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냐, 영웅이냐.. 러, 스탈린 흉상 건립 '갑론을박'

김태훈 2021. 5. 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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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부터 1953년까지 소련(현 러시아) 국가원수에 해당하는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이오시프 스탈린. 세계일보 자료사진
‘소수민족을 탄압한 독재자인가,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든 영웅인가.’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이오시프 스탈린(1879∼1953)의 흉상이 최근 러시아 남부 한 소도시에 설치됐다가 그의 역사적 평가를 둘러싼 논란 끝에 철거되고 말았다.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망한지 30년이 됐지만 러시아의 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소수민족 탄압, 인종차별… “전형적 독재자”

5일 러시아 현지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 공화국에 있는 다게스탄스키예 오그니라는 소도시에 스탈린 흉상이 세워졌다. 스탈린 흉상 건립은 이 도시에 있는 러시아 공산당 지부가 주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5월 9일)을 하루 앞두고 오는 8일 스탈린 흉상 제막실을 열기로 했다는 게 공산당 지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흉상 건립을 놓고서 지역사회에선 거센 비판이 일었다. 결국 시 정부는 “공산당 지부가 흉상 건립에 관해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설치 나흘 만에 흉상을 철거해버렸다.

여러 소수민족을 거느린 ‘다민족국가’ 러시아에서 스탈린이 비난을 받는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이자 냉혹한 독재자라는 비판을 들을 만큼 여러 오류를 저질렀다는 점이다. 그는 2차대전 기간 북캅카스에서 자행된 인구의 강제 추방을 주도한 정황이 짙다고 러시아 영문 매체 모스크바타임스가 전했다.

그뿐 아니다. 스탈린은 1930년대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한국인)들이 거대한 세력을 형성할까봐 염려했다. 당시 남진하는 소련과 북진하는 일본이 서로 충돌해 안보 위기로 비화했는데, 스탈린은 농장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일부 고려인이 일본군의 스파이 노릇을 하는 것으로 의심했다. 그래서 1937년부터 1939년까지 극동 러시아에 살던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약 17만2000명을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실제 스탈린은 살아 있을 때에는 독재자로서 절대권력을 휘둘렀으나 1953년 사망 후에는 공산당 후계자들로부터도 ‘비토’를 당했다. 그의 이름을 따 지은 볼가강 유역의 대도시 ‘스탈린그라드’는 아예 ‘볼고드라드’로 지명이 바뀌기까지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2월 얄타회담에서 만난 3대 연합국 영수들. 앞줄 왼쪽부터 영국의 윈스턴 처칠,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2차대전 발발 당시만 해도 유럽의 2류국가였던 소련은 스탈린의 영도 아래 전승국이 되면서 미국,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급부상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2차대전 승리로 미·소 ‘초강대국’ 시대 열어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에서의 패배, 그리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계기로 유럽의 2류국가로 전락한 소련을 미국, 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웠다는 점에서 스탈린을 높이 평가하는 이도 많다. 2차대전 초반인 1941년 6월 소련은 독일군 기습을 받고 한때 유럽 대륙에 속한 서쪽 영토 대부분을 독일에 뻬앗길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스탈린의 진두지휘 아래 수도 모스크바를 독일군의 침략에서 지켜낸 이래 1942년부터는 반격에 거듭 성공했다. 1943년 2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최종 승리한 뒤로는 전세가 완전히 뒤집혀 소련군이 독일을 밀어냈다. 1945년 5월 나치 독일 수도 베를린을 점령하고 독일군의 항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도 미·영·소 3대 연합국 가운데 소련의 역할이 제일 컸다.

전후 소련은 동유럽 국가들을 공산화시켜 위성국가로 삼았다. 스탈린 사후 세계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과 소련이 이끄는 공산주의 블록으로 나뉘어 냉전에 돌입했다. 그 시기 소련은 미국과 더불어 초강대국 대접을 받았다.

다만 1990년대 탈냉전을 맞아 소련은 해체됐고 그 후신인 러시아의 국력이나 위상은 옛 소련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소련을 대신해 중국이 급격한 국력 신장을 이룩하며 미국과 G2(주요 2개국)를 형성했다.

일단 다게스탄스키예 오그니의 공산당 지부는 철거된 스탈린 흉상을 다시 설치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현지 매체는 “스탈린이 러시아에서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인물로 남아 있지만, 해가 갈수록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9년 실시한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러시아 응답자의 70%는 “러시아 역사에서 스탈린이 긍정적 역할을 했다”고 답한 것으로 집계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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