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호정] 임상협의 부활 찬가 "포항서 원래의 나를 찾아가는 중"

서호정 기자 2021. 5. 5.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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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서호정 기자 = 2021시즌을 앞두고 포항스틸러스로 이적한 임상협에겐 최근 부활, 회춘 등의 표현이 따라붙는다. 13라운드까지 3골 1도움을 기록, 송민규(5골)에 이어 팀 내 득점과 공격포인트 모두 2위를 기록 중이다. 13경기 중 7경기를 교체 출전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출전시간 대비 활약도는 매우 높다. 


2011시즌에 전북현대에서 부산아이파크로 이적한 뒤 임상협은 긴 시간 리그 정상급 윙포워드로 활약했다. 부산과 상주상무를 거쳤던 2017시즌까지 7년 연속 리그 30경기 이상을 뛰며 꾸준함을 보였다. 241경기에서 60골 18도움을 기록, 웬만한 스트라이커 못지않은 득점력으로 K리그 인사이드 포워드의 대명사로 통했다. 풍부한 활동량과 수비 가담 능력, 공간을 활용하는 스피드와 판단은 여러 감독들이 전술적으로 활용하길 선호한 장점이었다. 


하지만 2018시즌을 앞두고 수원삼성으로 이적한 뒤 긴 부진에 빠졌다. 2018시즌 19경기 출전에 2골 1도움을 기록, 기대 이하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2019시즌에는 전반기 2경기 출전(후반기에는 제주 임대), 2020시즌에도 6경기 출전에 그쳤다. 수원과는 계약이 끝나기 전 참가한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2골을 기록, 팀의 8강 진출을 이끌며 그나마 아쉬움을 덜어냈다. 


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려야 할 시간에 복잡한 문제로 침체기를 겪은 임상협은 포항 이적이라는 변화를 택했다. 그 선택은 맞아 떨어졌다. 점차 컨디션을 올리며 경기력을 회복한 그는 포항의 6경기 연속 무승(2무 4패)을 끊는 서울 원정 승리를 왼발 감아차기 결승골로 만들어냈다. 가장 최근 열린 수원 원정에서도 선제골을 터트리며 좋은 감을 유지했다. 포항 입단 당시 불신의 시선도 거의 사라진 상태다. 


김기동 감독은 "훈련 후 상협이는 (강)현무한테 부탁해 항상 따로 슈팅 연습을 한다. 서울전 골, 수원전 골이 모두 그렇게 나온 것들이다. 선수들한테 상협이만큼 노력하라고 할 정도로 열심히 했으니 이런 활약을 해주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어서는 "수원에서 부진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포항에 와서 잘 할 거라는 확신이 있어 데려왔다. 가진 장점과 성격을 알기 때문이다. 시즌 초반에 팔라시오스와의 경쟁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이해하고 잘 준비해줘서 고맙다. 앞으로 더 활약했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다음은 임상협과의 인터뷰. 


- 가장 최근 얘기부터 해 보자. 포항에서 열렸던 수원전과 달리 이번 원정에서는 선발 출전했다. 오랜만에 빅버드로 갈 때의 심정은 어땠나?
경기를 준비하며 의식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이제는 베테랑의 위치에 있다. 상대를 의식하면 몸에 힘이 들어간다는 걸 안다. 20대 때는 그런 상황에서 오버페이스를 하다가 경기를 망친 적도 있었다. 이럴수록 즐기고, 상대를 의식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다른 경기에 비해 마인드 컨트롤에 신경 썼다. 내 축구 인생에 주어진 보너스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준비는 철저히 했다. 수원에 대한 추억은 내 개인적인 것이고, 포항 선수로서는 중요한 경기였으니까. 버스에서 내려서 왼편의 홈팀 라커룸이 아닌 오른쪽의 원정팀 라커룸으로 가는 건 어색했다. 일부러 경기 전에 그라운드로 안 나갔다. 수원 선수들과 안 만나려고 했다. 안에서 차분히 준비했다. 


- 용두사미로 끝난 수원 생활에 대한 아쉬움이 있나? 많은 기대를 받고 수원 유니폼을 입었는데 그만큼의 활약을 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다. 
수원에서 3년간 7득점 4도움(리그, FA컵, ACL 포함)을 기록했다. 그 이전에는 보통 한 시즌에 그 정도 공격포인트를 올렸었는데… 수원 이적에 후회는 없었다. 정말 가고 싶어서 택한 팀이었다. 2017시즌이 끝나고 J리그에서도 제안이 왔고, 포항은 당시에도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내가 무조건 수원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많은 팬들, 또 멋진 팬들 앞에서 뛰고 싶었다. 무리뉴 감독이 축구를 종교라고 말하는데, 수원에는 축구를 종교처럼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결과로 보면 경기도 많이 못 뛰었고, 자연스럽게 팬들에게 질타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준비와 노력을 했다. 그랬기 때문에 마지막에 ACL이라는 기회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 수원 원정에서 선제골을 넣고 셀레브레이션을 하지 않은 것도 팬들에 대한 존중 차원이었나?
경기 전에 골을 넣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당연히 셀레브레이션은 하지 않는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빠른 시간에 골이 터질 줄은 몰랐다. 질타를 보낸 팬들도 있지만,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도 많았다. 그 분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자제한 게 맞다. 


