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덕스러운 '우리'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경제학
편집자에게 듣는 경제와 책 l
<행동경제학: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택 설계의 힘>행동경제학:>
리처드 탈러 지음/ 박세연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2만8천원
“경제학자들은 왜 맨날 이렇게 못 맞혀?”
경제학자치고 경제성장률을 제대로 맞히는 사람이 없고, 투자에 성공하는 사람이 없다고들 한다. 우스갯소리이겠지만 이런 말이 왜 나오는지를 생각하면, 그만큼 경제학이 현실 속 날것의 인간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경제학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하는지 몰라도!) 인간을 ‘합리적’이라고 가정한다. 학부에서 경제학을 전공할 때 지겹도록 들은 말이 ‘인간은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면’이라는 말이다. 경제학에 따르면 인간은 자기통제에 능숙하기에 절대로 충동구매나 무모한 투자 따위는 하지 않고 여러 대안 중 최적 옵션을 고민 없이 선택한다. 현대 경제학 이론은 이처럼 ‘합리적인 인간’을 전제로 발전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잠깐, 우리가 정말 이렇게 행동한다고? 썩어서 버릴 것이 분명한데도 할인한다는 이유로 과일을 잔뜩 사고, 결국엔 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헬스장에 등록하고, 남의 말만 듣고 주식을 샀다가 고점에 물리기도 하는 게 우리 일상 아니던가.
인간은 정말 합리적일까?
1970년 어느 날, 엉뚱하고 호기심 많은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는 이런 의문을 품었다. 전통 경제학으로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비이성적 행태에 관심 있는 그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심리’를 경제학 이론에 폭넓게 적용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숫자와 방정식만 가득했던 학문에서 인간이 비로소 주인공으로 대우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선택의 원리를 밝혀낼 수 있다는 점에서 행동경제학은 혁명과 같았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탈러는 2017년, 경제학과 심리학의 가교가 되어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괴짜 집단의 쓸데없는 호기심 정도로 취급받던 이 새로운 학문이, 당당히 학계 주류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탈러의 끈기 있는 탐구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결정하고 행동하는 원리를 더 정확하게 설명한다는 점 외에, 행동경제학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바로 현실세계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탈러의 전작 <넛지>다. 남자화장실 소변기와 파리 그림으로 상징되는 <넛지>는 강제성 없이도 사람들이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하게끔 유도하는 원리를 보여주며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세계에 ‘넛지 신드롬’을 일으켰다.
<넛지>가 기발한 문제해결법을 현실에 적용한 일종의 ‘실전 편’이라면, 7년 만에 출간한 후속작 <행동경제학>은 그 이론적 토대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기본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책에는 탈러 자신의 방대한 연구를 비롯해 이제는 당당히 주류 학문으로 자리잡은 행동경제학의 흥미로운 아이디어가 깊이 있게 담겼다.
노벨상 수상자가 쓴 경제학 교양서라는 이유로 이 책이 어렵고 지루할 것이라는 걱정은 내려놓자. 합리성을 신봉하기로 이름난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 교수들이 연구실 추첨 과정에서 보인 어처구니없는 비합리성, 미국과 유럽에서 실제 있었던 거액의 상금이 걸린 대결, 우버·코카콜라·아이튠즈의 정책에 대한 소비자들의 예상치 못한 반발, 미식축구리그의 선수 영입 시스템에 숨은 함정 등 실생활과 밀접한 흥미로운 사례가 가득하다.
인간적이며 매력적인 경제학 교양서
이처럼 인간적이며 매력적인 경제학 교양서가 또 있을까? 탈러가 40여 년에 걸쳐 대니얼 카너먼, 아모스 트버스키, 조지 로웬스타인, 폴 새뮤얼슨 등 기라성 같은 학자들과 교류하며 행동경제학을 정립해나가고, 때로는 반대 진영과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소설과 같다. 곳곳에 담긴 탈러의 뛰어난 유머 감각 또한 지치지 않고 행동경제학 세계를 탐험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돕는다.
탈러를 가리켜 ‘노련한 이야기꾼’이라고 하는 세계적 석학들의 말처럼, 이 책은 현대 경제학 분야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혁명을 놀랍도록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인간 행동과 선택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세상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이해하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이 책을 펼쳐볼 것을 권한다.
김보람 웅진지식하우스 편집자 boram@wjtb.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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