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 학살 겪은 韓·아르헨의 아픈 현대사 들추다

김신성 2021. 5. 6.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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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 대척점 가까이 자리한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 두 나라의 아픈 현대사는 닮은 점이 많다.

카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월광장 어머니회'와 광주 '오월어머니회'를 들여다보면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와 광주 5·18 항쟁의 경험을 서로 공유한다.

아르헨티나 방문은 광주와 비슷한 점, 다른 점들을 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수확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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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흥순 감독 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
집권 반대하는 시민들 폭력 진압 만행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3만명 실종
광주도 7000여명의 사상자 발생시켜
'거울' 등 5개 장 통해 고통 치유와 함께
유해발굴·항쟁 등 드러난 기억 재조명
해외 유명미술상 수상한 작가로도 명성
두 도시 아픔 정교한 영상언어로 그려
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는 1980년 전후, 군부에 의해 학살을 겪은 광주(光州, 좋은 빛)와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좋은 공기)라는 지구 반대편 두 도시의 모습을 담아낸다. 엣나인필름 제공
“수만 명 사람들을 비행기로 실어다가 바다나 강에 던져버렸어요. 그중 1% 정도만이 해변에서 발견돼 신원확인이 된 거죠.”(카를로스 소미글리아나/법의인류학자)

“아이들 강제입양도 잔혹한 범죄입니다. 사상범으로 몰아세워 납치하고 어린 자식들을 빼앗아 다른 곳으로 강제입양을 보내 (아이들이)자기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라 정체성을 잃게 만들었어요.”(아나 클라우디아 오벨링/실종자 가족)

“넌 어째 해필 얼굴 반짝을 잊어부렀냐 … 도청 시체들 중 하나가 이상시럽게 마음이 쓰였는디 그게 알고 보니 내 아들이었소.”(김점례/오월어머니집 회원)

“내 소원은 인자 우리 아들 뼈라도 찾아서 묻어주고 가면 좋겄는디. 그것이 내가 죽기 전에 찾아질랑가 안 찾아질랑가.”(차초강/5·18행방불명자가족회 회원)

지구 반대편 대척점 가까이 자리한 아르헨티나와 대한민국, 두 나라의 아픈 현대사는 닮은 점이 많다. 군사 정권은 집권에 반대하는 시민들을 폭력으로 강압하며 1976~8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와 1980년 광주에서 각각 3만명의 실종자, 7000여명의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두 도시에서는 그때를 온몸으로 지나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울리고 있다. 실종된 가족들을 찾고자 1977년부터 시작된 부에노스아이레스 어머니들의 5월광장 침묵행진은 지금까지도 같은 마음으로 진행되고 있다. 남편과 자식을 찾아 나선 광주의 어머니들은 오늘도 그날의 진상을 규명하고, 점점 사라져가는 항쟁의 흔적을 복원하라고 투쟁한다.
임흥순 감독의 다큐멘터리 ‘좋은 빛, 좋은 공기’는 1980년 전후, 군부에 의해 학살을 겪은 광주(光州, Good Light)와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Good Air)라는 지구 반대편 두 도시의 모습을 담아낸다. 둘은 마치 거울처럼 닮았다.

한국 작가 최초로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미술가이자 영화감독인 임흥순은 두 도시의 아픔을 촘촘하고 정교한 자신의 영상언어로 직조해낸다. 감각적인 화면 구성이 돋보인다.

영화는 ‘거울’, ‘안녕’, ‘눈까 마스(Never Again)’, ‘이름도 남김없이’, ‘쑥갓’이라는 5개의 장을 통해 4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항쟁의 시간 속에 살며 고통받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유해발굴과 항쟁지 복원에서 드러나는 기억의 정치학적 문제를 재조명한다.

카메라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월광장 어머니회’와 광주 ‘오월어머니회’를 들여다보면서 아르헨티나 군부독재와 광주 5·18 항쟁의 경험을 서로 공유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기억의 공간’(클럽 아틀레티코, 옛 해군사관학교 등), ‘기억의 공원’(라플라타 강변) 등 당시 상황을 보존하고 있는 곳부터 찾아간다. 아르헨티나 방문은 광주와 비슷한 점, 다른 점들을 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수확을 안겼다. 광주의 경우 대체로 신체훼손, 절단, 부패 등의 참혹한 장면을 묘사하는 증언이 많았다면 아르헨티나는 신체학대, 강간, 고문 등 감각의 고통을 토로하는 게 특징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아르헨티나에선 은폐된 학살의 장소를 복원하고 유골감식, DNA분석을 통해 실종자 규명을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납치, 감금, 살해가 기나긴 군부독재기간 동안 벌어진 일인 만큼 실종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아르헨티나는 일찍부터 ‘실종’이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납치되어 비밀수용소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학살의 현장은 생존자들의 목소리로, 고고학자들의 손을 빌려 다시 복원되고, 두 도시는 마침내 악몽에서 깨어날 것이다.

영화는 광주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거주하는 청소년(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워크숍 프로그램도 소개한다. ‘거울-당신의 고통을 나누는 방법’이란 주제의 영상교류는 국가폭력의 고통을 당한 두 나라 학생들이 각자가 살고 있는 공간, 흔적, 일상을 촬영해 서로 보내주고 상대에게 받은 촬영소스를 편집 완성해 보는 것으로, 아픔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보다 더 이해하게 된다.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느꼈어요. 모두가 흉터가 아니라 상처라고 말했어요. 과거가 남기고 간 아문 흉터가 아니라 치유해야 할 상처말이에요.”(광주-부에노스아이레스 청소년영상교류 워크숍 중에서)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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