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채색이 아니라 역사를 날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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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필름이 없던 시절에도 컬러사진은 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솜씨 좋은 화가들이 흑백사진 위로 채색을 해서 팔았다.
19세기의 흑백사진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채색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세계적 사진가 그룹 '매그넘' 멤버였던 존 빙크는 "채색을 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날조한 것이다"라고 강경하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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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필름이 없던 시절에도 컬러사진은 있었다.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솜씨 좋은 화가들이 흑백사진 위로 채색을 해서 팔았다. 색깔은 사람이 입은 옷이나 소유한 물건의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정보다. 컬러필름이 발명된 이후엔 사진에 색깔을 입힐 필요가 사라졌다. 그러나 이 ‘사진 채색’은 21세기 들어 부활한다. 19세기의 흑백사진에 인공지능을 활용한 채색이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잘 만들어진 채색 사진은 한 세기를 훌쩍 건너뛴 오늘날에도 방금 찍은 듯한 생생함을 전달해준다. 영화계에도 영향을 줬다. 20세기 초반의 흑백영화가 컬러영화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의 재현인가 아니면 왜곡인가?
최근 세계적인 미디어 그룹 ‘바이스’의 인터넷판에 아일랜드 사진가 맷 러프리의 채색된 사진 작품이 실렸다. 폴 포트(캄보디아 공산주의 정당인 크메르루주 지도자) 치하였던 1970년대 하반기, 투올슬랭 수용소에서 학살된 민간인들의 증명사진을 입수해 색을 입혔다. 심지어 러프리는 피학살 민간인들의 공포에 찌든 표정을 기괴한 미소로 바꿔버렸다. 투올슬랭에서는 2만여 명이 고문·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10대 중후반의 크메르루주 활동가 넴 예인이 그 사진들을 찍었다. 크메르루주는 당초 이 증명사진들로 처형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싶었을 터이다. 지금은 대학살의 공식기록이자 증거자료로 유명하다.
캄보디아 정부는 러프리의 채색 사진이 발표된 직후 ‘바이스’와 작가에게 항의하며 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바이스’는 매우 두루뭉술한 공지문을 올렸을 뿐이다. 러프리는 “유족이 원했다”라고 변명했다. 세계적 사진가 그룹 ‘매그넘’ 멤버였던 존 빙크는 “채색을 한 것이 아니라 역사를 날조한 것이다”라고 강경하게 비난했다. 더블린 대학의 에밀리 마크 교수는 러프리의 고국인 아일랜드 신문 〈아이리시 타임스〉에 보낸 기고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사진은 과거의 단순한 모방이 아니다. 사진 채색은 일시적 참신함을 과시하기 위해 역사적 자료에 담긴 풍부한 의미를 무시하는 행위다.”
사진업계의 ‘관종’ 양산 시도
예술가들은 ‘현재’의 금기에 도전할 때 역사적 전위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기에 영합하여 반사회적·몰역사적·비윤리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 경우도 있다. 러프리는 자신의 활동 무대(서구)와 무관한 크메르루주 학살 사건에서 작업의 소재를 찾았다는 측면에서 인종차별적 기미까지 느끼게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증명사진은 오히려 흔한 편이지만, 러프리가 그 사진들로 채색 작업을 시도한 바는 없기 때문이다. ‘바이스’ 역시 폭로주의와 선정주의로 비판받아왔는데, 이번 사건을 보면 아예 사진업계의 ‘관종’들을 양산하려고 시도하는 중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인터넷 미디어들이 급성장하면서, 온갖 기괴한 시도로 ‘날 좀 보소’라고 외치는 듯한 콜라보와 굿즈들이 판치고 있다. 어떤 경우엔 ‘대세’로 보이기도 하나, 러프리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위태롭고 위험하기 짝이 없다. 말릴 수 없다면 감시해야 한다. 그런 시도들이 성공하지 못하게 미연에 문제를 지적하고 공론의 장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진지한 경고들이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러프리의 사진이 걸린 댓글에 쓰기를, “폴 포트가 누군데?” 할 말이 없다.
이상엽 (사진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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