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이용대가 일본엔 주고 한국엔 못주겠다는 넷플릭스

박수형 기자 2021. 5. 4.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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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진단+] 넷플릭스 망 이용대가 재판의 쟁점

(지디넷코리아=박수형 기자)“망 이용료는 사업자 간 자율적인 협의사항이지만 이용료를 전혀 내지 않는다면 기울어진 것으로 문제가 있다.”

글로벌 콘텐츠 사업자(CP)가 막대한 데이터 트래픽을 발생시키는데 국내 인터넷서비스제공 사업자(ISP)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아 형평성의 문제가 있다는 더불어민주당 변재일 의원의 질문에 대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의 답변이다.

국내 콘텐츠 사업자와 달리 망 이용대가를 회피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향해 ‘기울어진 운동장’에 빗댄 것이다.

임혜숙 장관 후보자의 이 같은 답변이 눈길을 끄는 것은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가 진행 중인 재판 때문이다. 재판의 핵심은 넷플릭스가 제기한 채무부존재확인 존재 소송에서 망 이용대가를 지불할 의무가 없는 지에 대한 판단이다.

그동안 넷플릭스는 국회 국정감사 등에서 전 세계 어떤 곳에서도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재판이 시작되면서 ‘전송료’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다.

즉, 접속과 구분되는 전송은 무상이며, 접속을 하고 있는 일본의 통신사에 대해서는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지만 국내 통신사에는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 접속과 전송은 다르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의 재판 과정에서 이목을 끄는 이유 중 하나는 접속과 전송은 다르다는 새로운 주장 때문이다.

재판에 이르기 전 두 회사는 망 이용대가 협상을 벌였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의 데이터 트래픽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국제망 증설 투자에 나서야 했고 이에 따라 망 이용대가에 대한 협상이 시작됐지만 넷플릭스는 네트워크 비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다.

국내에 넷플릭스 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1년여 동안에는 이같은 논의가 필요치 않았다. 넷플릭스의 동영상 시청 데이터는 태평양 건너 미국 시애틀에 있는 아마존웹서비스(AWS) 서버에서 일반 인터넷 망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년차에 접어들면서 데이터가 늘어났고 넷플릭스 시청자 외에 다른 인터넷 이용자의 데이터 전송 품질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SK브로드밴드에 따르면, 피크타임 기준으로 넷플릭스의 OTT 스트리밍 데이터 트래픽은 30배나 늘었다. 국내 CP의 데이터 트래픽 총량과 비교해도 몇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는 일본 도쿄 지역에 있는 넷플릭스의 오픈커넥트 얼라이언스(OCA)에서 SK브로드밴드의 인터넷을 연결시켰다. 시애틀의 AWS에서 데이터를 보내는 것보다 그나마 가까운 일본에서 넷플릭스 데이터를 연결시킨 것이다.

이 때 일본의 통신사는 넷플릭스의 캐시서버 격인 OCA에 인터넷을 연결하고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를 받고 있다.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접속료’인 셈이다.

반면, 넷플릭스 데이터가 국내로 들어오는 SK브로드밴드의 국제망 전용회선에 대해서는 ‘접속’의 범주가 아니라 ‘전송’의 범주에 해당하고, 데이터 전송은 무상이라는 논리를 꺼내들었다.

3차 변론에서는 넷플릭스 데이터만을 위한 전용선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2차 변론기일 당시 넷플릭스의 법무대리인 김앤장 측은 넷플릭스만을 위한 전용선 서비스가 없다는 주장을 폈다.

학계나 법조계 모두 이같은 접속과 전송의 구분을 두고 의아하게 여기는 분위기다. 또 국내 인터넷 업계에서도 넷플릭스의 주장에 적지않게 당황한 분위기다.

정부 한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CP들은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데 자신들은 전용선이나 CDN 등으로 망 이용대가를 납부하는 게 역차별이라고 주장해왔다”며 “국내 인터넷 회사들은 넷플릭스도 인터넷 양면 시장을 부인하며 망 이용대가를 낼 수 없다는 논리를 펼 것으로 예상했지만 접속과 전송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망 이용대가는 따로 있다는 주장에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연결성이면 모든 책임 사라진다

접속은 유료, 전송은 무상이라는 프레임으로 재판에 임한 넷플릭스가 ‘연결성’이란 개념을 바탕으로 한 주장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다.

넷플릭스의 변호인 측은 ISP는 세계 모든 데이터를 연결해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고, CP는 세계 어느 한 곳에 데이터를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어느 한 곳에 데이터를 올려놓는 행위는 넷플릭스의 주장대로 하면 ‘접속’에 해당하고 데이터가 오가는 연결은 무료의 범위에 해당하는 전송이라는 것이다.

