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기업' 이어..IT·바이오 中企 "몰려드는 일감 다 포기할 판"

안대규/민경진/김진원 2021. 5. 5.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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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제, 7월부터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적용
중소 제조업체 13만6000여곳
"일손 모자라 공장 닫을 지경
추가 인건비 부담 감당못해"
규제 피하려 위장법인 세우기도
IT·바이오 수출에도 '찬물'
SW업계는 '5인 미만 쪼개기'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두 달 앞둔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들이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경기 포천의 한 장갑 제조 공장 사장이 홀로 기계 수십 대를 조작하고 있다. /김진원 기자


서울 강남에 있는 20여 명 규모의 정보기술(IT) 스타트업은 최근 고민에 빠졌다. 올 하반기 새 플랫폼을 내놓기로 했는데, 올 7월 주 52시간 근로제가 확대 시행됨에 따라 예정된 시기에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서는 모든 개발자가 매달려야 하는데, 주 52시간제가 적용되면 힘들어진다”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신규 채용을 진행하고 있지만 워낙 개발자가 귀한 때라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7월부터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확대 시행되면서 중소기업계는 비상이 걸렸다. 뿌리산업 등 전통적인 제조업체는 물론 IT, 소상공인 등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IT 바이오 등 수출 中企도 타격

주 52시간제는 글로벌 수요 회복에 따라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연구개발 비중이 큰 반도체 IT 바이오업종에도 찬물을 끼얹을 조짐이다. 주문량이 밀려 주말도 없이 일하는 상황에, 글로벌 납기 대응력이 떨어지고 추가 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으로 가격 경쟁력도 밀릴 수밖에 없어서다. 연구개발이 많은 IT 업종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는 “소프트웨어 업종은 철야 작업이 많고 특정 기간 일감이 몰리는 구조여서 대응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소프트웨어 개발업계에서는 5인 미만 ‘기업 쪼개기’도 흔한 일로 알려져 있다. 주 52시간제를 적용받는 기업이 제도 적용을 받지 않는 5인 미만 기업을 새로 차려 일감을 넘겨주는 방식이다. 경기 판교의 한 IT 벤처기업 대표는 “이미 300인 이상 사업장에 주 52시간제를 적용할 때부터 IT업계에선 대·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기업 쪼개기가 성행하고 있었다”고 귀띔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IT 바이오 등 수출에서 성과를 내는 중소기업이 주 52시간제로 모처럼 잡은 시장 확대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정부가 세심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상공인 “생필품 가격도 오를 것”

주로 50인 미만 사업장인 중소형 마트도 타격이 클 전망이다. 김성민 한국마트협회 회장은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영업해야 하는데, 주 52시간제로 인한 비용 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며 “협회 소속 5000여 개 중소형 마트가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경기 김포에서 식음료 도소매업체를 운영하는 한 사장은 “수도권 400개 중소형 슈퍼마켓 가맹점에서 수시로 주문받아 물건을 배송해야 하는데 경직된 근무시간 체계로는 모든 주문을 감당하기 어렵다”며 “배송차량을 늘릴 경우 수수료를 인상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전국 마트 내 생필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마트 내 창고관리 직원, 상품 진열 담당 직원, 계산원, 구매 담당자, 배송업무 담당자 등에 대한 비용 증가에 따른 제품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인력난, 납품 지연에 폐업 불가피”

주 52시간제 충격이 가장 큰 분야는 역시 제조업이다. 특히 업종 특성상 주야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금형, 도금 등 뿌리산업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체감하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여파로 체력이 고갈돼 주 52시간제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어서다.

경남 밀양의 금속열처리업체 A사장은 “제도 시행 전부터 주야간 교대로 주 72시간 근무하던 것을 주 48시간으로 바꿔 운영하고 있다”며 “2교대에서 3교대로 바꿨지만 추가 인력을 못 구해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고 했다. 경기 화성의 한 금형업체 사장은 “중소업체 평균 마진이 3~5% 수준인데 주 52시간제로 생기는 근로자 임금 손실을 감당할 수 없다”며 “사업을 접을까 심각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경남 지역 한 자동차부품업체는 5~6명의 근로자를 모두 1인 사업자로 전환해 근무시키는 ‘편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근로자를 사업자로 전환시키면 더 이상 고용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주 52시간제와 상관없이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외국인 근로자 공급도 막혀 중소기업 인력난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해 국내 중소 제조업체가 신청한 외국인 근로자(비전문취업 E-9 비자) 인원은 2만1666명이었지만 11% 수준인 2437명만 입국했다. 인천 한 제조업체 사장은 “아예 이번 기회에 근로자를 모두 내보내고 가족만 일하는 가족기업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대규/민경진/김진원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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