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카라쿠배당토'로 옮긴 당신, 만족하나? "이 바닥에 천국은 없더라"
“이 포지션에 지원하는 현대자동차 지원자가 스무 명이 넘는데 당신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현대자동차에 근무 중인 박모씨는 몇 달 전 네이버 경력직 채용 면접에 참석했다가 첫 질문부터 숨통이 턱 막혔다. 면접관의 날 선 질문에 머뭇거리며 횡설수설한 탓에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는 “회사에 IT(정보 기술) 업계로 이직을 꿈꾸는 동료들이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국내 직장인 132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기업 직장인의 63%가 올해 구체적으로 이직할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국내 직장인 10명 중 6명은 이직을 준비한다는 얘기다. 이 중 상당수가 가고 싶어하는 회사가 이른바 ‘네카라쿠배당토’로 불리는 IT 기업들이다. 네이버와 카카오, 라인플러스, 쿠팡, 배달의민족, 당근마켓, 토스 등 7사를 일컫는 말이다. 최소 3~4차례의 면접 과정을 거쳐 간신히 이직을 했지만, 기대와 달리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도망쳐 도착한 곳에 천국은 없다’는 이른바 ‘이직러(이직한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Mint가 들어봤다.
◇새 직장 곳곳에 도사리는 복병들
많은 대기업 직장인들이 자유롭고 수평적 분위기의 기업 문화를 꿈꾼다. 하지만 성숙 단계에 이른 스타트업의 경우 대기업과 분위기가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기업과 컨설팅 회사 출신 상사들이 이른바 ‘군기’를 잡아 일터 분위기가 이전 직장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유통 대기업에서 일하다 IT 기업으로 옮긴 A씨는 “상사가 이전 직장 경력을 내세우며 PPT(파워포인트)부터 문서 양식까지 이전 회사와 같은 방식을 고집해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회사 체계가 덜 잡혀있는 탓에 입사하자마자 이직 충동에 휩싸이기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인사·성과 평가 부분의 잡음이다. IT 스타트업 대부분이 ‘성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평가 체계가 ‘주먹구구'라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이다. 핀테크 기업 T사의 계열사는 법무·총무·인사 등 지원 부서에도 구체적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핵심성과지표) 제출을 요구해 직원들의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직원 B씨는 “영업이나 프로덕트 매니저 등 전방 부서와 달리 지원 부서는 객관적인 성과 측정을 하기 쉽지 않다”며 “이런 와중에 ‘KPI를 본인이 스스로 만들어서 한계에 도전하라’는 말에 머리가 핑핑 돌 지경”이라고 했다.
비즈니스 모델이 송두리째 약화하면서 업계 전체가 휘청이기도 한다. P2P(개인 대 개인) 금융업계가 대표적이다. 각종 사기 사건이 잇따르고, 제때 돈을 못 갚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P2P 회사 미드레이트에 따르면 지난 3월 국내 P2P 기업의 평균 연체율은 35%에 달한다. 누적 대출액은 작년 한때 2조4000억에 달했으나 조금씩 하향 곡선을 그리며 지금은 2조원을 밑돌고 있다. P2P 기업에서 일하다 다른 스타트업으로 옮긴 C씨는 “눈치 빠른 직원들은 2~3년 전 다른 업종으로 옮겨갔다”면서 “이 업계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전망이 커지면서 이직해온 것을 후회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망감에 원래 회사 복귀… “결국은 직속 상사가 문제”
이직한 IT 기업이나 스타트업에 실망한 일부 직원은 예전 회사 혹은 기존 업종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나마 업무에 적응하기 편하고 보수도 안정적인 편이라서다. 외국계 금융회사 출신으로 한 자동차 관련 스타트업에서 일했던 D씨는 최근 다시 국내 금융회사로 재입사했다. 그는 “대외 이미지는 구글인데, 막상 입사해보니 정승네트워크(웹드라마 ‘좋좋소’에 등장하는 중소기업)가 따로 없었다”며 “무리한 요구를 해놓고 컬처핏(문화 적응도)이 맞지 않는다는 식으로 퇴사를 요구해 결국 사표를 썼다”고 말했다.
IT 기업일지라도 대기업만큼이나 ‘꼰대스러워졌다’는 이유로 이른바 ‘네카라쿠배당토’에서 탈출한 사람도 적지 않다. 회사가 커지다 보니 자연스레 관료제와 수직적인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 네이버에서 온라인 유통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개발자 E씨는 “네이버는 업무 처리 방식이 대기업에 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이것저것 다양한 실험을 해보고 싶은 개발자나 기획자 입장에서는 숨 막히는 면이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사연들이 널리 알려지며 이직 희망자들은 예전보다 더 꼼꼼히 이직하려는 기업의 분위기를 살핀다. 지인을 통하는 것은 물론, 블라인드·잡플래닛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보를 수집한다. 창업자의 이미지가 아무리 선해도, 외외로 ‘팀원 텃세’를 못 이겨 몇 개월 만에 나가는 직원들도 있다. 몇 달 전 O2O 회사를 퇴사한 한 직원은 “각종 직장인 포털의 내부 직원 반응이나 평점이 나쁘지 않았는데 막상 입사해보니 팀원들의 텃세가 심해 몇 개월도 못 버티고 회사를 나왔다”며 “아무리 이미지가 좋아도 결국 팀바팀(팀마다 사정이 다르다)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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