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의 월가브리핑]인플레 시대, 우리가 준비해야할 것들

김정남 2021. 5. 7.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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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장기침체' 주장했던 서머스마저..
지난 십수년간 못봤던 인플레 준비할 때
원자재, 가치주, TIPS 등 헤지자산 주목
JP모건 "인플레 압력, 하반기 내내 지속"
일부 자산가격 폭락 가능성 경고한 연준
<미국 뉴욕 현지에서 월가의 핫한 시선을 전해 드립니다. 월가브리핑이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고 투자의 맥을 짚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미국은 인플레이션 논쟁이 뜨겁습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를 수년간 주장했던 세계적인 석학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가 인플레이션 우려를 앞장서 제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경제평론가 마틴 울프와 마주 앉은 서머스의 경고는 ‘격정 토로’에 가까웠습니다.

서머스의 구조적 장기침체론은 일상에서 체감하는 그대로입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부터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거의 2% 아래에서 움직였습니다. 2014년 이후 0~1%대에 머무는 경향은 더 심해졌고요. 1980년대 초 높게는 15% 가까이 폭등했던 때는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치부됐습니다.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주요국 중앙은행이 이제는 디플레이션과 싸워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지요. 근래 “설마 인플레이션이 오겠냐”고 말하는 대부분의 근거는 이런 경험칙입니다.

그랬던 서머스가 이제는 “연준이 급격하고 놀라울 정도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한다는(a sharp and surprising increase in interest rates) 필요성을 느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미국 재무장관까지 지낸 그의 ‘변심’은 주목할 만합니다.

△급격한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 △완만한 상승의 리플레이션 △완만한 하락의 디스인플레이션 △급격한 하락의 디플레이션 사이의 경계는 과거보다 모호해졌습니다. 현재 인플레이션 논쟁이 1980년대 초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쨌든 물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건 가만히 앉아서 가진 돈을 까먹는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인플레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일 겁니다.

세계적인 경제 석학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룬 파이낸셜타임스(FT) 기사. (출처=FT)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추이. (출처=미국 노동부)
대표 인플레 헤지 자산은 원자재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따르면 최근 기업들이 실적을 발표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언급한 건수가 지난해보다 무려 800% 늘었다고 합니다. 도이체방크 데이터를 보면, 미국인들은 지난 10년을 통틀어 그 어느 때보다 인플레이션을 많이 검색하고 있습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요. 노스웨스턴 뮤추얼웰스 매니지먼트의 브렌트 슈트 수석투자전략가는 6일(현지시간) 야후 파이낸스 라이브에 출연해 인플레이션에 대처 수단에 대해 다양한 조언을 했습니다.

그의 대전제는 “투자자들은 십수년 만에 처음으로 인플레이션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그는 “지난 10년, 15년 20년을 돌아보면 증시 하락장은 대부분 성장이 미미했거나 디플레이션 환경에서 나타났다. 하지만 앞으로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너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많은 월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건 전통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으로 꼽히는 원자재입니다. 슈트 전략가는 “경기 회복에 따라 가격이 오르고 있는 원자재를 반드시 보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23종류의 원자재 가격을 추종하는 블룸버그 원자재 현물 지수 등 각종 원자재 인덱스는 대부분 고공행진 중입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아직은 싸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JP모건 리서치팀은 “원자재 가격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저렴하다”고 했습니다.

예컨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60달러 중반대입니다. 현재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지만, 레벨 수준만 보면 오히려 ‘스위트 스팟’에 가깝습니다. 월가 내에서는 국제유가가 더 오를 수 있다는데 별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초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의 경우 온스당 1800달러 초반대입니다. 지난해 8월 당시 온스당 2100달러에 육박했는데, 지금은 하락세입니다.

