일 기미 안 보이는 운임.. 지난달에야 '수출입 상생협의체' 첫발

권오은 기자 2021. 5. 8.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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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기업들이 선박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운임 부담으로 공장가동을 멈추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한진해운 사태’ 당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가 해운업을 포기해선 안 된다는 산업계 목소리가 묵살됐고, 그 여파가 코로나 사태를 만나 수출대란으로 돌아왔다. 해운산업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한국 해운산업의 실태를 짚어보고 해운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컨테이너선 운임이 사상 최고치를 매주 경신하고 있다. 연말까지 이같은 강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수출기업들은 어려움을 토로하지만 정부도 마땅한 대안이 없다. 사실상 HMM(011200)을 비롯한 국적선사들의 임시 선박 투입에 의존하고 있다. 선사와 화주간 입장이 뒤집히면서 정부의 ‘상생’ 정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 롱비치항에 정박한 컨테이너선에서 하역 작업이 진행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 매주 늘어나는 물동량… 4분기까지 운임 강세 예상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의 산 페드로만 앞에는 지난 5일 기준 20척의 선박이 입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는 미국 서안 최대 항인 로스앤젤레스(LA)항과 롱비치항이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아시아~북미 노선에 물동량이 쏠리면서 선박들이 대기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됐다. 선박들이 산 페드로만에 도착해 접안하기까지 현재 평균 5일이 걸린다. 최대 16일까지 걸리는 경우도 있다. 롱비치항만청은 오는 30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컨테이너량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수급 균형이 무너지면서 운임에 불이 붙었다. 지난 3월말 이집트 수에즈운하 선박 좌초사고까지 겹치면서 물류망이 좀처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 컨테이너선 운임 지표인 ‘상하이 컨테이너선 운임지수(SCFI)’는 지난 7일 기준 3095.16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해 4배 수준이다.

컨테이너선 운임 강세는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굳어지고 있다. 글로벌 1위 선사 머스크의 쇠렌 스코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5일 미디어콜에서 “(아시아~북미 노선이) 엉망이고 해결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올해 4분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배재훈 HMM 사장도 지난달 23일 ‘제1차 한국 조선해양산업 CEO 포럼’에서 “(고운임 상황이) 길게 가면 올해 3~4분기까지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선사들이 선복량(적재능력) 조절에 나서면 더 장기화될 수 있다. 선사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을 때 임시결항(Blank Sailing)을 통해 노선 투입 선박수를 조절한다. 덴마크 해운분석업체 씨인텔리전스(sea-intelligence)에 따르면 코로나 사태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졌던 지난해 4월 첫주에는 임시결항이 북미 노선에서만 73건 나왔다. 현재는 평균치인 10건 안팎이다. 아직 공급 조절을 통한 운임방어는 시작도 안했다는 의미다.

그래픽=김란희

◇ 정부, 임시선박 투입하기 바빠… 화주와 선사 간 ’갑을’ 뒤집히며 상생론도 퇴색

지난해 하반기부터 ‘수출 대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부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적선사인 HMM과 SM상선, 고려해운 등을 통해 임시 선박을 투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가장 많이 임시선박을 띄운 HMM은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일까지 북미 서안 노선 등에 총 21척을 투입했다.

해양수산부는 이달부터 중소·중견기업에 선적공간을 우선 배정하는 사업도 확대하기로 했지만, HMM의 북미 정기노선 선박에만 350TEU를 마련하던 것을 유럽 노선에 50TEU 추가하는 수준이다.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수출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있지만 액수가 크지 않아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말도 나온다. 중소·중견기업 대상 국제운송비 지원사업은 선정 기업에 최대 1000만원, 전자상거래 수출기업 대상 해외배송비 지원사업은 해상 운임기준 최대 200만원을 지원한다.

물류업계 관계자는 “정부라고 하루아침에 배를 구해 올 수 없으니 이해는 한다”면서도 “임시선박이나 지원금 수준에서 그칠게 아니라 선사와 수출기업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사와 화주간 ‘갑을’ 관계가 뒤집히면서 정부가 추진하던 ‘상생론’도 설자리를 잃었다. 국내 수출기업들이 “운임이 과도하다”고 문제를 제기하면, 국적선사들은 “글로벌 선사간 출혈 경쟁이 이어질 때 외면했던 일은 벌써 잊었느냐”고 맞받는 식이다.

지난해부터 이야기가 나왔던 관계 부처, 민간전문가, 기업으로 구성된 ‘수출입물류 상생협의체’는 지난달 27일에야 첫발을 뗐다. 정부가 나서 선사와 화주간 운임 문제 등을 조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기업간 입장차가 커 출범까지 애를 먹었다고 한다. 수출입물류 상생협의체는 ▲장기계약 확대 ▲불공정거래 방지 목적의 상생형 표준 거래계약서 도입▲ CIF(운임보험료 포함 거래조건) 조건 전환 등을 우선 과제로 정했다. 방향만 잡혔을뿐 실제 결과를 내기까지 상당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고운임동남아 노선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국적선사들로 구성한 한국형 해운동맹 ‘K-얼라이언스’는 다음달 공식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선사별로 의견이 달라 출범 시기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선사와 화주간 문제도 시장논리로 접근해야 하는데, 정부가 자꾸 선의에만 기대려는 것 같다”며 “어느 선사가 지금과 같은 해운 시황을 놓치고 싶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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