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미래 외면하는 국민연금

홍준기 기자 2021. 5. 8.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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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이 연금을 지급하려 자산을 팔아야 하는 시기가 머지않아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에 대해 잘 아는 금융 투자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율을 줄이고 해외 주식 비율을 늘리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국민연금의 금융 자산 중 국내 주식 목표 비율은 2016년 말에는 20%였는데, 국민연금은 매년 이 목표치를 낮추고 있다. 올 연말 기준으로는 16.8%다. 지금은 매년 걷히는 보험료가 지급하는 연금보다 많아서 자산이 늘고 있지만, 저출산·고령화 결과로 지급할 연금이 더 많아지면 자산을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 국민연금이 너무 많은 국내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한 번에 많은 주식을 내다 팔면서 국내 증시에 충격을 줄 수 있다.

김춘이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 등이 2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앞에서 열린 국민연금의 석탄발전 사업 투자 중단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당장 2030년만 되어도 국민이 내는 보험료(71조5370억원)보다 은퇴자 등에게 줄 연금(72조9850억원)이 많아진다. 불과 9년 뒤의 일이다. 이때부터는 2008년(국민연금 수익률 -0.18%)과 2018년(-0.92%)처럼 국민연금이 마이너스 투자 수익률을 기록하면 기존 자산을 대거 팔아서 연금을 주는 일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율을 낮추려 지난해 말부터 보유한 국내 주식을 계속 팔자 일부 주식 투자자는 ‘국민연금이 내 주식 주가 상승을 방해한다’며 화를 냈다. 그러자 투자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국민연금은 지난달 9일 국민연금이 보유할 수 있는 국내 주식 비율을 1%포인트가량 늘리기로 했다. 정부와 국민연금이 당장 9년 뒤의 미래조차 무시하고 근시안적인 정책 결정을 한 것이다. 유권자이기도 한 투자자들을 잘 달래는 것이 이 정부에는 더 중요했을지도 모른다.

국민연금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태도는 늘 이런 식이었다. 정부는 2018년 네 가지 국민연금 개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명색이 개선안인데 1안이 ‘현행 제도 유지’였다. 2057년에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면 보험료율을 24.6%로 올려야 한다. 그런데도 보험료 올리겠다고 하면 ‘유권자’들이 반발할 것이 무서워 미래를 외면한 것이다.

3안과 4안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높이지만, 연금 혜택도 늘리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는 시기가 5~6년 늦춰지지만, 기금 고갈 직후 미래 세대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지금의 3배 이상인 31.3~33.5%가 되어야 한다. 국민연금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부가 당장의 인기 때문에 미래 세대의 예정된 고통을 외면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과거 노무현 정부는 2004년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에서 2030년 15.9%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냈었다. 법안의 취지는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안정을 도모하고, 자녀 세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였다. 현 정부 관계자들이 이 법안을 다시 읽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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