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식적 '코로나 상술' 남양유업, 결국 회장 사임

고영득 기자 2021. 5. 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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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4일 서울 강남구 남양유업 본사에서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홍원식 회장, 대국민 사과 ‘눈물’
“자식에게 경영권 승계 안 할 것”
영업정지·경찰 수사 등 사면초가
ESG 흐름 속 소비자 불신 가중
홍 회장 사퇴 후 주가 9%대 급등
가족경영에 환골탈태까지 먼 길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71)이 4일 ‘불가리스 파문’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남양유업이 불가리스가 코로나19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발표해 논란을 일으킨 지 21일 만이다. 홍 회장 사퇴는 특단의 대책 없이는 기업이 공중분해될 수 있다는 절박한 위기감에서 나온 결정이지만 남양유업이 최대주주인 홍 회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환골탈태할지는 물음표가 따른다.

홍 회장은 이날 서울 논현동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들과 직원, 대리점주 및 낙농가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모든 것에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든 잘못은 저에게서 비롯됐으니 저의 사퇴를 계기로 남양유업 가족들에 대한 싸늘한 시선은 거두어달라”고 했다.

그동안 남양유업은 대리점 갑질 사태와 홍 회장 외조카 황하나씨 마약 투약 논란, 경쟁사 비방 댓글 사건으로 숱하게 홍역을 치렀으나 홍 회장이 직접 공개석상에 나와 대국민 사과를 하기는 처음이다. 남양유업은 세종공장이 영업정지 위기에 처한 데다 경찰 수사가 본격화하고 불매운동으로 피해를 보고 있는 대리점주들까지 단체행동 움직임을 보여 사면초가에 놓인 처지였다.

재계에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도 홍 회장에게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게 만든 요인이 됐다. 기업의 지배구조나 사회적 책임 미흡으로 사회적 논란이 커지면, ESG 비중을 높게 사는 투자자들이 해당 기업을 기피하는 흐름이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번 사태는 남양유업이 지난 3월 ESG추진위원회를 출범한 이후 터졌다. 비상식적인 ‘코로나19 상술’에 가뜩이나 남양유업을 외면했던 소비자들의 불신이 더욱 가중된 것이다. 결국 홍 회장으로선 사퇴 말고는 마땅한 신뢰 회복 카드가 없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홍 회장 사퇴 소식에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남양유업 주식은 전날보다 9.52% 오른 36만2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남양유업 주가는 33만1500원에 형성돼 거래를 시작, 홍 회장 사퇴 발표 직후 급등세를 보이며 장중 한때 42만5000원까지 오르기도 했다.

홍 회장은 이날 대국민 사과에서 “자식에게도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차기 회장으로 지목됐던 홍진성 상무는 회삿돈 유용 의혹을 받아 해임된 상태다. 당장은 홍 회장 일가의 경영 참여는 배제되는 분위기지만 남양유업이 ‘오너 리스크’를 해소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지난해 말 사업보고서를 보면 남양유업 이사회는 총 6명으로 구성됐다. 이광범 대표이사를 제외한 사내이사는 모두 홍 회장 가족이다. 홍 회장은 남양유업 지분 51.68%를 보유하고 있다. 홍 회장이 실질적으로 경영에서 손을 떼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 신뢰를 얻으려면 끊임없이 진정성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아무리 좋은 공약이라도 조직 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움직여줘야 실행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홍 회장 사퇴에 앞서 지난 13일 이 대표까지 사의를 밝힌 상태여서 남양유업 경영에는 공백이 생겼다. 남양유업은 조만간 이사회를 소집해 차기 경영진 인선 등을 두고 논의할 계획이나 당분간 경영 차질은 불가피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아직 차기 대표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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