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비난 전단 돌린 시민 '모욕죄 고소' 철회

이혜리 기자 2021. 5. 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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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의 전단을 돌린 시민에 대한 형법상 모욕죄 고소를 철회한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게 하는 것은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위축시킨다는 논란이 잇따르자 나온 결정이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은 4일 “문 대통령은 2019년 전단 배포에 의한 모욕죄와 관련해 처벌 의사를 철회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박 대변인은 “대통령은 본인과 가족들에 대해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혐오스러운 표현도,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용인해왔다”며 “그렇지만 이 사안은 대통령 개인에 대한 혐오와 조롱을 떠나, 일본 극우주간지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인용하는 등 국격과 국민의 명예, 남북관계 등 국가의 미래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해 대응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8회 국무회의(영상)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박 대변인은 이어 “하지만 주권자인 국민의 위임을 받아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으로서 모욕적인 표현을 감내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을 수용해 이번 사안에 대한 처벌 의사 철회를 지시했다”고 했다.

박 대변인은 “앞으로 명백한 허위 사실을 유포해 정부에 대한 신뢰를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적어도 사실 관계를 바로잡는다는 취지에서 개별 사안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할 예정”이라며 “이번 일을 계기로 국격과 국민의 명예, 국가의 미래에 악영향을 미치는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논란은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김모씨(34)를 모욕 등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김씨가 2019년 7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배포한 전단지에는 문 대통령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이 친일파 후손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모욕죄는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다.

모욕죄는 표현의 자유를 광범위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폐지론까지 불거진 범죄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한 시민을 상대로 한 최고 권력자의 모욕죄 고소는 국민의 권력 비판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은) 이번 모욕죄 고소를 취하해야 한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누구든 국가정책·대통령·공직자 등에 대해 감시와 비판을 할 수 있고, 최고 권력자나 고위공직자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어야 한다”며 “권력에 대한 국민의 비판을 모욕죄로 처벌하는 것은 문 대통령이 그간 밝힌 국정철학과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8월27일에는 교회 지도자들과 청와대에서 연 간담회에서 “정부를 비난하거나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자유) 범주로 허용해도 된다”며 “대통령을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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