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간 190만 관객… ‘反日 불매운동’ 잠재운 日애니의 경제학 [송의달 LIVE]

송의달 에디터 2021. 5. 7.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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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귀멸의 칼날> 의 경제학 [글로벌 프리즘]

올들어 한국 영화계에서 최고 흥행몰이 작품 중 하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鬼滅の刃)>이다. 2016년 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일본의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된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자료를 보면, 올해 1월 27일 국내 영화관에서 개봉한 <귀멸의 칼날>은 91일 동안 일별(日別) 박스오피스에서 5위 안에 들었다. 이는 한국영화사에서 장기 흥행의 대명사인 <왕의 남자>(연속 78일) <알라딘>(연속 77일)보다 더 긴 롱런(long run)이다.

올해 1월 27일 개봉해 올들어 국내에서 상영된 국내외 영화를 통틀어 2위 흥행 성적을 내고 있는 일본 애니매이션 <귀멸의 칼날> 영화 포스터/뉴시스

개봉 101일째인 이달 6일까지 <귀멸의 칼날>은 누적 관객 수 193만여명, 입장료 매출액 186억원을 올려 영화 <소울>(1월20일 개봉, 204만명·190억원)에 이어 올해 박스오피스 2위를 달리고 있다. <귀멸의 칼날> 보다 35일 늦게 개봉한 영화 <미나리>는 6일 현재 106만명 관객에 96억원 매출을 냈다.

영화계에선 지금 추세라면 아카데미상 2관왕 작품인 픽사(Pixar)의 명작 애니메이션 <소울>을 추월해 올해 최다 관객·최장기 흥행 영화가 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귀멸의 칼날> 보다 7일 먼저 국내 개봉한 미국 애니메이션 영화 <소울>의 스틸 사진들. 이 영화는 지난달 제93회 아카데미영화상 시상식에서 두 개 부문을 수상했다./조선일보DB

만화 단행본 <귀멸의 칼날 23>(마지막화)은 국내 ‘예스24′와 ‘인터넷 교보문고' 등에서 지난달부터 이달까지 각각 3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이로 인해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문재인 정부 들어 계속된 ‘반일(反日)불매운동’을 잠재운 문화상품의 승리” “반일운동은 선동에 불과하다는 게 증명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귀멸의 칼날>이 보여주는 경제적 함의(含意)는 무엇일까.

◇① 反日 감정 무력화한 ‘콘텐츠의 힘’

다이쇼(大正) 시대(1912년 7월~1926년 12월)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숯을 팔던 마음씨 착한 소년 카마도 탄지로가 어느 날 ‘오니(おに·일본 전통설화 속 사람을 잡아먹는 흉악한 괴물)’로 변해버린 여동생을 사람으로 되돌리기 위해 귀살대(鬼殺隊·귀신을 죽이는 부대)에 들어가 식인(食人) 오니와 이들의 우두머리인 키부츠지 무잔을 토벌한다는 내용이다. 전형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 스토리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의 처절한 노력과 동생, 귀살대원들의 응원과 가족과의 유대감 등이 돋보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 뚜렷한 능력과 특징을 갖고 있다. 인물의 특성에 맞는 화려한 일본 전통 복장과 세밀한 도심 풍경 묘사, 긴장감 넘치는 연출은 작품성을 높이고 있다.

소니의 자회사가 기획제작한 애니매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이 일본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갈아치웠다는 일본 마이니치 신문 보도/조선일보DB

영화비평가 송경원씨는 “귀살대와 혈귀가 차례로 등장해 각자의 기술을 주고받는 방식은 2D 격투게임과 유사하다”며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에 혼(魂)을 불어넣은, 클래식한 활극(活劇)이 영화 <귀멸의 칼날>의 본질이다”고 분석했다.

