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의 세상의 저녁] 광주와 세월호 '부재의 박물관'

한겨레 2021. 5. 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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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의 세상의 저녁]한반도는 '부재의 박물관'에 가깝다. 일제강점에 이어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골들이 제의를 치르지 못한 상태로 묻혀 있기 때문이다.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부역자들이 함께 묻혀 있는 국립현충원이라는 박물관의 내부를, 독립운동가들이 죽어서도 친일부역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그 정경을 상상해보라. 붉게 녹슨 거대한 선체가 나에게는 또 다른 '부재의 박물관'으로 보였다.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정찬 ㅣ 소설가

예술은 역사의 상처를 예민하게 느낀다. 예술의 원천이 고통이기 때문이다. 세계 미술계가 광주비엔날레를 주목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러한 예술의 성격을 구현하려고 노력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4월1일 개막해 5월9일까지 계속되는 13회 광주비엔날레를 들여다보면 역사의 상처가 짙게 밴 작품들이 전시장 곳곳에 놓여 있다. 옛 국군광주병원 전시 작품들의 경우, 전시장이 5·18사적지 23호라는 공간의 역사성과 함께, 그 역사성으로 파고드는 광주 작가들의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가 ‘광주’의 상처를 환기시키고 있다. 5·18 당시 계엄사에 연행되어 폭행과 고문을 당한 학생과 시민들이 치료받았던 국군광주병원은 광주의 첫 희생자 김경철(당시 28세)이 숨진 곳이다. 지금은 건물 형체만 남아 있는 폐허의 어두운 공간을 한국 작가 16명과 외국 작가 4명의 작품들이 환히 밝히고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내세운 중심 주제는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 지 40년 지난 지금, 이 역사의 두께가 삶과 죽음 사이를 잇는 통로, 즉 완전히 죽지 못한 상태의 중간 세계를 탐색해볼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해줬다”는 기획진의 말에 집약되어 있다. 샤머니즘과 영혼의 세계를 탐구해온 40여개 나라의 작가 69명의 작품들을 ‘주제전’에 펼쳐놓은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주제전’ 전시장의 한 곳인 국립광주박물관의 슬로건은 ‘사방천지, 온전히 죽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 전시장에서 가장 오래 본 작품이 알리 체리의 <땅 파는 사람>(HD영상, 23분36초)과 갈라 포라스-킴의 <우리를 구속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도피>였다. 두 작품 모두 산 자의 시선이 아닌, 죽은 자의 시선에서 산 자를 바라보며 이미지와 서사를 빚었다.

베이루트에서 태어나 레바논 내전 시기를 겪으며 오랜 분쟁으로 상처받은 도시에서 자란 알리 체리는 자신의 개인적 기억과 불행한 역사의 서사가 맞닿는 곳을 찾기 위해 망자의 유물을 탐구해온 작가다. 그는 폐허가 된 신석기시대 매장지 관리인이자 고고학 발굴 작업에 참여한 술탄 자이브 칸을 내세워 유물이 박물관으로 옮겨져 부재의 공간이 된 매장지와 유물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박물관의 정치학적 관계, 부재의 공간을 떠도는 망자의 존재를 ‘제의’를 통해 기억하는 행위를 보여줌으로써 “만약 매장지가 전시의 한 형태나 박물관의 한 형태라고 한다면, 그것은 부재의 박물관일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곱씹게 한다.

