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혁 원장 인터뷰 "일터 건강할 권리 필요" [빼앗긴 일터 건강권 (하)]

고희진 기자 입력 2021. 5. 5. 20:37 수정 2021. 5. 5.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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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과 의료로 연대하는 녹색병원 임상혁 원장

[경향신문]

노동자들 불이익에 산재 신청 기피
사업주와의 관계 보여주는 단면
노동부, 영세사업장 거의 방치
찾아가 안전교육·행정지도 해야

“전 국민 의료보험이 되면서 노동자도 병원에 오는 것이 크게 어렵지는 않아요. 문제는 사업장 안에서 자신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권리들이 있는데, 이걸 잘 못 지켜요. 주52시간 근무할 권리, 건강검진을 받을 권리, 유해화학물질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이죠. 병원에 못 가서 건강권이 없는 게 아니라 일터에서 건강할 권리가 떨어진다는 얘깁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만난 직업환경의학 전문의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사진)의 말이다.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4년 의대에 입학한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회와 만났다. 일터의 노동자와 ‘의료’로 연대하는 것이었다. 구로의원 원장,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 등을 지내며 30년 넘게 노동자와 만났다.

임 원장은 과거에 비해 대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건강권 인식은 크게 높아졌다고 했다. 그는 “1980~1990년대만 해도 대기업이건 중소기업이건 안전에 다 둔감했다. 조선소에 가면 용접노동자들이 80도 고온에서 일하며 안전화가 철판에 눌어붙는데도 반바지에 러닝셔츠를 입고 일했다”며 “지금은 안전복을 안 주면 일을 안 한다. 현장은 비슷하지만, 문화가 바뀌었다. 사업주들도 과거처럼 하면 문제가 된다는 걸 알고, 큰 노조가 있어 문제 해결도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규모 사업장이라고 했다. 하청과 파견으로 이뤄지는 일감 외주화 과정에서 위험까지 외주화된다. 임 원장은 “안전 문제가 아웃소싱돼서, 영세한 사업장에 산재가 많고 병도 많은 것이 현재의 특징”이라고 했다.

임 원장은 자신이 경험한 자동차 주물 공장의 사례를 소개했다. “주물 공장엔 먼지가 많아요. 환풍시설을 위쪽으로 해놓으면 먼지가 올라가며 코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 공장은 환풍시설도 아래로 해놓고 좋더라고요. 그런데 그 먼지가 깔려 내려간 아래층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무장갑에 일반 마스크를 쓰고 먼지를 빗자루로 쓸어요. 정말 노동자를 위해서라면 거기도 조치를 했어야 하지만 안 한 거죠. 그렇게 위험을 외주화시킨다는 겁니다.”

지난해 말부터 포스코 제철노동자들의 직업성 암이 문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직업성암119가 결성돼 제철소와 플랜트 노동자를 비롯해 3D 컴퓨터, 주얼리 노동자 등 여러 직종 노동자들의 직업성 암 발병 사실을 조명했다. 임 원장은 “한국은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이 발전했고, 이때 기록되지 않은 굉장히 많은 발암물질들이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암이라는 것은 40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최근 들어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유해화학물질의 흡입에 의한 폐암 진단자들이 많지만 일부 기업은 ‘흡연 등 불규칙한 생활습관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임 원장은 “산업재해 신청자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장시간 유해물질을 흡입한 작업환경에서 폐 질환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뒤집지는 못한다”며 “흡연 등 생활습관은 질병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일 뿐이지 그게 병의 모든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그럼에도 많은 기업들이 산재가 발생하면 노동자를 탓한다”면서 “이는 산재보험이라는 상호부조의 성격에도 맞지 않다. (병이 생겼다고 노동자 탓을 할 것이면) 기업이 산재보험료를 낼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일부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병을 얻고도 불이익을 우려해 산재 신청을 꺼린다. 임 원장은 “그간 그들이 사업주와 겪어온 관계가 굉장히 수직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산재를 신청해도 불이익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까지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임 원장은 작은 사업장에 대한 행정지도가 활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세사업장에는 노동부가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있어도 행정력이 미치는 영향이 너무 미약하다”며 “사망사고가 나고 병이 나는 게 밝혀지는데도 그대로다. 예를 들어 하루 날을 잡아서 종로든 어디든 영세사업장이 밀집한 곳에 가서 교육도 하고 지도할 수도 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녹색병원은 최근 주얼리 업계를 비롯해 도심 제조업 노동조합과 양해각서(MOU)를 맺어 노동자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 임 원장은 “사실 이들의 노동 현실은 잘 몰랐다. 노동자도 아니고 사업주도 아닌 상황에서 월급도 현금으로 받고 일하는 등 근로기준법의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며 “일하는 사람의 곁에 있는 병원으로서 이제는 대기업 노동자보다는 영세노동자나 하청노동자, 플랫폼노동자와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이는 원진레이온 피해 노동자들이 싸워서 만든 녹색병원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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