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펌의기술]⑰김앤장, 엘리퀴스 특허소송서 최종 승소..신약 특허 '진보성' 판단법리 바꿔

이미호 기자 2021. 5. 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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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선택발명 '특허 인정' 장벽..매우 높아
'효과 기제' 인정 사례 전부 뒤져
'K-바이오' 에 득될 것
정다운 디자이너
글로벌 제약사에서 약 50년의 연구 끝에 효능이 매우 뛰어난 약을 개발했다.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약은 미국과 캐나다 등 제약 선진국에서 특허를 인정받았다. 캐나다 법원은 이 약이 발명된 것을 두고 “인류의 행운(lucky)”라고 했다.

전세계 의약품 매출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엘리퀴스(성분명 아픽사반)’ 얘기다. 하지만 유독 한국의 특허장벽은 너무나 높았다. 특허심판원과 2심격인 특허법원에서 특허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후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승소하는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는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법률사무소의 피땀어린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특허 업계에선 “대법 판결을 앞두고 김앤장이 대리하게 된 것은 신의 한수였다”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제약업계 초미의 관심사인 ‘엘리퀴스 특허분쟁’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뭘까.

◇”선택발명 특허 인정, 한국 법원만 유독 까다로워”

대법원 특별 3부는 지난달 8일 한국BMS제약이 네비팜·휴온스·인트로바이오파마·알보젠코리아를 상대로 제기한 엘리퀴스 물질특허 특허무효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앞서 네비팜 등은 2015년 3월 특허심판원에 엘리퀴스 물질특허 무효심판을 제기,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은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사실 한국BMS제약이 대법에서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동안 선택발명에 대한 특허를 인정해 준 판례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다. 즉 30년 가까이 동일한 법리를 적용하며 선택발명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지 않던 대법원을 설득시킨 것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에 가까운 일이라는게 업계 평가다.

선택발명은 발명의 한 형태다. 앞선 발명(선행 발명)에 구성요소가 상위개념으로 기재돼 있고, 위 상위개념에 포함되는 하위개념만을 구성요소의 전부나 일부로 하는 발명을 뜻한다. 형식적으로 앞선 발명에 분명히 기재된 발명 중 하나를 선택한 것에 불과해서 중복 특허의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중복 발명임에도 불구하고 특허를 부여받을 수 있다. 따라서 진보성 판단시 더욱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다만 진보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구성의 곤란성 △효과의 현저성 가운데 1가지를 만족시켜야 한다. 즉, 선택발명인 ‘아픽사반 성분'의 핵심이 되는 ‘락탐고리’ 발명에 대한 진보성 판단 여부가 이 사건의 법리적 쟁점이 됐다.

1·2심은 락탐고리의 진보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상위개념에서 하위개념 구성요소를 도출하게 되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지를 뜻하는 ‘구성의 곤란성’과 관련해 대법원이 기존 판례를 따르는 보수적 입장을 취했다. 상위개념에서 하위개념을 가져왔으니, 진보성이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승소를 이끈 유영선 김앤장 변호사는 이를 ‘해운대 백사장(상위개념)’과 ‘바늘(하위개념)’로 비유했다.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가 사실 너무 어려운 건데, 2심 법원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는 쉬운 것 아니냐'고 판단한 셈”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김앤장은 남은 희망인 ‘효과의 현저성’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해당 발명의 효과가 현저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효과를 입증하는' 명세서를 첨부해야 하는데, 대법은 이를 매우 엄격하게 심사해왔다.

◇‘효과성의 현저성' 김앤장은 어떻게 입증했나

(사진 왼쪽부터)장덕순·유영선·김원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

김앤장은 지재권분야의 대가로 불리는 장덕순 변호사(60·사법연수원 14기), 대법원 지적재산권조 총괄연구관을 지낸 유영선 변호사(48·27기), 특허 실무 전문가인 김원 변호사(48·34기), 특허·제약·화학 분야의 오랜 전문성을 가진 여호섭·이상남·김지연 변리사 등 전문가 그룹으로 대응팀을 꾸렸다. 대응팀은 과거 법원에서 효과의 현저성은 없다고 판단했지만 ‘효과의 기제는 있다’고 인정한 사례들을 전부 뒤지기 시작했다.

