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이슈]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에 대한 네티즌 반응이 우려되는 이유

김인수 입력 2021. 5. 7. 09:18 수정 2021. 5. 7.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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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에 대한 일부 네티즌 반응이 무척이나 우려된다. 특정인을 향해 사망의 직접적 책임을 묻는 인터넷 댓글들이 많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하다. 사망에 대한 책임은 쉽게 논할 문제가 아니다. 몇몇 의심스러운 정황만으로 누군가를 범인으로 모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다. 무고한 이를 정신적으로 타살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아직 사고인지 살해 사건인지조차 가려지지 않은 상태다. 수사기관에 치밀한 수사를 촉구하면서 신중하게 수사 결과를 기다리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사망한 의대생 가족의 진정을 받아들여 검찰까지 조사에 나섰다고 하니까 말이다.

문득 1993년 영국에서 발생한 참혹한 살인 사건이 기억난다. 두 살배기 어린 아들과 산책을 나갔던 여성이 칼에 찔려 사망했다. 어린 아들이 피범벅이 된 엄마의 시신을 붙잡고 "엄마, 일어나"라며 울고 있는 현장이 발견됐다. 영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진범을 찾으라는 언론과 대중의 압박이 거세게 일었다.

경찰은 비정상일 정도로 여성의 애정을 갈구하는 서른 살 청년 콜린 스태그를 용의자로 지목했다. 범죄 현장 인근에 있는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에는 온통 검은색으로 색칠된 방까지 발견했다. 그 검은색 바탕 위에는 흰색 분필로 악마의 이미지를 그린 듯한 그림도 그려져 있었다. 그를 범인으로 의심할 정황은 여럿이었다. 경찰은 그의 자백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재판부는 스태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찰이 미인계를 써서 연애를 갈구하는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고 판단했다. 옳지 못한 방법으로 자백을 받아냈으니 경찰 잘못이 크다는 거였다. (진범은 17년 후에 잡힌다. 과학 수사의 발전 덕분이었다.)

하지만 여론은 잘못된 수사를 한 경찰이 아니라 재판부를 비난했다. 법심리학자로 재판 과정에 참여했던 로런스 앨리슨은 자신의 책 '타인을 읽는 말(흐름출판)'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언론과 대중은 재판관의 결정에 배신감을 느꼈다. 그들은 섹스 킬러, 짐승, 비정상적 약탈자인 스태그가 자유의 몸으로 다시 살인을 저지를 거라고 굳게 믿었다."

이 사건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언론과 대중은 충분한 증거 없이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 언론과 대중의 압력에 휘둘리면 무고한 이를 살인범으로 몰아가는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도 시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다 신중해야 한다. 지금은 판단을 유보할 때다. 온 국민이 한강 의대생 사망 사건의 수사관이 된 듯한 지금 현실이 과연 정상인지 의문이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인터넷에 '카더라' 식의 의혹을 올리는 건 위험하다. 충분한 근거 없이 사망 사건의 범인을 지목하는 것은 특히나 위험하다.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는 언제든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마녀사냥의 본능을 경계해야 한다.

[김인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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