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바야흐로 가정의 달

오수경 자유기고가 2021. 5. 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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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그들의 집에는 가부장도 없고 가모장도 없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가 시작됐다.” 정기 구독하는 에세이 <일간 이슬아> ‘가녀장을 부탁해’ 시리즈 첫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5월이 시작되자마자 가부장뿐 아니라 가모장도 넘어서는 선언을 보다니! 지난 5월2일에는 ‘자발적 비혼모’의 길을 선택한 방송인 사유리와 그의 아들 젠을 공중파 TV에서 보았으니 정말 21세기다운 5월, 가정의 달이다.

사유리 인스타그램 캡처

사실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좋아하지 않았다. ‘리얼 예능’이 억지스레 만들어내는 ‘가부장 가족’ 서사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육아와 가사 등 여성의 돌봄 노동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사회에서 아빠들이 카메라 앞에서 반짝 이벤트로 하는 육아가 가식적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아니었지만, 사유리가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반가웠다. 소위 ‘정상 가족’ 일색인 공중파 프로그램에 등장한 비혼 가족, 슈퍼 ‘맨’들만 나오던 육아 예능에 출연하게 된 첫 여성 양육자로서 그가 보여줄 세계가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의 출연을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했고, 규탄하는 기자회견까지 열렸다.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에게 비혼 출산이라는 비정상적인 방식이 마치 정상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무엇이 정상이고, 어떤 것이 비정상일까’라는 질문이 생기기도 전에 일단 (비)웃음이 터졌다. 아직도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 신기했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사유리와 젠의 출연은 나를 TV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사유리의 일상은 평범했다. 아침 7시에 깬 젠에게 밥을 먹이고,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다가, 10시가 넘어서야 젠을 등에 업은 상태로 서서 아침밥을 먹고, 온종일 젠을 돌보다 밤이 되어 목욕시켜 재운 후에야 미역국 데워 저녁밥을 먹다가 피곤한 듯 식탁에 엎드린 사유리의 하루는 땀내와 짠내가 고스란히 배인 ‘찐육아’ 세계 그 자체였다. 그동안 전혀 리얼하지 않게 비일상적인 남성들의 육아를 보여주던 ‘자칭 리얼’ 예능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비로소 ‘리얼’이 구현된 것이다. 이것이 ‘비정상’이라면 대체 무엇이 ‘정상’이란 말인가?

한국 사회에서의 정상은 더 이상 결혼과 4인 가족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건 이제 상식이다. 최근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인 가구 비율은 전체 인구의 30%를 넘어 보편적 가구가 되었고, 한 부모 가족의 비율도 7%를 넘었다.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30%를 넘어섰다. 이런 사회 변화에 발맞추어 최근 여성가족부에서는 1인 가구나 비혼 동거가구 등 다양화하는 가족 형태를 고려하여 제도를 개선하고, 자녀의 성(姓)을 아버지의 성으로 우선 따르게 하던 것에서 부모가 협의해 결정하도록 민법 개정을 추진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긍정적인 변화다.

사유리와 젠의 TV 출연은 단지 ‘비정상적’이고 불온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인 개인의 선택과 ‘정상적’ 일상을 긍정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이행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다. “바야흐로 가녀장의 시대”라는 선언도, ‘자발적 비혼모’의 삶을 살기로 한 사유리의 선택도 지극히 마땅하다.

오수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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