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때] 명산(名山)의 고장, 함양

김희선 2021. 5. 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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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노레일 타고 즐기는 '함양의 숨은 보석' 대봉산
'지리산의 하늘정원' 서암정사..정교한 석굴법당에 감탄

(함양=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경상남도 함양은 예로부터 명산의 고장으로 불렸다.

지리산과 남덕유산을 비롯해 거망산, 황석산, 할미봉, 월봉산, 오봉산, 대봉산 등 눈을 황홀하게 해 줄 산들이 즐비하다.

함양이 품은 명산들을 한눈에 조망하고 싶다면 함양 한가운데 솟은 대봉산으로 올라가 보자.

대봉산 모노레일을 타면 해발 1천228m 높이의 천왕봉 전망대까지 편하게 올라갈 수 있다. [함양군 제공]

함양의 숨은 보석, 대봉산

함양은 산(山)의 고장이다. 군 전체 면적의 78%가 산지로 이뤄져 있다. 해발고도 1천m가 넘는 봉우리가 34개나 된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함양 남쪽 끝자락에는 '민족의 영산'이자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이 솟아 있다. 북쪽에는 국립공원 10호인 덕유산을 끼고 있다. 두 산 사이에 있는 대봉산은 함양의 숨은 보석 같은 산이다.

대봉산 정상에 오르면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뻗어 있는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수많은 명산을 품은 함양 한가운데에 자리한 덕분이다.

가을에는 산등성이를 따라 억새가 하얀 솜털의 꽃을 피워 장관을 선사하고, 겨울에는 설화가 만발한다.

봄철 능선을 분홍빛으로 수놓는 대봉산 철쭉은 함양 8경에도 속한다.

대봉산 정상에 있는 모노레일 상부 승강장 [함양군 제공]

심마니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최고의 산삼 자생지로도 꼽힌다.

대봉(大鳳)은 봉황이 알을 품은 형상을 하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벼슬을 마친 선비가 갓을 벗어 걸어둔 산이라는 의미에서 한때 '괘관산'(掛冠山)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이는 일제강점기 함양에 큰 인물이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해 격하시킨 명칭이라는 여론에 따라 2009년 대봉산으로 이름을 바로잡았다.

모노레일 타고 즐기는 대봉산 비경

대봉산 최고봉인 천왕봉은 해발 1천228m다. 두 시간가량 산행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국내 최장의 모노레일과 집라인을 갖춘 휴양밸리가 개장하면서 누구나 편안하게 대봉산의 비경을 즐기며 정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대봉산 휴양밸리는 모노레일과 집라인, 산림욕장 등을 갖춘 대봉 스카이랜드와 숙박시설과 캠핑장 등을 갖춘 대봉캠핑랜드로 구성돼 있다.

원래 지난해 개장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개장이 1년여 미뤄지면서 올해 4월부터 정식으로 입장객을 받기 시작했다.

모노레일 승강장은 해발 700m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하부 승강장과 천왕봉을 순환하는 코스의 총 길이는 3.93㎞. 국내 최장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오는 데에는 총 65분이 걸린다.

정식 개장을 앞둔 지난 3월 말 시범 운행 중인 모노레일을 체험해봤다. 잔뜩 찌푸린 날씨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대봉산 능선을 따라 운행하는 모노레일.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데에는 총 65분이 걸린다. [함양군 제공]

모노레일은 느린 속도로 천천히 움직이지만, 경사가 급한 부분이 많아 안전벨트를 꼭 매고 손잡이를 잡아야 한다.

3월이라 아직 파릇파릇한 잎이 돋아나기 전이었지만, 분홍빛으로 물든 진달래가 여기저기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5월이 되면 코스를 따라 산철쭉과 찔레꽃이 능선을 화려하게 수놓는다고 한다.

수령이 1천 년에 이르는 '천년 철쭉'도 꽃을 피운다.

흐린 날씨 때문에 탁 트인 경관을 감상하기는 힘들었지만, 뿌연 안갯속을 헤치며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것도 나름대로 운치 있었다.

대봉산 정상의 소원바위 [함양군 제공]

30여 분을 달려 정상에 도착하니 멋진 자태로 우뚝 서 있는 소원바위가 기다리고 있다. 소원바위는 심마니들이 산삼을 채취하기 전 제를 올리던 곳이다.

심마니들은 예로부터 신의 가호 없이는 산삼을 캘 수 없다고 믿어 정성스레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곳에서 한가지 소원을 간절히 빌면 반드시 이뤄진다고 한다.

소원바위를 지나 전망대에 서면 지리산 천왕봉과 가야산, 덕유산까지 함양이 품은 명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덕유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풍광에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는데 사방에 뿌옇게 낀 안개가 야속할 따름이다.

