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서울 양동 쪽방촌 이야기

최현숙 구술생애사 2021. 5.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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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선거철이면 민심을 앞세워 1번과 2번 정권의 부동산정책이 또 한바탕 어떤 변덕을 부리든, 그 변덕을 진원지로 아파트를 선두로 부동산 값이 또 어떻게 출렁이든, 서울역 맞은편 남대문경찰서 뒤 언덕에 사는 양동 쪽방촌 주민들은 그쪽으로는 마음을 접는다. 쪼개고 또 쪼개 만들어져 ‘쪽방’이라고 불리지만 어쨌든 사방은 막힌 한 평 남짓 공간에 몸을 들여 희로애락의 일상을 살아왔다. 쪽방촌을 포옥 묻고 있는 주변 고층 빌딩들이나 거기서 나오는 고급 승용차에도 생각을 안 줘야 편하다. 그들의 마음과 눈길은 건너편 바라다보이는 서울역광장의 노숙인들이다. 그들 대부분이 그곳을 거쳐 왔고, 지금도 사람 만나고 바람 쐬러 가는 곳이다. 부모 잘못 만나 시작부터 가난했든, 생애 어느 시절 몰락했든 험할수록 더 싸구려인 온갖 막장일들을 전전했지만 대부분 방 한 칸을 차지하기 힘들었다. 문맹인 이씨(65)는 구두닦이와 넝마주이를 거쳐 신안 앞바다 소금밭 창고 잠과 시장 바닥 리어카 잠을 자다 난생처음 내 방을 얻은 지 1년째란다. 그래서 이젠 더 바랄 게 없고, 모진 삶을 살아낸 스스로가 대단하다며 순하게 웃었다. 주민들 대부분이 다행히 기초수급자가 돼서 딱 쪽방 방값만큼의 주거급여(약 26만~30만원)가 매달 20일에 통장으로 들어온다. 방값을 빼서 쪽방 관리인에게 건네면,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건물주들 입으로 쪽쪽 빨려들어 간다. 빈민운동 진영의 투쟁 덕에 수급비가 오르면 인상된 주거급여 딱 그만큼 방값이 오르지만, 물 새고 곰팡이 핀 방과 공동화장실과 계단, 쥐와 바퀴벌레들, 환기·채광·난방 없음 등은 그대로다. 그 돈이라도 아껴보려고 또 쪼개서 더 열악한 방으로 옮기면, 얄짤없이 딱 그만큼 주거급여가 깎인다. 옴짝달싹하지 말고 이렇게만 살다 죽으라는 거다. 그것도 그렇다 치고 살아왔는데, 이젠 그 방에서마저 쫓겨날 판이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양동(陽洞), 볕이 좋다며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양동 재개발”은 1978년 9월 건설부 장관 고시에서 시작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당시는 훨씬 넓은 지역이었던 양동에서 수차례 재개발이 이어져 빌딩숲들이 들어섰고, 지금은 남대문로5가동 620번지 일대만 남아 “양동 쪽방촌”으로 불린다. 이곳 역시 1978년 고시에 포함되었지만 40년간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가 2017년 10월 중구청의 “양동 도시환경정비구역(정비계획) 변경지정(안) 공람 공고”가 뜨면서 들썩이기 시작했고, 2020년 1월 서울시가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을 결정·고시하면서 주민들을 본격적으로 내쫓고 있다. 집주인들이 붙인 공지문에는 ‘붕괴위험’ 어쩌고 하지만, 이주비 등 보상을 최대한 주지 않으려는 꼼수다. 쪽방 주민을 위한 대책을 핑계 삼아 서울시와 개발업자들이 재개발 용적률을 늘려 개발이익을 높이려는 뒷구멍으로 집주인들은 주민들을 내쫓고 있고, 서울시는 모르쇠하고 있다. 2019년 10월 서울시 집계 471명이던 주민 수는 2020년 12월 286명으로 줄었고, 올해 들어 퇴거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그러고는 2, 3개월짜리 임시주거지원을 받은 노숙인들에게는 방을 주어 방값은 최대한 뽑아먹고 있다.

지난 2월5일 서울시와 국토교통부가 용산구 동자동을 중심으로 발표한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은 주민들에게 “선이주 순환형 공공개발”을 약속해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서울역 쪽방촌 정비방안에 정작 서울역에서 가장 가까운 중구 양동 쪽방촌은 제외되었다. 기초지자체가 다른 두 쪽방촌 사이에는 폭 20m 도로 하나만 있다. 동자동 지주들은 공공개발을 막겠다며 골목마다 수많은 ‘붉은 깃발’을 꽂고 “용산참사의 피바람을 각오하라”는 펼침막을 걸더니, 오세훈 시장이 당선된 직후 국민의힘과 간담회를 하고는 “아름다운 민간개발” 운운하는 펼침막까지 나왔다. 색깔도, 사건도, 말뜻도 다 도둑맞은 2021년 서울 도시빈민마을의 풍경이다.

최현숙 구술생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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