- 하프타임에 1-0으로 리드한 상태로 들어가는데 몸을 풀러 나온 선배 염기훈이 와서 장난으로 때리며 뭐라고 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훈이 형이 웃으며 "야, 살살해~"라고 얘기했던 거 같다. 기분 좋은 얘기였다. 하프타임과 경기 후 수원의 옛 동료, 후배들이 다가와 반겨줘서 좋았다. 팬들도 이제는 골을 넣은 상대팀 선수지만 박수를 보내주셨다. 3년 동안 대체적으로 부진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을 좋게 기억해 주시고 인정해주신 것 같아 기분 좋았다. 


- 경기 중 '추그아'도 이겨냈다. 
추그…아? 그게 뭔지 모른다. 


- '이주헌 해설위원(추멘)이 그렇다면 아니다'라는 의미인데… 수원과 포항의 경기 중 임상협 칭찬을 했는데 얼마 안 있어서 골을 넣었다. 사실 모르는 게 좋다. 
그럼 설명 안 해도 된다.


- 포항 이적 후 무엇이 가장 달라졌나?
밖에서는 부활이라는 수식어를 써 주시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한다. 내 실력은 지난 3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스포츠카를 경차처럼 운전하면 제 기능을 쓸 수 없다. 포항에 와서 김기동 감독님이 나를 제대로 활용해 주시니까 나도 제 기량을 다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감독님께 감사하고, 보답하고픈 마음이 크다. 포항에서 2달 동안 뛴 게 수원에서 2019년과 2020년에 걸쳐 뛴 것보다 많다. 결국 선수는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선택 받고, 안 받고가 정해진다. 잠시 부진해도 선수의 노력을 알아봐 주고 믿음을 보내주는 지도자를 만나면 그 터널을 금방 빠져나오는데 포항에서 김기동 감독님과 함께 하는 게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 포항이 2선 공격진의 경쟁 수준이 높다. 그러다 보니 시즌 초에는 교체 출전 위주였다. 김기동 감독의 취업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처음 포항에 왔을 때 감독님이 "널 잘 안다. 부산 시절 모습도 기억한다.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선수고, 다시 그때처럼 할 수 있으니까 잘 해 보자"고 하셨다. 동계훈련을 잘 마쳤지만, 감독님 입장에서는 팀을 운영하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초반에 많은 출전 시간을 받지 못한 것에 실망하진 않았다. 수원에서의 아픔과 경험이 약이 됐다. 내 스스로가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단단해져서 포항에 왔다. 일단 새로운 팀에 왔으니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히려 초반에 밖에서 지켜본 게 도움이 됐다고 본다. 내가 들어가서 뭘 해야 할 지를 알게 됐다. 오히려 그런 시간에 감사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감독이 시간이 짧든, 길든 매 경기 출전 기회를 주셨다. 어느 날 감독님이 불러서 얘기를 해 주셨다. 감독 입장에서 어려운 부분을 솔직하게 얘기하시며, 팀 전체를 볼 때 걱정이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으셨다. 감독님 본인의 선수 시절 경험을 공유하면서 지금은 고참으로서 팀과 함께 헌신해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더 열심히 훈련하고, 좋은 분위기로 이끌려고 노력했다. 그게 결국 그라운드에서 결과로 나왔다. 


- 밖에서는 선수가 부진한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의 상황들이 경기력에 영향을 미친다. 포항에서는 그 상황이 오히려 해내야 되겠다는 강한 동기부여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 것 같다. 
포항에 와서 돌아보니 수원에서는 그런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여기서는 언제 투입될 지 모르니까 늘 최선을 다 해 준비하고 있다. 긍정적인 긴장감이 있다. 수원에서는 1경기를 못 하면 2군으로 내려가야 했다. 할 만 하면 기약 없이 준비해야 하는 사이클의 반복이었다. 그래도 싫은 티를 한번도 안 냈다. 묵묵히 최선을 다 하고 이겨보려고 노력했다. 인조 잔디에서 훈련하고, 고등학생 선수들과도 훈련했다. 어떤 후배는 자기라면 형처럼 그렇게 못 하겠다고 하더라. 수원에서 마지막에 박건하 감독님을 만나서 감사했던 게 그 부분이다. 넌 좋은 선수고,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시니까 신나서 뛸 수 있었다. 떠나면서 박건하 감독님에게 감사하다고 얘기 드렸다. 감독님은 더 하지 못해 아쉽다고 하셨다.


포항에 올 때 김기동 감독님이 한 인터뷰에서 "수원에서 2군에 계속 있어도 임상협은 한번도 불만을 표출 안 했다는 얘기를 들어서 포항 오면 꼭 잘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아이러니하게 지금 포항의 시간은 수원에서부터 만든 거다. 한편으로는 수원 시절 2군에서 같이 고생했던 고승범, 김태환, 강현묵 같은 친구들이 지금 잘하는 걸 보며 기분이 좋다. 


- 아직 시즌의 1/3 밖에 안 지났지만 앞으로 포항에서는 어떤 걸 할 수 있을 거라 보나?
수원 이적 전까지는 탄탄대로를 달렸던 것 같다. 몇 년 동안 계속 30경기 이상 뛰고, 공격포인트도 10개 이상 했다. 수원에서 힘든 시간 겪었지만, 지금 돌아보니 다 감사한 시간이다. 나를 단단한 선수로, 흔들리지 않는 선수로 만들어줬으니까. 포항의 주닝요 피지컬 코치가 내게 늘 그런 얘기를 한다. "너는 최고다. 데이터를 보면 우리 팀에서 최고의 운동량을 지닌 선수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가장 뿌듯하게 보는 친구다. 그러면 나는 주닝요 코치에게 말한다. "아임 스틸 헝그리"라고. 지난 3년 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고 있다. 부활이 아니라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신 있다. 지금부터의 시간을 더 기대해 주셔도 좋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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