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서 '실명'이 필요 없는 이유[백주원의 리셀]

백주원 기자 2021. 5.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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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얼마 전 지역 기반 중고 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서 중고 아이폰을 구매한 적이 있습니다. 지역을 설정해 아이폰을 검색하고, 마음에 드는 제품이 있어 당근 채팅으로 구매 의사를 밝혔습니다. 바로 옆 단지에 거주하시는 분이었고, 직접 만나서 제품을 확인한 후 현금으로 구매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판매자분의 이름을 알아야 한다는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당근이신가요?’ 한 마디면 충분했기 때문이죠. 아마 당근마켓으로 중고거래를 하신 분이라면 대체로 이 부분에 공감하실 겁니다.

그런데 공정거래위원회는 당근마켓 같은 C2C(개인 간 거래) 플랫폼들이 이용자들의 성명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마련에 나섰습니다. 거래 시에는 성명 정보가 불필요하다고 해도 만약 이용자들 간에 분쟁이 발생해 이를 조정하거나 소 제기를 해야 할 경우 플랫폼이 이용자의 성명 정보를 갖고 있어야 해당 절차들이 진행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죠. 그렇다면 공정위의 주장처럼 성명 정보가 있어야 분쟁 조정과 소 제기가 가능한 걸까요?

성명 정보 없어도 이용자 보호 충분

답은 ‘그렇지 않다’입니다. 당근마켓 가입 시 입력하는 전화번호만 있어도 충분히 분쟁 조정과 소 제기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개인 간 상품 거래 시 문제가 발생하면 이용자는 전자문서·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 조정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이 접수되면 위원회는 먼저 당사자들과 조정 전 상담을 거치는데 이 단계에서는 ‘닉네임’만으로 상담이 가능합니다. 또 2019년 기준 전체 분쟁 신청의 98.7%가 분쟁 조정 전에 종결됩니다. 대부분이 성명 정보가 절차상 필요 없는 단계에서 마무리되는 거죠.

문제는 나머지 1.3%, 1년에 14건에 불과한 신청 건수가 실제 분쟁 조정기구로까지 진행되는 경우인데요, 이때는 당사자들의 성명 정보가 있어야 합니다. 공정위는 이 부분 때문에 플랫폼이 성명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고 봤죠. 하지만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기본법 제34조에 따르면 분쟁조정위원회는 분쟁 조정을 위해 필요한 자료의 제공을 당사자 또는 참고인에게 요청할 수 있습니다. 즉, 위원회가 분쟁 조정 당사자의 성명 정보가 필요하면 이미 플랫폼이 가입 시 확보한 전화번호로 연락해 당사자의 성명 정보를 수집하면 되는 겁니다. 플랫폼이 굳이 이용자들의 성명 정보를 갖고 있지 않아도 되는 거죠. 업계 관계자는 “지금까지 닉네임과 전화번호만으로 이용자들 간 분쟁 해소 시 문제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소 제기 시에도 피고소인의 성명은 필수 정보가 아닙니다. 피고소인의 전화번호만 있으면 현행법과 제도 내에서 충분히 소 제기가 가능하죠. 예를 들어 민사 소송 시 상대방의 성명과 주소 등을 모르는 상황에서 절차를 개시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때 고소인은 소장 작성 시 피고란에 ‘성명 불상’, ‘주소 불명’으로 기재하고 피고소인의 전화번호 등 아는 정보만 기재해 제출하면 됩니다. 그러면 법원에서 민사소송법 제294조에 따라 이동통신사에 사실 조회 또는 문서 제출 명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형사 소송의 경우에도 고소인이 피고소인의 전화번호만 제출하면 수사기관은 법원의 영장 없이 이동통신사로부터 성명,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의 정보를 직접 조회할 수 있습니다.

당근마켓 핵심 경쟁력은 ‘손쉬운 가입’
당근마켓 주요 지표(2021년 4월 12일 기준)/사진 제공=당근마켓

그렇다면 당근마켓은 왜 이용자들의 성명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려 할까요? 성명 정보를 추가 수집하게 될 경우 당근마켓은 어떤 피해를 보게 될까요?

당근마켓의 경쟁력으로 지역 기반의 중고거래 플랫폼이라는 점이 꼽힙니다만 사람들이 당근마켓을 많이 이용하는 배경에는 ‘가입 절차가 쉽다’는 점도 한몫했습니다. 당근마켓은 가입할 때 성명 정보를 수집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습니다. 이동통신사의 본인 인증 애플리케이션 ‘패스(PASS)’ 같은 부가적인 인증을 하지 않아도 되죠. 그냥 전화번호만 입력해 인증 번호만 받으면 가입이 끝납니다. 20~40대 등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패스 앱 같은 게 별로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60대 이상의 디지털 취약층에게는 이게 생각보다 어려운 절차일 수 있습니다.

이용 편의성에서 비롯된 낮은 진입 장벽은 플랫폼 경쟁력의 핵심입니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도 가입 시 본인 인증을 하지 않습니다.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가입할 수 있죠. 대신 카카오페이 같은 부가적인 서비스를 이용할 때만 별도로 본인 인증을 하죠. 그런데 만약 당근마켓이 이용자들의 성명 정보를 수집해야 해 가입 시 이용자들이 본인 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면 디지털 약자들은 플랫폼에서 대거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분석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있는 제도만으로 충분히 이용자들의 권리가 보호된다"며 “성명 정보를 추가 수집하게 하는 것은 플랫폼 경쟁력만 저해할 것”이라고 토로합니다.

연 14건 때문에 2,000만 개인정보 수집?

이밖에 앞서 언급한 1년에 14건 정도에 불과한 분쟁 조정 건수 때문에 2,000만 명에 이르는 당근마켓 이용자들의 성명 정보를 추가 수집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에 대한 질문도 나옵니다. 이와 관련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온라인 플랫폼 사업자가 개인의 성명·주소 등을 의무적으로 수집하게 하는 것은 비실명 거래를 하는 2,000만 명의 개인 정보를 추가 확인해야 하고, 개인 정보의 유·노출과 오남용의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개인정보 최소 수집의 원칙과 배치되고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제한한다고 본 거죠.

이에 공정위는 “개보위의 의견을 존중해 권고안을 반영한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입장을 발표했고, 주소는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명확히 의사를 밝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명 정보에 대해서는 “분쟁 조정과 소 제기를 위한 최소한의 정보”라며 수집 의무 부과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현재 공정위는 지난달 14일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입법 예고를 마치고 수정안을 마련 중입니다. 지난 3일에는 업계 추천 전문가 3인, 공정위 추천 전문가 3인 등이 함께 의견 수렴을 위한 회의도 진행했죠. 수정안이 마련되는 대로 법제처, 국무회의 등을 거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입니다. 중고거래 플랫폼의 이용자 성명 정보 수집 의무화에 대해 공정위는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백주원의 리셀(Resell)’은 시시각각 급변하는 유통 업계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쏙쏙 재정리해 보여드리는 코너입니다.

/백주원 기자 jwpai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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