복고(復古) 정서를 기반으로 기본에 충실하되 일본 애니메이션 특유의 묘사에 집중해 <드래곤볼> 이후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 소년 만화를 젊고 빠른 감각적인 방식으로 재탄생시켰다는 얘기이다. 일본 현지에서 <귀멸의 칼날> 만화 단행본(총 23권)은 지금까지 1억5000만부 넘게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일본 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귀멸의 칼날> 종이만화들. 총 23권으로 종이와 전자만화를 합쳐 지금까지 1억5000만부가 팔렸다./조선일보DB

이런 인기에 힘입어 작년 10월 일본에서 개봉한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꺾고 일본 영화 관객 수 최고 기록을 세웠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19년 연속 감소하던 일본 종이 만화 매출이 지난해 전년 대비 13% 넘게 증가한 것은 <귀멸의 칼날> 효과 덕분이 크다”고 최근 보도했다.

◇②“기업들 생존하려면 ‘2030(MZ)세대’ 잡아라”

<귀멸의 칼날> 흥행을 MZ세대로 불리는 20~30대가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이다. 멀티플렉스 극장 ‘CJ CGV’의 분석을 보면 <극장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편>의 전체 관객 가운데 여성(53.3%)이 남성 보다 많았고, 연령대로는 20대(49.9%)가 가장 많았다.

CJ CGV 관계자는 “이들과 더불어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많은 고정 성인 관객들이 흥행 활성화에 한몫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50대 이상 기성 세대는 ‘귀멸의 칼날’에 대해 거의 관심조차 없는 반면, MZ세대는 대부분 인지하고 있는 ‘문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5060세대와 확연히 다른 문화소비 코드를 갖고 있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산업 지형도를 바꾸고 있다. 2020년도 국내 수제맥주 시장이 사상 처음 1000억원을 돌파한 게 한 예이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마련된 수제 맥주 판매대/연합뉴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는 “MZ세대는 계층 상승 사다리가 끊어진 현실에서 좀비와 판타지로 이뤄진 게임화(gamification) 상품에 열광한다”며 “이들은 콘텐츠 경쟁력만 우수하다면 반일(反日) 코드에 구애받지 않고 일본 상품이라도 적극 소비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도 “국적과 이념을 초월한 실용주의가 MZ 세대의 문화적 특징”이라며 “<귀멸의 칼날> 사례로 볼 때, MZ세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그들을 충성 이용자로 만드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③소프트파워가 기업 命運 바꾼다

<귀멸의 칼날> 원작 만화는 일본 역사상 가장 빠르게 누적 1억부가 판매됐다. 이런 사회 분위기를 재빨리 감지한 전자(電子)기업 소니(SONY)는 자(子)회사 ‘애니플렉스’를 통해 이 작품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다.

소니가 저작권을 소유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은 작년 10월 개봉한지 두 달 만에 302억엔(약 3200억원)을 벌어들이며 일본영화 역대 흥행 순위 1위에 올랐다.

일본과 한국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 편> 스틸/조선일보DB

이에 힘입어 모기업인 소니의 주가(株價)는 19년 여만에 처음으로 1만엔을 넘었고, 지난달에는 1946년 창사 후 최초로 연간 순이익 1조엔 돌파를 발표했다. 연간 순이익 1조엔을 달성한 일본 기업(금융업 제외)은 도요타자동차와 소프트뱅크그룹 등에 이어 소니가 5번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후 주가가 1000엔대까지 곤두박질쳤던 소니는 사업 구조 전환으로 회생했다. 전자제품 기기 같은 하드웨어 매출 비중을 지난해 20%대로 낮추고 영화·게임·음악 등 콘텐츠 비즈니스를 새 주력 사업으로 장착한 것이다. 지난해 콘텐츠 부문의 총매출액 대비 비중은 50%대에 이른다.

김정연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지속적 이익 창출이 가능한 콘텐츠 부문을 강화한 것이 소니의 실적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郎) 회장(CEO)은 “소니는 ‘기술 기반의 창조적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회사 정체성을 재규정했다. <귀멸의 칼날> 같은 콘텐츠 기반의 ‘디지털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며 부활하는 소니 사례는 한국 산업계에도 시사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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