JP모건은 “지금은 채권에서 상품과 주식으로 갈아탈 때”라면서 “이를테면 S&P GSCI(S&P Goldman Sachs Commodity Index)에 연동해 투자하는 건 가장 직접적인 인플레이션 회피 수단”이라고 했습니다. 이날 S&P GSCI는 520에 육박했습니다. 2014년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데요. 2010~2014년 당시보다는 여전히 낮습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 골드만삭스 원자재 지수(S&P GSCI·S&P Goldman Sachs Commodity Index) 추이. (출처=구글)
일단 성장주보다 가치주로 옮겨탈 때

두 번째는 주식입니다. 몇 달 전 주가 하락 우려가 커졌을 때는 증시 내 ‘손바뀜’으로 마무리됐지요. 전체 지수는 여전히 상승세를 탔고요. 현재 뉴욕 증시를 대표하는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역사상 최고치입니다. 다만 이번에도 성장주보다는 가치주에 더 손을 들어주는 이들이 많습니다. JP모건은 “상품가격이 오를 경우 가치주의 수익률이 성장주에 비해 높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상승 위험에 취약한 일부 고평가 성장주를 주의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마르코 콜라노비치 JP모건 최고시장전략가의 말입니다. “각종 데이터들은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 상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투자자들은 가치주로 자금을 옮기고, 동시에 원자재 같은 직접적인 인플레이션 헤지 자산을 늘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트렌드는 올해 하반기까지는 지속할 것 같습니다.” 시장이 최소한 올해 내내 인플레이션 위협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CE)는 이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우리가 곧 볼 인플레이션은 일시적이라고 확고하게 믿고 있다”면서도 “우리는 향후 물가와 임금의 상승 압력을 감안하면 지속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것으로 본다”고 주장했습니다.

세 번째는 미국 물가연동국채(TIPS·Treasury Inflation Protected Securities)입니다. 물가연동국채는 입찰을 통해 발행수익률이 결정되는 등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일반 국채와 비슷합니다. 다만 원금이 소비자물가지수(CPI)에 연동돼 조정됩니다. 물가가 오르면 채권 원금이 늘어나는 겁니다. 슈트 전략가는 “(인플레이션 위험을 회피하는 건) 투자자들이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라며 물가연동국채를 추천했습니다.

위 세 가지는 최근 전문가들이 자주 거론하는 상품인데요. 이외에 인플레이션 위험을 제어할 수 있는 자산은 적지 않을 겁니다. 중요한 건 서머스가 넌지시 암시하듯 최근 십수년간 경험하지 못했던 위험이 닥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노스웨스턴 뮤추얼웰스 매니지먼트의 브렌트 슈트 수석투자전략가가 6일(현지시간) 야후 파이낸스 라이브에 출연해 발언하고 있다. (출처=야후 파이낸스)

연준 “일부 자산가격 폭락 가능성”

연준은 이날 금융안정 반기보고서를 냈는데요. “일부 자산의 밸류에이션은 역사적으로 볼 때 높은 상태”라며 일부 자산가격의 폭락 가능성을 경고했습니다. 연준은 특히 아케고스 사태, 게임스톱 같은 ‘밈 주식(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끄는 종목)’의 위험성을 우려했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일부 자산에 거품이 있다”고 경고한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바이든 정부 재무장관 하마평에 들었던 실세 중 실세인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는 별도의 성명을 냈습니다. 몇 가지 위험을 강조하기 위해서인데요. 브레이너드 이사는 “주가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며 “밈 주식에서 보듯 위험을 감수하려는 투자 성향이 광범위하게 커졌다”고 했습니다. 그는 “투자자들이 강한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스템 리스크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케고스, 도지코인, 게임스톱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이유를 찾다 보면, 결국 돌고 돌아 시중에 너무 돈이 많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각 사태마다 각자의 제도적인 미비점이 있는 건 분명한데, 그 기저에는 ‘한탕’을 위한 위험 감수 성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겁니다. 높은 수익률이 가능한 건 풀려있는 돈이 너무 많아서 이겠지요.

기자는 최근 <월가브리핑>에서 미국의 고용 폭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5월3일자 [김정남의 월가브리핑]미국 고용 폭발, 직장 잃은 600만명 돌아온다 기사 참조> 미국의 4월 비농업 신규 고용이 하루 뒤인 오는 7일 나옵니다. 일자리 증가 규모가 월가 예상을 뛰어넘어 100만명 이상 나올 경우 인플레이션 우려는 더 커질 겁니다. 이제는 정말 인플레이션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라엘 브레이너드 연방준비제도(Fed) 이사가 6일(현지시간) 내놓은 금융안정 반기보고서 관련 성명서 일부. (출처=연준)

김정남 (jungkim@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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