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그늘] 빨리 낫는 약
[경향신문]
보건진료소장 박도순 선생은 전북 무주에 살고 있다. 그곳의 삶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정감 어린 글을 덧붙여 여러 권의 책을 냈다. 타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도 미처 알 수 없는 것들,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이야기들이다.
팔순이 넘은 김씨 할머니가 밭일을 하다가 손을 다쳐서 보건진료소에 찾아왔다. 피가 난 상처에 두루마리 휴지를 감고 오신 것이다. 어르신들은 그 많은 세월을 기다림 속에 살았지만 일을 두고는 못 참는다. 봄바람 속에 상추가 잎을 터트리고 나오자마자 빨리 자라라고 비료를 준 것이 사달이 났다.
씨앗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새 생명이 나올 때까지 땅과 친숙해지고 또 대지의 숨결에 몸을 맡겨야 한다. 작은 씨알 하나가 새로운 생명체로 대기에 나오는 것은 번데기에서 나비가 나오는 일만큼 대단한 일이다. 스스로 힘을 얻을 때까지 추위와 바람과 싸워내야 한다. 누가 나선다고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다. 너무 일찍 화학비료를 주는 일은 ‘애기상추’를 죽게 만드는 것이다. 된서리를 맞은 것처럼 시들어가는 애기상추를 거들다가 김씨 할머니는 호미에 손을 다친 것이다.
할머니는 스스로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보건진료소장에게 당부한다. “얼렁 낫고로 독하게 약을 주시게!” 박 소장은 상처가 빨리 낫는 독한 약을 생각해 본다. 그런 약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런 약은 없어요”라고 말씀드릴 수 없다. 박도순 선생은 ‘빨리 낫는 약’이란 외롭지 않도록 저분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임을 알기에 그곳을 쉽게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김지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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