대봉산 정상에 서면 덕유산을 지나 지리산으로 뻗어있는 백두대간의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함양군 제공]

정상에서의 풍광을 충분히 즐겼다면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다시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올 수도 있지만, 스릴을 만끽하고 싶다면 집라인을 체험해 보자.

대봉산 정상과 하부 승강장을 잇는 집라인은 총 길이가 3.27㎞에 달한다. 체험객이 자유자재로 자세를 취할 수 있는 자유비행 방식의 집라인으로는 세계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

정상에서 하부 승강장까지 5개의 코스가 지그재그로 이어져 있다.

가장 긴 세 번째 코스와 네 번째 코스의 하강 속도는 시속 100∼120㎞에 달한다. 깊은 골짜기를 가로질러 반대편 산을 향해 날아가며 짜릿함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정상에서 하부 승강장까지 지그재그로 연결된 집라인의 최고 속도는 시속 100∼120㎞에 달한다. [함양군 제공]

'지리산의 하늘정원' 서암정사

함양까지 왔으니 지리산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가파른 오르막길이 구불구불 뱀처럼 이어진 지안재를 지나 지리산제일문을 통과하니 오도재 고갯마루에 지리산조망공원 휴게소가 있다. 이곳은 지리산 주 능선의 봉우리들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명당으로 꼽힌다.

대봉산 소원바위에서 빌었던 기도가 통했던 것일까.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이틀 내내 회색빛이었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파랗게 갰다.

구름을 머리에 인 천왕봉부터 하봉, 중봉, 백소령, 형제봉, 반야봉까지 지리산의 웅장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대만 사찰의 후원으로 세워진 서암정사의 대웅전은 화려한 단청으로 이색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사진/김희선 기자]

산청, 함양, 구례, 하동, 남원 등 5개 시군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천년 고찰을 여럿 품고 있다.

화엄사, 문수사, 쌍계사 등 귀에 익은 절이 많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함양에 속한 서암정사다. 상서로울 서(瑞)에 바위 암(巖). 이름 그대로 상서로운 바위에 조성한 석굴 법당이다.

벽송사에 딸린 작은 암자로 출발했지만, 천연 암석에 새긴 조각과 아름다운 주변 풍광이 조화를 이뤄 벽송사보다 찾는 이들이 더 많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아치형 석굴 형태의 대방광문을 지나면 대웅전과 석굴 법당이 나온다. [함양군 제공]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히는 지리산 칠선계곡을 따라가다 벽송사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틀면 서암정사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기와지붕을 인 일주문 대신 커다란 돌기둥 두 개가 방문객을 맞는다.

사천왕문도 독특하다. 여느 절 같으면 누각 안에 나무로 조각한 사천왕들이 서 있을 텐데 돌기둥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 이끼 낀 바위 절벽에 정교하게 조각된 사천왕을 만나게 된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사천왕상이 눈길을 끈다. [함양군 제공]

사천왕상과 아치형 석굴처럼 생긴 대방광문을 지나면 화려한 대웅전과 이 절의 백미인 석굴 법당이 나온다.

조그만 출입구를 통과해 석굴 법당으로 들어선 순간 '와∼'하는 감탄사가 나왔다. 바닥을 제외한 사방과 천장, 암벽에 정교하게 새긴 조각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부처님을 중심으로 8대 보살과 10대 제자, 나한, 사천왕은 물론, 십장생을 비롯한 갖가지 동식물이 벽과 천장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불교의 이상을 상징하는 극락세계를 형상화했다고 한다.

자연이 빚어낸 동굴의 암반에 정교하게 조각한 석공들의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자연이 빚어낸 동굴의 암반에 정교한 조각을 새긴 석굴법당 내부 [함양군 제공]

'지리산의 하늘정원', '제2의 석굴암'으로도 불리는 서암정사는 인근 벽송사를 중창한 원응 스님이 조성한 암자다.

지리산 북부인 칠선계곡 일대는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의 주요 근거지였다. 한국전쟁 때 불에 탄 벽송사는 빨치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다고 전해진다.

벽송사를 중창한 원응 스님은 1970년대 초 어느 봄날 이곳을 지나다 전쟁 때 비참하게 죽어간 원혼들의 울부짖음을 들었고, 이들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 1989년부터 20년에 걸쳐 석굴 법당을 조성했다고 한다.

암자 창건에 얽힌 이야기를 들은 뒤 절을 나오면서 입구 돌기둥에 새겨진 글귀를 다시 읽어봤다.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수많은 강물 만 갈래 시냇물, 바다에 가니 한 물맛이로다.(百千江河萬溪流 同歸大海一味水)

삼라만상 온갖 모습이여, 고향에 돌아오니 본래 한 뿌리이니.(森羅萬象各別色 還鄕元來同根身)

석굴 법당에서 위로 더 올라가면 바위 절벽에 부처와 보살을 조각한 비로전이 있다. [함양군 제공]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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