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백신 특허풀기’… 佛·伊·中·러 환영, 獨은 반대

파리/손진석 특파원 2021. 5. 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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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지재권 면제] ‘지재권 면제’ 각국 기싸움 치열

코로나 예방 백신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이하 지재권)을 보호할지 여부를 둘러싸고 국제사회에서 찬반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화이자·모더나 등의 독점적인 특허를 풀어 여러 나라가 백신을 만들자는 제안에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힌 지 하루 만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백신을 둘러싼 국제 사회의 주도권과 자국의 이익을 놓고 치열한 기싸움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국제사회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이 미래를 내다보며 치열하게 ‘백신 리더십’ 경쟁을 벌인다는 평가도 나온다.

6일(현지 시각) 독일 정부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 명의의 성명에서 “백신 생산을 제약하는 요소는 생산 능력과 높은 품질 기준이며, 특허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독일 정부는 이어 “지재권 보호는 혁신의 원천으로 미래에도 유지돼야 한다”고 했다. 기존 백신 생산 업체들이 고품질 백신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며 특허를 공유한다고 해서 생산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한 백신 개발에 성공한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지 않으면 향후 다른 전염병이나 불치병에 대한 백신·치료제 개발 의지가 꺾일 수 있다는 우려도 표시한 것이다.

독일은 일단 화이자와 코로나 백신을 공동 개발한 자국 기업 바이오엔테크의 이익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독일 제약사 큐어백이 화이자, 모더나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메신저리보핵산(mRNA) 방식의 백신 개발 성공을 코앞에 뒀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독일이 서로 상반된 입장을 표시한 가운데 미국이 지재권 유예에 전향적인 입장으로 돌아선 배경도 주목받고 있다. 7개월 전 인도와 남아공이 백신 지재권을 풀자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요청했을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표시했는데, 바이든 행정부가 이를 번복했기 때문이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당 일각에서 제기된 “인도적인 차원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는 요구를 무시하기 어려웠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가 ‘백신 외교’로 남미·동유럽·아프리카에 영향력을 확대하는 흐름을 차단할 필요가 커지는 시점이라는 것을 염두에 뒀다. 백신 지재권을 유예하면 “중국의 코로나 백신은 글로벌 공공재가 될 것”이라고 했던 중국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선언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중국의 시노팜, 시노백 백신이 WHO(세계보건기구)나 EMA(유럽의약품청)의 승인을 기다리는 도중에 특허 인정을 중단시키면 중국산 백신 확산을 저지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백신 접근성 문제에 대한 노력을 지지한다”며 일단 미국의 특허 포기 제안을 환영하면서도 “중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개도국에 백신을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은 신기술인 mRNA 방식의 백신은 생산 노하우를 공유하더라도 쉽게 만들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280가지에 달하는 원료를 구하기도 어렵고 생산 시설·전문 인력이 부족해 생산이 가능한 나라가 제한적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따라서 백신 특허를 풀 경우 mRNA 방식인 화이자·모더나는 별다른 타격을 입지 않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백신을 만든 아스트라제네카나 중국산 백신의 손해가 크다는 점이 미국의 노림수라는 해설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지재권을 유예하려면 164국에 달하는 WTO 회원국이 모두 찬성하고 제약사들도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무산된 수 있다. 따라서 미국 입장에서 ‘백신 특허 포기’는 실질적인 손해가 크지 않은 가운데 중국·러시아를 견제하며 국제사회의 리더십을 공고히 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카드다.

지재권 유예는 7~8일 이틀간 비공식 회의로 열리는 EU(유럽 연합) 정상회의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어떤 제안도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며 전향적인 입장이다. 프랑스·이탈리아 등 상당수 EU 회원국들은 지재권 유예에 찬성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원칙적으로 찬성 입장을 밝혔다. 영국과 일본은 뚜렷한 찬반 입장을 표시하지 않고 있다.

제3세계는 백신 지재권을 유예하더라도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보는 분위기다. 존 응켄가송 아프리카질병통제예방센터 소장은 “우리는 지금 손에 넣을 수 있는 백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백신 만들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선진국에서 만든 고품질 백신을 빨리 공급받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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