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식 칼럼] 왜곡된 비주류의식

한겨레 2021. 5. 4.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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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칼럼]지난 대선부터 지방선거, 총선까지 국민은 민주당이 주류가 되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민주당은 여전히 집단적 비주류의식이 지배한다. 스스로를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주류에 맞서는 비주류로 인식하고 비주류적 태도를 보인다. 왜곡된 비주류의식이다. 민심과 당심의 괴리도 이런 왜곡된 비주류의식에서 비롯된 바 크다.

김기식 ㅣ 더미래연구소장

여당의 참패로 끝난 재보선 이후 민주당의 당심과 민심의 괴리에 대한 우려가 높다. 정치의 기본은 민심이고, 백성의 먹고사는 문제다. 청와대를 경험한 모든 이들의 공통된 결론 역시 국정의 절반 이상은 민생이고 경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검찰개혁과 같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와는 무관한 이슈가 2년 넘게 지속되고, 국정의 우선순위가 되어왔다고 국민이 느끼는 상황에도 계속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고 끝장을 봐야 한다는 주장이 당을 지배해온 것은 분명히 민심과 괴리가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기초는 정당이고, 정당정치에서 당심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은 조직화된 세력과 지역기반, 자기 관성과 기득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한 과소대표와 과잉대표로 요약되는 대의기구로서 정당이 가진 대의성의 한계 역시 직시해야 한다. 87년 민주화 이후 거의 매 선거마다 반복된 제3후보, 제3정당의 등장, 이제는 보편화된 국민참여경선의 제도화는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기존 정당이 가진 대의성의 한계, 정당정치의 취약함을 보여준다.

현실 정치에서 민심과 당심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조화와 균형의 문제다. 그러나 우선순위는 있다. 민심과 민생이다. 특히 결정적인 국면에선 민심을 기반으로 당심을 설득해내야 한다. 그것을 해내는 자가 리더다. 언제 민생을 챙기지 않은 적이 있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다수의 국민이 자신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고 느낀다면 따질 일이 아니고 성찰하고 반성할 일이다. 정치의 영역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 사실보다 국민이 어떻게 느끼냐다.

과거청산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도 오래가면 식상해진다. 시작하면 마무리가 있어야 한다. 못다 한 것이 있다면 다음 정부의 과제로 남겨야 한다. 5년 단임제 정부의 숙명이다.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과제는 오직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다. 새 정부가 출범하고 전반기에 신속하게 마무리했어야 할 과거청산의 과제가 후반기까지 연장되면 국민은 피곤하고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국민에겐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국민의 삶이, 미래 세대의 삶이 각박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임기를 1년 남겨둔 시점에 2차 검찰개혁을 다시 추진하겠다는 것은 부적절하다.

왜 이럴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자기 자신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사회적 인식 간의 괴리는 흔히 발생한다. 그만큼 자신을 타자화하고 객관화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공적인 영역, 특히 정치의 영역에서 정치 주체와 국민 간에 인식의 괴리가 발생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지난 대선부터 지방선거, 총선까지 국민은 민주당이 주류가 되도록 해주었다. 행정부와 입법부, 지방정부까지 모두 장악했다. 그런데 민주당은 여전히 집단적 비주류의식이 지배한다. 스스로를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강고한 기득권 주류에 맞서는 비주류로 인식하고 비주류적 태도를 보인다. 왜곡된 비주류의식이다. 민심과 당심의 괴리도 이런 왜곡된 비주류의식에서 비롯된 바 크다.

총선은 중간평가의 의미지만 대선은 미래를 위한 선택이다. 나라를 이끌어갈 리더, 주류를 선택하는 것이다. 국민이 거듭 주류로 선택해주었음에도 주류답게 국정을 운영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국민이 선택할 이유가 없다.

비주류는 문제 제기로도 충분하지만, 주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비주류가 정치적으로 싸우는 것은 당연하지만, 주류는 이견을 포용하고 조정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책적으로도 시민운동은 몰라도 정치의 영역에서 시장, 욕망, 이익은 조정의 대상이지 싸움의 대상이 아니다. 비주류에겐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지만, 주류는 거기서 머물면 안 되고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낡은 질서는 오직 새로운 질서에 의해서만 청산되기 때문이다.

왜곡된 비주류의식에서 벗어나 주류의식을 가져야 한다. 주류의식은 패권적 사고가 아니다. 나라와 국민의 삶에 대한 책임의식이다. 민주당이 민심에 근거해 돌아선 지지층과 중간층의 지지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대선에서 이길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오만과 독선, 무능과 위선이라는 비판을 넘어 신뢰의 위기에 직면한 민주당으로서는 차기 대선이 위태롭다. 민주당의 대선 결과는 이제라도 스스로 주류임을 자각하고 주류다운 모습과 태도를 보여주느냐, 주류답게 나라를 어떻게 발전시키고, 국민의 삶을 어떻게 나아지게 할지 비전을 보여주고 믿음을 얻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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