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계절의 여왕 ?
[경향신문]
수필가 피천득은 5월에 태어나 5월에 세상을 떠났다. 5월을 사랑한 그는 ‘오월’이라는 시를 남겼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로 시작해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고 노래했다. 시인 노천명은 시 ‘푸른 오월’에서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은 정오/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라고 읊었다. 피천득과 함께 현대수필의 길을 연 이양하도 ‘신록예찬’에서 5월을 찬양했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고 먼 산을 바라보라. 어린애의 웃음같이 깨끗하고 명랑한 5월의 하늘, 나날이 푸르러 가는 이 산 저 산….”
5월은 계절의 여왕이고 신록의 계절이다. 따스한 봄날을 지나 무더운 여름을 기다리며 꽃들이 만발하고 푸른 잎이 짙어가는 생동의 나날이다. 일년 중 가장 밝고 맑고 화려하며 아름다운 시기라 “5월이 지나면 한 해가 다 갔다”는 말까지 나온다. 역시나 5월을 찬미하는 서양에서도 “연중 어느 달보다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달”로 5월을 꼽는다.
완연한 봄날의 한가운데에 있어야 할 5월이 요즘 이상하다. 춥고 쌀쌀한 데다 비바람이 잦아 봄날 같지 않다. 게다가 강원도에선 폭설까지 내렸다. 6일 오전 충북 추풍령, 경남 함양은 각각 1.7도, 1.3도로 역대 가장 낮은 5월 기온을 보였다. 강원 횡성, 전남 화순 등은 영하(-0.5도)로 내려갔다. 이달 초 강원 지역에 20년 만에 대설특보가 발령되고 구룡령에 무려 18.5㎝의 눈이 쌓인 것도 예사롭지 않았다. 기상청은 이상기후가 아니라 국지적인 현상이라고 했지만, 5월의 한파와 폭설이 앞으로 일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기상청이 1912년 이후 관측 자료를 분석한 결과 최근 여름이 길어지고 시작일도 11일 앞당겨지며 5월31일부터 여름에 들어선다고 했다. 이번 5월 기온은 11일쯤에야 평년 수준으로 회복된다고 하니 올해 ‘계절의 여왕’은 불과 몇 주뿐이다. 금세 한여름으로 넘어가면서 봄날의 싱그러운 푸름은 잊힐 것이다. ‘신록예찬’은 “이 짧은 동안의 신록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참으로 비할 데가 없다”고 했다. 5월,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지금 이렇게 지나가고 있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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