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네팔의 들풀이 예술로 환생했다
‘영혼이 깃들지 않은 손으로 작업한다면,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Where the spirit does not work with the hand, there is no art).’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처럼 손은 예술의 거점(據點)이다. 개념 예술이 활개 치지만, 여전히 예술가가 시간과 다투며 손끝으로 빚어낸 작품이 주는 감동은 유효하다.
정직한 손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소박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평창동 누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공예전 ‘스미고 번지는’전(展). ‘아늑하고 조용한 구석’을 뜻하는 영어 단어 ‘누크(nook)’를 붙인 이름처럼 평창동 주택가에 다소곳이 둥지 튼 갤러리에, 공예가 열세 명의 작품이 전시돼 있다.
숨은 부제는 ‘스승과 제자 전’. 중견 공예가 김정후(62) 작가가 출강한 대학들에서 가르친 제자 열두 명이 함께했다. 모두 전업 작가로 활동하는 예술가다. 공예는 도제 시스템이 남아 있는 분야. 제목처럼 스승의 정신이 제자에게 다양하게 ‘스미고 번진’ 모습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건축과 공예품을 함께 보는 게 감상 포인트. 규모는 크지 않으나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2층짜리 갤러리 건물은 ‘트윈트리 타워’(옛 한국일보 사옥 자리에 들어선 나무 밑둥치 모양 건물) 등을 설계한 유명 건축가 조병수가 20여 년 전 주택으로 설계한 작품. ‘ㅁ(미음)’ 자 한옥의 공간 구성을 현대적인 건축물에 접목했다. 중정을 중심으로 마주 보고 있는 안채와 별채 두 공간이 전시장으로 쓰인다.
이번 전시는 작품 색깔에 따라 설치 공간을 나눴다. 안채엔 무채색 계열의 작품이, 별채엔 유채색 작품이 전시됐다. 안채에선 전시의 구심점인 김정후 작가가 귀갑(龜甲·거북 등딱지)으로 만든 브로치, 지난해 ‘로에베 크래프트 프라이즈’ 최종 후보에 선정돼 주목받은 조성호 작가의 은기(銀器), 오세린 작가가 광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반지 등을 볼 수 있다.
안채 쇼윈도에 설치된 허유정 작가의 ‘허바리움(herbarium·식물 표본)’은 섬세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가가 20년 전 런던 유학 시절 자연사 박물관에서 복사해 간직해온 식물 표본 이미지를 ‘포토 에칭(사진 인화 기법을 금속판에 접목한 방식)’을 활용해 얇은 철판으로 정교하게 살려냈다. 1800년대 영국 식물학자가 네팔에서 채집한 들풀이 200년 세월을 뛰어넘어 서울에서 예술로 환생했다. 별채엔 이승현 작가가 천 조각을 잇는 듯한 용접법으로 만든 금속 기물, 신혜림 작가가 녹색 원형 가죽을 수십 겹 꿰어 만든 브로치 등이 출품됐다.
이게 끝이 아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상설 전시작이 숨어 있다. “하늘을 보세요. 우리 갤러리 특별 소장품이에요.” 갤러리 직원의 말을 듣고, 중정에 서서 고개를 젖혀 위를 올려다봤다. 네모로 잘린 하늘이 빼꼼 얼굴 내밀고 있었다. “‘빛의 마술사' 제임스 터렐의 작품이 안 부러운 자연 작품이랍니다.” 직원의 설명에 웃음이 번졌다. 공예와 건축, 자연. 삼박자가 어우러진 이번 전시는 14일까지 열린다. 일·월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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