대법원에서 특허분야 연구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한 유 변호사가 관련 법리와 판례를 꿰뚫고 있었고, 효과기제를 설명한 명세서 분석은 변리사들이 맡았다. 추상적으로 효과성이 있다고 강조하는 것보다는, 과거 대법원이 효과기재를 인정한 사례를 건별로 제시하면서 논리를 만들어 나간 셈이다. 유 변호사는 “효과 기재를 인정한 사례와 비교하면서 50년에 걸친 연구가 진보성이 있다는 점을 대법원에 피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 사건 외에 특허심판원에 있는 선택발명 사건의 화학구조식을 전부 분석해 제시하는 노력도 곁들였다. 모핵이 달라지면 화학적 성질이 달라진다고 판단한 사례를 들어, 락탐고리가 화학구조 관점에서 어떻게 확 바뀌었는지를 설명했다. 여기엔 화학전공 변리사 및 박사들이 힘을 보탰다.

김앤장은 과거 대법 판례에 대해서도 존중하는 전략을 썼다. 선택발명 특허를 인정하지 않은 경우, 왜 구성의 곤란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인정하면서도 락탐고리 발명은 어떤 점에서 다른지 설득해나갔다. 유 변호사는 “특허사건은 차가운 유리에 뺨을 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스토리가 전혀 안 들어간다”면서 “신약개발 스토리를 어필하면 연성화되고 전문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디테일 전략과 동시에 김앤장은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 등 선택발명 관련 전 세계의 판례와 법리를 분석해 제시하는 등 큰 그림도 함께 제시했다. 선택발명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선행발명을 존중하는 취지일 수 있지만, 신약 개발에 있어서는 족쇄가 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결국 대법원은 “원심은 구성의 곤란성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은 채 선행발명에 비해 이질적 효과나 양적으로 현저한 효과가 인정되기 어렵다는 이유만으로 특허발명의 진보성 판단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파기환송했다. 이처럼 대법원이 엘리퀴스 물질특허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엘리퀴스는 오는 2024년 9월 9일까지 물질특허로 보호받게 됐다.

유 변호사는 “선택발명을 판단하는 법리 툴이 우리나라는 마치 외딴 섬에 있는 듯 하다. 글로벌 기준에 전혀 맞지 않는다”면서 “제약업계에서는 특허가 그 제품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바이오벤처들이 신약개발에 주력하면서 K-바이오도 각광받고 있다”며 “그들 입장에선 이번 판결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제약 특허와 관련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번 승소가 매우 뜻깊다”고 전했다.

◇광장 대리한 ’2018년 가처분承'...법리 차곡차곡 쌓인 결과

법조계에선 이번 대법 판결이 나오기까지는 수년간 김앤장 뿐만 아니라 법무법인 광장 등 ‘제약 특허’를 지키기 위한 국내 주요 로펌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8년 6월, 한국BMS가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한 특허권 침해금지 가처분 소송 선고에서 법원은 “제약회사 제네릭(합성 의약품 복제약) 생산·판매 등 일체 행위를 금지한다”며 BMS의 손을 들어줬다. 게다가 법원은 ‘선행 발명에 따른 선택 발명이 물질특허로 인정되려면 신규성과 진보성이 있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해석상 선택발명과 관련된 대법 판례가 뒤집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광장이 2013년 5월부터 공들인 결과였다. 이로써 특허청의 선택발명 가이드라인도 개정됐다.

비록 본안 사건인 엘리퀴스 특허 무효 소송과 관련해서도 2심은 비록 효과의 현저성 증명이 부족하다며 엘리퀴스 특허를 인정하진 않았지만, 대법원 기존 법리가 변경돼야 한다는 취지의 유의미한 해석을 내놓으면서 엘리퀴스의 대법원 승소 가능성을 열어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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