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바닥인 줄 알았는데 지하실이 있다".. 비어가는 서울의 중심 '종로'
“작년이 바닥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하실이 있을 줄 몰랐네요”
지난 3일 종로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40대 사장은 허탈하게 웃으며 이같이 말했다. 종로의 초입인 종각역 4번 출구에서 ‘젊음의 거리’까지 160여m, 걸어서 2분 거리에는 1층 상점 14개 중 7개가 공실이었다. 1층 상점 유리창은 진열대라기보다 ‘임대 문의’ 광고판에 가까웠다. 1층뿐 아니라 2층 이상의 상점들도 상당수가 공실이라 이른 아침 시간에도 서울 최고(最古)의 상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휑해 보였다.
◇ 매출 반 토막에 지오다노도 문 닫아
약국 주인은 “종로 상권의 두 축은 직장인과 대형 어학원의 학생들이었다”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회식은 없어지고, 학원 강의는 비대면으로 바뀌니 상권이 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근 매출이 지난해 가을 대비 60% 줄어 40% 수준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 확산으로 상권이 침체하자 “이쯤이면 바닥이겠지”라는 생각으로 지난해 가을 이곳에 약국 문을 열었다고 했다. 하지만 바닥 밑에 지하실이 있었다고 그는 토로했다.
청계천 인근의 한 피자집 주인은 “원래 점심과 저녁의 매출 비율은 1:2 정도였는데, 코로나19로 9시 이후 집합이 금지되면서 저녁 매출이 급감했다”며 “350만원대에 이르던 일 매출이 현재는 200만원대까지 주저앉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콩나물국밥집에서도 “회식 이후 해장하던 손님들이 많았는데, 10시 이후 집합 금지가 걸리며 매출이 3분의1 수준까지 곤두박질쳤다”면서 “인근 국밥집들이 그때를 넘기지 못하고 많이들 문을 닫아 상가 공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말했다.
상권의 규모뿐 아니라 성격과 구성도 변했다. 약국 주인은 “온라인 유통의 활성화와 코로나19 여파로 종로 거리에 젊은이들이 사라지면서, 탑골공원의 어르신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져 손님 구성도 바뀌었다”면서 “상권의 상징이었던 지오다노 종로점이 폐점한 것이 종로 상권의 변화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젊음의 거리 입구에 있던 지오다노 종로점은 지난달 15년 만에 문을 닫아 공실(空室)이 됐다.
같은 종로지만 그나마 종로 3가 너머의 상황은 종로 1·2가보다 나았다. 종로 3가의 귀금속 상점 주인은 “경기가 살아나지 않고, 혼인 건수가 줄어 웨딩 시즌에도 예년 같지는 않다”면서도 “그래도 종각역에 비하면 임대료가 많이 싼 편이라 버티는 것”이라고 했다. 혼인이 줄었어도 회식 등 모임이 줄어든 만큼 줄지는 않은 셈이다. 인근의 공인중개업 관계자는 “그래도 종로 3가”라며 “특히 귀금속 거리에는 1층 공실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분기 종로의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6.6%,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8.4%였다. 소규모보다 중·대형 상가 공실률이 더 높은 이유에 대해 종로1가 인근의 공인중개업자는 “소규모 상가의 사정이 좋다기보다는 중·대형 상가의 사정이 나쁘다고 봐야 한다”면서 “중·대형 상가는 대부분이 법인인데 지오다노도 버티지 못했고, 스타벅스도 확장에서 정리로 기조를 바꿨다. 개인이 어떻게 버티겠나”고 말했다.
그는 이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원래 커피집이나 맥줏집 수요가 많아야 하는데, 올해는 소규모 상가 주력업종도 ‘차라리 월급을 받자’는 분위기라 이쪽(소형 상가)도 쉽지가 않다”고 했다.
다른 공인중개업자 역시 “중·대형 상점의 월세가 소규모 상점보다 훨씬 비싼 이유 하나뿐”이라며 “굳이 더 이유를 들자면 종로는 원래 쇼핑 상권이 아닌데, 대로변 중·대형 상점은 대부분이 판매점이라 온라인 시장의 타격을 더 크게 입은 것”이라고 했다.
◇ 임대료 부담까지 짓누르지만…멀기만 한 정부 지원
숨통이 막히는 와중에도 임대료 부담은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부 건물주는 임대료를 인하했지만, 드문 경우라고 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종로1가의 약국 주인은 “종로 건물주들은 오래전부터 일대에서 기반을 닦아와 공실이 생겨도 급할 게 없다는 반응”이라고 했다.
종로 2가의 삼계탕집 주인은 “영업이 너무 힘들어 매달 건물주를 찾아가 월세를 내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건물주는 끄떡도 안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건물주도 이해도 되는 게, 이 건물에 공실만 3개가 넘었고 지하의 유흥주점은 작년 영업일수가 두 달이 채 안 됐으니 깎아주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종로의 상권이 붕괴되는 동안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은 큰 힘이 되지 못한 것 같았다. 삼계탕집 주인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긴급자금 대출을 약속했지만 돈은 구경도 못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지난해 3월 박 전 시장이 서울시 소상공인들에게 긴급자금 대출을 해주겠다고 해서 이틀 만에 은행에 갔더니 약속한 이율 1.5%가 아닌 2%대에 대출을 해주겠다더라”면서 “억울한 마음에 신용보증기금에 문의하니 ‘해당 자금은 이미 동이 났고, 박 전 시장이 사정을 잘 모르고 공언한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2%대 대출을 받을 바엔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어 대출 지원 신청을 관뒀다”고 말했다.
종로 2가에서 15년째 꽃을 팔고 있다는 70대 여성은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금을 1차 70만원, 2·3차 각 100만원 씩 받았고 4차 지원금 100만원도 신청하려니 관청에서 ‘소득 감소를 증명하라’는데, 나이가 들어 인터넷으로 처리하질 못하니 직접 관청에 가볼 생각”이라며 “그나마 나는 사업자 등록이 돼서 어렵게나마 지원을 받지만, 등록이 안 된 길거리 상인들은 지원받을 길도 없어 보기가 딱할 지경”이라고 했다.
종로 3가의 한 의료기기 판매점 사장은 “매출이 4분의1 수준으로 줄어든 건 매한가지인데, 소상공인 지원 대상 업종이 아니라는 이유로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정부가 지원 업종 범위를 넓혀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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