한국인 어머니와 콜롬비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갈라 포라스-킴의 독창적 예술관은 죽은 자의 육신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명료히 드러난다. 죽음 이후의 육신에 대한 권리는 온전히 죽은 자에게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죽은 자의 육신이 박물관의 소유물이 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오래전부터 숙고해온 작가는 “죽은 사람도 산 사람과 마찬가지로 존엄을 누릴 권리가 있으며, 죽은 후에 자신의 몸이 어떻게 될지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죽은 이의 권리가 되어야 하며, 박물관은 그러한 존엄과 권리를 인식할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갈라 포라스-킴의 <우리를 구속하는 장소로부터의 영원한 도피>는 국립광주박물관의 전시물인 원삼국시대 인골과 함께 추상적 형태의 마블링 그림을 배치한 작품이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국립광주박물관 전시실에 놓인 시신들을 들여다보며 그 시신들이 원하지 않았을 세상 속 사후의 삶을 섬세하게 더듬어나간 것은 필연적 과정으로 보인다. 박물관의 유물이 예술의 오브제로 변환된 이 작품에는 시신이 누려야 할 존엄에 대한 작가의 오랜 생각이 담겨 있다. 산 자의 시선으로는 알 수 없는 그 존엄의 형태를 인골에게 알려달라고 요청하는 언어가 마블링 그림이다. 종이 마블링 기법을 통해 색소가 물의 표면에 떠 있는 상태에서 영혼에 닿는 길을 열어 영혼에게 자신의 유해가 머물기를 원하는 장소를 묻는 것이다. 존엄을 잃어버려 완전히 죽지 못하고 부재의 공간을 떠도는 영혼에게 존엄을 되찾아줌으로써 온전히 죽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작가의 염원이 작품에서 읽힌다.

박물관에 관한 두 작가의 세계관을 앙드레 말로가 주창한 ‘상상 박물관’과 연결하면 대단히 풍요로운 세계가 열린다. 말로에게 예술은 덧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극복하는 유일한 행위이기에 예술작품은 무한한 영혼의 보고이다. 그런 예술품을 보관하는 박물관의 공간이 물리적으로 한정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말로의 ‘상상 박물관’에는 벽이 없다. 벽이 없는 무한한 공간에서 무한한 질문들이 끊임없이 물결치는 공간이 ‘상상 박물관’이다. 누구든지 자신의 ‘상상 박물관’을 만들 수 있으며,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전시할 수 있다. 광주 전체를 ‘상상 박물관’으로 만들어 ‘광주’를 존재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 전시장을 채울 수 있다. 남북한을 가로지르는 240킬로미터의 비무장지대를 ‘상상 박물관’으로 만들어 사람의 발자취가 끊긴 그곳의 생명체들과 함께, 남북군사합의에 의해 2018년 철거된 비무장지대 감시초소 철조망 등을 소재로 만든 이불의 조형물 <오바드 V>를 관람하게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한반도 전체를 ‘상상 박물관’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알리 체리의 세계관에 따르면 한반도는 ‘부재의 박물관’에 가깝다. 일제강점에 이어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인골들이 제의를 치르지 못한 상태로 묻혀 있기 때문이다. 갈라 포라스-킴은 존엄을 잃어버린 그 영혼들이 완전히 죽지 못한 채 한반도의 허공을 떠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독립운동가들과 친일부역자들이 함께 묻혀 있는 국립현충원이라는 박물관의 내부를, 독립운동가들이 죽어서도 친일부역자들에게 쫓기고 있는 그 정경을 상상해보라.

광주에서 목포로 간 것은 세월호 선체를 보기 위함이었다. 붉게 녹슨 거대한 선체가 나에게는 또 다른 ‘부재의 박물관’으로 보였다. 두 작가가 내 옆에 있었다면 삶을 활짝 피우지도 못한 채 죽어간 영혼들을 올바르게 기억하기 위한 제의를 제대로 행했는지, 영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을 훼손하지는 않았는지, ‘태아처럼 손을 꼭 쥐고’ 죽어간 영혼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존엄을 알려달라고 간절히 요청했는지 물었을 것이다. 세월호 선체를 보존 전시하고 그 주변을 기억과 교육, 추모와 치유 등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에 대해서는 “산 자의 시선으로, 산 자를 위해 지어서는 안 된다. 망자의 시선으로, 망자를 위해 지어야 한다”고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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