즉 도쿄에 OCA를 설치하면서 일본의 통신사에는 망 이용대가를 납부했으니 여기서 연결된 인터넷 선을 따라 데이터를 끌어가는 것은 ISP의 임무라는 것이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연결성 개념으로 따지면 위성인터넷도 되는 시대에 우주 수백 킬로미터 상공에 떠있는 인공위성에 캐시서버를 올려놓더라도 지상에서 위성안테나를 통해 무상으로 연결이 가능하다는 억지스러운 논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국내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돈을 거의 들이지 않고 캐시서버를 한국에 설치하려던 협상이 틀어진 이후 정부의 중재 절차 도중에 이를 뒤엎고 법적분쟁에 돌입한 케이스”라며 “일본 통신사에 내는 비용과 다르다는 점을 구분해 한국 통신사에는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겠다는 주장을 완성하기 위해 연결의 개념을 자가당착 식으로 끌어 붙였다”고 평했다.

다른 관계자는 “SK브로드밴드와 협상 테이블도, 수개월을 진행한 정부의 중재 절차도 도중에 중단하고 법원에서의 다툼을 택했을 때는 법적으로 대가 회피 논리를 마련할 줄 알았는데 엉뚱한 인터넷 철학을 들고 나왔다”면서 “부가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안정성 의무를 묻는 법의 속칭이 '넷플릭스법'이란 점을 재판부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재판을 바라보면서 가장 당황할 곳은 이용대가를 납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고 계약을 맺은 페이스북이 될 것”이라며 “넷플릭스 주장대로 하면 페이스북은 엉뚱한 망 이용대가를 내고 있는 것이고, 방통위와 페이스북의 재판 판결문도 뒤집혀야 할 판이다”고 꼬집었다.

■ 넷플릭스 때문에 트래픽 폭증해도 인터넷 요금은 안 오른다?

넷플릭스의 주장만 따르면 국내 초고속인터넷 요금은 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인터넷 가입자가 넷플릭스의 가입자는 아니지만 데이터 트래픽을 독차지하는 특정 동영상 서비스 때문에 통신사의 네트워크 증설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의 넷플릭스 데이터 트래픽만 따지면 피크타임 기준 초당 900기가비트에 이르렀다. 때문에 SK브로드밴드는 도쿄에서 500Gbps 급의 전용선 증설과 함께 홍콩에서 별도로 400Gbps 급의 전용선을 갖췄다.

대용량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국제망을 별도로 설치했고, 이원화마저 고민한 결과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3년 동안 30배 가까이 늘어난 데이터 트래픽이 추가로 늘어난다면 새롭게 넷플릭스만을 위한 전용회선 증설에 나서야 한다.

SK브로드밴드와 같은 ISP는 일반 가정이나 기업 등의 인터넷 가입자에 받는 서비스 요금과 특정 CP의 콘텐츠를 인터넷 가입자에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전용선이나 CDN, IDC 등의 콘텐츠기업 대상 서비스 요금으로 수익을 낸다.

이 수익을 바탕으로 네트워크 용량을 증설하고 커버리지를 확대해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을 유지하는데 투자를 집중한다. 특히 동영상 스트리밍 시대에 들어 데이터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ISP들은 처리 가능한 최대용량을 늘리는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수익의 대부분을 넷플릭스 서비스만을 위해 투자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이다. SK브로드밴드 가입자의 인터넷 이용 비중은 네이버, 카카오와 같은 국내 회사의 인터넷 서비스가 훨씬 많지만 국내 회사의 콘텐츠를 전달하는데 쓰이는 트래픽 총량보다 넷플릭스가 수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투자비용이 늘면 그에 맞게 수익을 올리는 게 기본적인 시장 원리다. 즉 넷플릭스가 촉발시킨 인터넷 품질 저하를 막기 위한 투자가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의 월정액을 올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같은 우려는 재판 과정에서도 나왔다.

SK브로드밴드 측의 변호인은 “CP로 인해 증가된 트래픽을 원고(넷플릭스)가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넷플릭스를 시청하지 않는 이용자의 인터넷 요금이 오를 수 있다”고 물었다.

넷플릭스가 신청한 증인은 “데이터 트래픽이 늘어난다고 ISP가 망을 증설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이에, SK브로드밴드 변호인은 “망을 증설하지 않는다는 의견과 달리 피고(SK브로드밴드)와 같은 사업자는 망을 증설할 수밖에 없고 비용을 지출하고 있으며, 그 비용이 넷플릭스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에 돌아갈 수 있다”고 재차 물었다.

이에 대해 넷프릭스 측 증인은 “증명해야 할 문제인데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피해갔다.

넷플릭스 재판에서 거듭해서서 언급되는 사례는 미국의 뉴차터의 경우다.

미국의 케이블TV 회사인 차터가 타임워너케이블, 브라이트하우스를 인수하면서 뉴차터라고 부른다.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차터의 인수합병 승인 조건으로 부과된 온라인동영상서비스 망 이용대가 부과를 금지한 인가조건이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는데 두 가지 시사점을 갖는다.

법원이 인가조건이 부당하다고 판결을 했지만 ISP가 CP에 망 이용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해당 판결에서는 ISP가 CP에 망 이용대가를 받지 못하면 네트워크 인프라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 소비자인 인터넷 가입자의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고 적시했다.

박수형 기자(psooh@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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